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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king Aug 27. 2021

서른 살, 우울의 원인에 대한 고찰(8) 미혼vs.기혼

#8. 미혼이든 기혼이든, 선택에 따르는 우울의 그림자들

나는 모든 선택에는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것은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으리라. 만약 장점만 가득하고 마치 정답 같은 어느 한쪽이 있다면 과연 어느 누가 그것을 마다하겠는가. 그렇게 되는 순간 그것은 선택지가 아니라, 그냥 ‘해야 하는 것’, 즉 필수가 될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던 유행가 속의 가사 중에는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그렇다. 결혼이야말로 정말 완벽히 개인의 선택이다. 결혼에는 아주 극명하게 장점도 존재하고, 단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른이 넘어서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는 미혼이기에 우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혼 후에는 기혼이기에 우울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20대의 내가 이 말을 보았다면 대체 이게 뭔 소리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겪어보면 알 수 있는 심정이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겪어봐야 그 심정을 비로소 아는 것이고, 대부분 현재 가지지 못한 반대의 상황이 늘 아쉬운 법이다. 그래서 나는 서른 즈음 찾아오는 우울의 원인에 대하여 미혼도 꼽고, 동시에 기혼도 꼽아보았다.


# 미혼의 우울에 대하여.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이 유행가 속의 가사를 보면 요즘 세대에게 결혼이란 더 이상 필수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엿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쩐지 아직까지도 결혼이 필수인 시대를 살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네 부모님들께서 지켜보시고 있는 한 그 어떤 자녀들도 결혼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30대 성인에게 어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니 생각해보니 농담보다는 진담 쪽이 더 짙게.) “아유~ 부모님께 효도하려면 빨리 시집 장가들 가야지!”라고 말씀하신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마치 불효라도 되는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요즘에 결혼을 하는 평균 나이가 점차 올라감에 따라 미혼 30대가 아주 흔하게 보이지만, 그들 중 “나는 그냥 혼자 사는 편이 좋다.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 고 말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대부분의 친구들은 솔직한 자기 심정을 토로할 때 이런 말을 한다.  

“나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할 생각이야. 그런데 굳이 나이에 맞춰 억지로 하는 ‘결혼을 위한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 혼자 살아도 충분히 능력도 되고, 인생에 재밌는 게 많아.”

아주 굳건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마음은 평온할 틈이 없다. 주변에서 오랜만에 친구들한테 연락이 오면 어김없이 결혼 소식을 알리는 연락이고, 왠지 모를 우울이 찾아온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여자의 인간관계>>(미즈시마 히로코 저)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여성이 선택을 받았다는 말은 다른 여성은 선택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선택받지 못한 여성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선택받은 여성에 대해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된다.

인간도 어찌 되었건 동물이고, 어떤 수컷이 암컷을 차지했다면 나는 선택받지 못한 암컷 중 하나가 되는 좌절을 맛본다는 것이다. 훌륭한 남편감과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를 향해 분명 진심으로 축하를 하기는 하는데 동시에 이런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못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남자들의 경우도 비슷할는지 모르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남자가 아닌 만큼 서른 즘의 남자들이 또래의 결혼 소식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낄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점점 결혼한 친구가 미혼인 친구보다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쓸데없이 내 주변에 누가누가 아직 결혼하지 않고 있나를 손가락까지 정성스레 접어가며 그 수를 세아려보기 시작한다.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을 기세로 말이다. 남의 결혼과 나의 결혼은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쟤도 결혼하네.. 나는 언제 결혼하지.’라며 갑자기 나를 향해 그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곧이어 나 자신을 향한 근심을 시작한다. 지금 이대로가 당장은 괜찮지만 혹시 이대로 늙어버리면 엄마랑 아빠는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돌아가실 테고, 친구들은 다들 자기 가족을 향해 모든 시간을 쏟을 텐데, 그때 정말 나만 혼자가 돼버리면 어떡하지? 혹시 내가 늙고 아프기라도 하면 그땐 누가 날 돌봐주나. 아니 그런 생각들을 굳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해도 그냥 한마디로 걱정되는 점은 바로 ‘외로움’이다.

 기회가 되면 얼른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보고, 내 평생의 동반자가 될 단짝을 찾아내고 싶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가니 예전만큼 연애를 하기도 쉽지가 않다. 우선 만남의 기회도 많지 않을뿐더러, 30대의 연애는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연애 경험으로 인해 입은 상처들이 그득해서 이제는 더 이상 피곤하게 감정 소모를 잔뜩 해가며 유지하는 연애는 싫다. 나도 그렇지만 상대방도 그렇다. 그 시절 서로에게 온 에너지를 다 소진하던 그 불타오르고 순수한 연애와는 달리,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먼저 앞서는 연애를 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이 어려운 관문까지도 통과하여 두 사람이 서로 아주 잘 통하고 사랑한다 하더라도 연애를 계속 지속해 나가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제는 연애에서 미래를 ‘계산’해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30대도 아주 많이 보았다.

“지금 만나고 있는 애인과 애인으로서 연애를 하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헤어질 이유가 없어. 그런데 이 사람과 결혼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적당한 배우자가 아니야. 결혼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아.”

이 사람의 모든 조건과 배경을 다 감내해가며 부부의 연을 맺기에는, 나 스스로가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을 점지해주고 싶은 그런 기분. 적당한 배우자감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보니 내가 너무 눈이 높은 건 아닌지, 가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눈을 낮추어봐야 하는 건 아닌지 온갖 고민에 빠진다. 한 해 한 해 가면 갈수록 누군가를 소개받았을 때 그 상대방의 스펙이 점차 낮아지는 기분도 느낀다. 왜 이렇게 나오는 사람마다 별로여 보이는 건지. 혹여라도 그 사람에게서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엿보인다 싶으면 상대방도 나를 보며 ‘아, 쟤는 이래서 아직 결혼을 못했구나’라고 생각할까 봐 더욱 조심스럽다. 사람이 사람끼리 급을 나눈다는 것도 웃긴 얘기긴 하지만,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나의 급인 것 같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깎여나가는 날도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향해 마치 어떤 하자가 있는 건 아니냐는 식의 어른들의 반응을 하도 많이 당해서인지 한 번쯤은 스스로도 그쪽으로 잠시 동안 생각해보다가 이내 화가 난다. 과연 내 모든 조건을 충족하며 내 눈에 너무도 사랑스러운 내 짝이 지구 상에 존재하고 있긴 한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끔씩 품는다.



# 기혼의 우울에 대하여


그럼 결혼을 하게 되면 이 모든 내면의 우울이 해결될까? 미혼일 때는 그럴 줄 알았는데 결혼을 해보니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새로운 종류의 스트레스로 인해 새로운 우울은 다시 생겨난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결혼을 했냐 안했냐가 아니라 그저 내 마음가짐 일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7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30대의 연애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다. 물론 앞서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것은 영화가 아니기에 해피엔딩이라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그런 상황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은 결혼한 지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여전히 남편이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점이다. 나는 결혼을 하면 혹시나 애정이 식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고 하니까. 그러나 걱정이 많은 내 성격 때문에 지레 겁먹었던 것과는 달리 나도 점점 남편이 사랑스럽고, 남편도 나를 사랑해주는 것이 잔뜩 느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늘 ‘너는 결혼 전보다 결혼 후가 더 사랑스러워졌다’고 말한다. 최고로 애정 하는 연예인 보듯 서로를 덕질한다.(덕질이 너무 신조어인가 싶어서 대체할 단어를 찾다 방금 포기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모르는 단어로 인한 불편감을 주었다면 죄송합니다. 대략 엄청난 팬이라는 뜻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는 정말 사이가 좋은 부부 중 한쌍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우선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정문화에서 자란 인간이 서로 만나 매일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고, 조금만 양보하는 마음을 거두어도 금방 싸움이 터져버릴 가능성이 있다. 나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 에휴. 쟤는 왜 저럴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남편도 똑같단다. 남편은 나를 보면서 생각한단다. ‘…? 에휴. 쟤는 대체 왜 저럴까.’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신기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서 온전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그게 다 큰 성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만약 이 사람이 그저 내 친한 친구라면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래. 난 네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넌 너니까 그렇게 살아가겠지.’ 하고 응원해줄 수 있는데 (그런데 사실 이것도 어려운 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지랖이라는 것을 시전 하고,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부부가 되면 이 사람의 결정과 행동이 나에게도 분명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니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바로 옆에서 착 붙어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괴롭기도 하기 때문에 두 눈 뜨고 그냥 보기가 힘든 것이다. 명확히 누군가의 잘못인 경우도 있겠지만, 잘못된 일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어 남편은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고, 아내는 게임이란 것이 인생을 허비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평소 자기 계발하는 것을 낙으로 삼아 어학공부나 독서 등 지적인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상상해보자. 아내는 남편을 볼 때마다 저 웬수의 컴퓨터를 끄지 못해 안달이 날 것이고, 그 뒤통수를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럽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스트레스로 시달리다가 여가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유일한 취미인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인데 그것을 아내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또 얼마나 지옥이 되겠는가. 따지고 보면 취미는 본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인데, 아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아내 스타일의 취미인 ‘독서’를 강요당한다면 얼마나 싫겠는가. 이 예시는 실제로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일화이기도 하지만, 이것 외에도 수많은 일화가 매일매일 발생하는 것이 결혼이다. 그래서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께서 서로를 사랑하는 듯도 하다가 종종 웬수 덩어리처럼 바라보시나 보다.


 결혼을 하면 법적으로 ‘관계’들이 생겨난다. 우선 부모님만 봐도 네 분이 된다. 매해 명절과 생신 등 특별한 가족 행사들이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 된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을 챙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가끔씩 바퀴처럼 굴러가는 직장인의 삶을 살다가 보면 내 삶에서의 날짜를 잊고 지낸다. 오늘이 며칠이었는지 정말로 문득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사와 관련된 날짜는 기똥차게 지킨다. 일주일 내내 24일까지 제출 마감이라는 것을 기억하지만, 오늘이 24일이어서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 오늘이 24일이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마법을 경험했다.) 혹여나 내가 잊어버리고 지나친 당신의 생신이 가슴에 못으로 박히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어 거의 한 달 전부터 장하며 날짜를 체크한다. 무엇을 해드리면 좋아하실지 고민도 정말 많이 하게 된다. 내 또래라면 요즘 유행하는 물건이라도 사줄 텐데, 나이차에서 오는 차이로 인해 요즘 당신께서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예측하기도 어렵고, 가벼운 선물을 툭 전해드리면 정말 의미가 없기에 선물을 사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렵고 고민이 많이 들어가는 힘든 일이 된다.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연락을 잘 챙겨서 해야 한다. 나는 사실 연락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어서 늘 부모님들께 죄송하다. 나처럼 용건이 없는 연락을 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이 말에 공감을 할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야 내 성격을 아시니까 오히려 괜찮은데 시댁 어른들께는 노력을 더 해야지만이 조금 더 사랑스러운 며느리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시아버님은 나를 상당히 예뻐해 주시고 귀여워해 주시는데, 내게 단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연락을 자주 안 한다는 점이라며 서운한 마음을 비추셨다. 나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상대방이 그렇게 느꼈다는 말을 들으니 더 마음이 안 좋았다. 왜 그것은 잘 안 될까…. 나 자신에게 또 한 번 스트레스를 받고, 주변에 연락을 잘 챙겨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 자신이 모자라 보이기도 한다. (그 친구들은 보통 자신의 부모님, 시부모님, 그리고 친구들, 스승들께도 연락을 잘 챙겨서 하는 사랑스러운 친구들이다.) 시부모님들과의 관계가 좋은데도 이렇게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만약 어떠한 마찰로 인해 사이가 안 좋다면 그것대로 또 얼마나 힘든 결혼 생활이 될까.


 그 외에도 스트레스 거리는 많다. 새로운 가족 단위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어떤 계획들을 세워야만 할 때, 모든 것에 책임의 무게가 느껴지고 결정을 하기가 두렵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개인적인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워진다.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새로운 공부를 위해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싶어도, 경제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큰돈을 들여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도 배우자의 눈치가 보인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가 온전히 자기를 위하여 제주도로 한 달 여행을 떠나 심신을 다독여주고 돌아온다거나, 주말마다 새로운 취미를 배우고 동호회 사람들과 몰려다니는 모습을 본다거나 했을 때 내가 그 친구들을 향해 느끼는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미혼이었을 때는 결혼한 친구의 안정되어 보이는 모습, 인생의 큰 과제를 하나 끝낸 그 모습이 부러웠는데, 막상 기혼이 되니 온전히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진다. 이런 것이 바로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따르는 차이인가. 아마 워킹맘과 전업맘들이 서로를 향해 따가운 말을 하고 열을 올려 싸우는 것도 마음 한편에 이런 ‘부러움’의 감정이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인정하기 싫은 부러움’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주인은 ‘나’고, 모든 것은 ‘나’의 결정에 따르고, 그 어떤 외압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결정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에는 유부녀라는 사실은 나의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남편이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다독여주더라도 말이다.



힐링 추천 - 건강한 연인관계


이 모든 우울증에 특효약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건강한 상태의 연인관계에서 오는 사랑이다. 미혼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되게 해 줄 사람도, 기혼의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안정되게 해 줄 사람도 ’ 나의 연인’이다. 단, 나를 스트레스받게 만드는 그런 연인 말고 건강한 관계에 놓여있는 연인.

나는 여자로서 가끔 남편을 ‘남자’라는 존재로서 바라볼 때가 있다. 지난겨울 폭설이 내렸을 때, 강추위에 제대로 갖춰 입지도 않고 머리에 새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씩씩하게 힘찬 빗질을 하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아,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강인하고 씩씩하고 튼튼한 믿음직스러운 생물체(?)가 다 있을까. 이렇다 저렇다 구시렁거리는 일도 잘 없고 참 씩씩하다. 그리고 실제로 물리적으로 참 튼튼하고 건강하다. 온갖 걱정과 고민과 작은 일에도 한숨 쉬는 나와는 달리 굳건하고 안정된 생물체다. 여자들과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런 듬직함이다. 이래서 여자와 남자는 하나로 팀을 이루도록 동물적인 본능에 이끌리는 것일까. 마치 완벽해지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만 같다. 나는 그 듬직함을 사랑하고, 나도 저 사람에게 미완성의 부분을 채워주는 ‘여자’이고 싶다. 우리는 둘이지만 마침내 ‘하나’로 탄생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에게도 남자가 필요하다. 여자 혼자로서도 안정된 마음을 느낄 수 있지만, 둘의 합이 마침내 하나를 이룰 때 더욱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협화음을 내는 팀이 된다면 그것은 혼자보다도 못한 불안정함을 안겨줄 것이다. 굳이 안정을 불안정으로 이끌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그래서 그 말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지었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혼을 추천드립니다. 저는 남편 덕후니까요.

문학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남편이 가끔씩 내게 툭 던졌던 진심 어린 말들.


#1. 결혼하자

거실에 앉아있던 내게, 방에 누워있던 남편이 나를 향해.

“여보!”

“왜”

“나랑 결혼하자!”

“…? 풉 이미 결혼했는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갑자기. ”

“그냥! 지금 너를 쳐다보고 있자니 그런 마음이 들었어! 저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


#2. 나는 별을 보고 좋아하는 너를 보러 가는 거야.

둘이 별을 보러 새벽 드라이브를 간 날.

“어떡해~ 하늘에 구름이 많은 거 같기도 하고?? 도착했는데 거기서 별이 안 보이면 어떡하지!”

“괜찮아! 나 별에 관심 없어.”

“? 뭔 기운 빠지는 소리야. 지금 별 보려고 잠도 안 자고 이 난리를 치고 새벽에 가는 건데. 별을 봐야지!”

“나는 거기 라면 먹으러 가는 거야. 나의 첫 번째 목적은 이따 라면을 끓여먹는 거고, 두 번째 목적은 별을 보고 좋아하는 너를 보러 가는 거야. 난 별 못 봐도 상관없어.”  


#3. “하고 싶은 거 다 해!”

남편은 내가 퇴사하고 내 사업을 해야겠다며 어처구니없게 어설픈 계획을 냅다 말하면, 옆에서 바로 말해준다. “응! 한번 해봐!! 사장님~~~”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또 바로 옆에서 말해준다. “와. 어떻게 이렇게 천재 같을 수가 있지? 작가님~~~”

내가 힘들어서 쉬고 싶다고 하면 말해준다. “응! 쉬어! 어렸을 때 미술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했지? 지금 쉬면서 그림 배워! 그림 그리면서 놀러 다녀도 돼!”

친구의 사랑으로도, 부모님의 사랑으로도 듣지 못했던 그 말.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응원.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마음이 저릿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돈다.


#4. “!@#$%” (정말 쓰고 싶지만, 기억이 안 납니다.)

어느 날 남편이 늦게 집에 들어온 날, 먼저 잠들었던 나에게 다가와서 볼에 뽀뽀를 해주더니 한참 머리를 쓰다듬으며 뭐라 뭐라 말을 했다.

나는 잠에서 살짝 깨긴 했는데, 그날 너무 피곤했던 바람에 완전히 정신이 들진 못했고 눈도 못 뜨고 그냥 듣기만 했다.

잠자고 있는 나를 향해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사랑한다고, 결혼해서 너무 좋다고, 자기랑 있어줘서 너무 좋다고 대략 그런 내용들이었지만 이런 진부한 표현이 아니었는데. 나는 남편의 말들을 듣고 정말 많이 감동해서 이 말들을 평생 기억해두려 잠결에 계속 그 말을 반복해서 속으로 되뇌었다. ‘!@#$%^, 아. 이거 기억할 거야. 내일 까먹으면 안 돼….!@#$%^…’

남편에게 미소만 지어주고 바로 다시 잠들었는데, 속상하게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남편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홀딱 까먹어버린 것이다. 진짜 너무 속상해서 짜증이 난다. 하지만 그 순간의 그 감동은 평생 기억할 것이다. 잠든 나의 귓가에 자신의 진심을 “!@#$%”라며 쏟아내던 내 사랑스러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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