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로 넘어오면서 우리나라에는 ‘아이돌’이라는 연예인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제는 그들이 세계에서 하나의 문화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사이 수많은 어린 친구들이 연습생으로 시작하여 데뷔와 은퇴를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아이돌들을 볼 때마다 1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저 어린아이들이 저마다 아이돌이 되겠다고 힘든 경쟁에 시달리고, 순위가 매겨지고, 고작 2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데뷔를 해서 유명세를 떨치다가 여러 나쁜 어른들의 온갖 못된 말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 먼저 살아본 언니, 누나로서 정말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한때 전성기를 누리던 아이돌 중에 몇몇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자꾸만 들려오던 때가 있었다. 데뷔 초 풋풋하고 어렸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고, 아름답고 멋지게 성장한 조금은 더 노련해진 모습들도 생생해서 마치 그 성장과정을 함께해온 것 같은 아이돌들의 사망 소식은 나의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영향을 주었다. 너무나 매력적인 외모와 사랑스러움으로 나의 뮤즈였던 그녀가 이렇게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다니. 평소 악플에 많이 시달렸던 그녀가 날이 갈수록 위태로운 삶을 사는 것만 같이 보였는데 결국은 정말로 안타까운 결정을 했다니. 너무 속이 상하고 안쓰러워 며칠을 애도하며 지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우울감을 느꼈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내 주변의 많은 여자들이 이 소식에 함께 힘겨워하는 것을 보았다. 모두가 주변 사람이 사라진 것 마냥 묘한 장마철을 보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자살 사고와 우울감에 대하여
작년 어느 화창했던 5월, 평일 점심 12시 34분. 서울역 도심의 한 복판에 있는 빌딩에서 20대 후반의 여자가 자신이 다니던 회사 건물 17층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추락 지점 바로 옆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목격자가 112에 신고하였다. 나는 그날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커피를 마시고 있던 목격자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나는 유난히 업무에 지쳐 피곤하고 입맛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평소대로라면 식사를 하러 외출을 했을 텐데 그날따라 나는 제일 친한 직장동료와 함께 가볍게 점심을 때우자며 사무실과 연결된 야외 테라스에서 앉아 담소를 나누며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나는 에어컨 실외기 등이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내 앞에 앉아있던 동료가 놀라 기겁하며 위에서 뭐가 떨어졌다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확인을 하기 위해 몸을 돌렸고 누워있는 젊은 여자를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동료와 반사적으로 그 장면에서 눈을 돌리고 테라스에서 자리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서는 창밖으로 사고를 목격한 또 다른 동료들이 정신없이 당황하고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사람도 있었고, 벌벌 떨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경황이 없던 그때, 나는 갑자기 이상하게도 반응이 착 가라앉았다. 외려 차분해진 상태로 핸드폰을 들고 생각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바로 옆에 경찰서가 있었기 때문에 우선 112를 눌렀고 곧이어 경찰과 119 응급대원들이 출동을 했다. 우리가 우왕좌왕하고 있던 사이, 건물 외부에서 목격한 또 다른 남자 목격자가 담을 넘어와서 여자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곧이어 사무실 내에 계셨던 분들 중 의사면허가 있던 분이 여자분의 의식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을 하러 나가셨다. 나와 목격자인 동료들은 모두 뭉쳐서 서서 자리를 뜨지도, 지키지도 못한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신고를 하는 바람에 나는 최초 목격자가 되었나 보다. 사고 직후 경찰, 소방대원, 형사, 기자들이 나에게 전화가 오거나 나를 직접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내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몇 시에 사고가 일어났는지, 어떻게 목격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투신하신 그 여성분과는 무슨 관계인지 등등. 나한테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내가 아는 선에서 모든 대답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이리저리 불려 다니다가, 그들이 나한테서 별로 특이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는지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자유가 되었다. 그들 중 유일하게 형사 옆에서 따라다니던 짬이 좀 낮아 보이던 젊은 남자분(아마 그분도 형사였을까.)만이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었다. “많이 놀라셨고 정신없으셨을 텐데 어려운 협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사무실의 내 자리로 돌아오자,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내게 안부를 물어보러 왔다. 그날은 2시에 미팅이 있던 날이었고 나는 미팅 준비에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오늘은 그냥 미팅에 들어가지 말고 어서 퇴근해요.”라고 말해주었고, 나는 그때마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아깐 좀 놀라서 정신이 없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요. 미팅에 들어가야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예정된 미팅까지 전부 마치고 나서 집에 귀가를 했다. 퇴근하기 전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사무실 화장실을 가려면 걸어가야 하는 길이 있는데, 그 길에서는 정면으로 그 테라스로 나가는 문이 보인다. 문으로 보이는 장면은 내가 앉아있던 자리 방향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화장실에 가다가 그 문을 보고 갑자기 두근거리는 나의 심박수를 느꼈다. 화단에는 예쁘게 꽃이 피어 있었고, 오후 4시의 햇살이 예쁘게 황금빛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아름답고 눈부신 장면이 오히려 오늘의 사고와 너무나 대비되어 내 기분을 더욱 당황케 했다.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올려두려다가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일상적으로 있을 법한 일이었지만 그날은 과도하게 놀라며 당황하는 나 자신을 느꼈다. 나는 차분한 상태였고 침착했지만 사고 목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후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까 혹시 누군가가 위에서 밀었던 것일 수도 있으니 내가 위부터 올려다봤어야 했는데. 타살이었으면 내가 유일하게 그 억울함을 풀어줄 목격자였을 수 있는데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너무 도망치듯 사무실로 들어와 버렸던 것은 아닐까. 혹시 아까 숨이 붙어있었는데 내가 제일 먼저 본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도와줄 생각은커녕 그 자리를 피해버리려고만 했다거나. 만약 그때 내가 응급조치를 취했더라면 그분이 살았던 건 아닐까.’
이런 불안감에서인지 계속해서 관련 뉴스를 검색해보고 사건을 자세히 알고자 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실족 사고일까? 아니면 타살일까?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일까? 몇 층에서 떨어진 것일까. 혹여 생각보다 낮은 층에서 떨어진 것이면 나는 정말로 가장 먼저 그분을 위한 응급처치를 했어야 하는 것인데… ’
나는 병적으로 계속해서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대낮에 서울 도심에서 젊은 여성이 떨어졌는데 세상은 너무나 멀쩡하게 잘 돌아갔다. 그것이 내게 2차로 충격을 주었다.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을까. 나중에는 평온한 세상에 대하여 화도 났다. 같은 건물에 매일같이 출퇴근했을 사회초년생이라는 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껴서였을까. 자꾸만 감정이입이 되고 남일같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어떤 뉴스에는 떡하니 그 여성이 평소 우울증과 거식증을 앓고 있었다고 적혀있었다. 사고 후 겨우 몇 시간도 안돼서 뜬 뉴스였다. 나는 그 뉴스를 보고 3차로 화가 났다.
‘떠난 자는 유서도 남기지 않았는데 어떻게 남아있는 자들이 겨우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마치 그 죽음의 원인이 본인이 앓던 우울증이라는 마냥 단정 지어 발표를 하는 거지? 혹시나 회사에서 오전에 무슨 부당한 일을 겪은 것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부터 조사하고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울증으로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 그날 아침에 그 힘겨운 출근길을 이겨내고 사무실에 출근을 해서 오전 시간을 다 보내고 점심시간에 회사 건물에서 사고가 벌어졌다는 게 나만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가? 좀 더 조사를 해!’
그런 마음으로 하루 종일 기사를 검색했지만 별다른 추가적인 기사는 볼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뒤, 세상을 바라보며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 이 세상에 화가 난 영혼처럼 굴었다.
그리고 마치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팝업창처럼, 사건 당시 처음 보았던 모습과 마지막으로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 테라스 문 밖으로 보이던 햇살 아래 아름답게 핀 꽃 화단이 함께 한 장면이 되어 하나의 이미지로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곤 했다.
화창한 날씨 아름다운 꽃이 있는 화단. 그리고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시멘트 바닥에 살포시 누워있는 그 여리고 하얀 맨발의 청바지를 입은 다리. 아름다운 날에 그 슬픈 대비가 강렬하게 머리에 남았고,
그 이미지는 내가 쉬는 동안에도,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에도, 핸드폰을 만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팝업 되는 이미지처럼 내 눈앞에 자꾸만 놓였다.
사고 목격으로 인해 나의 정신과 마음은 한발 뒤늦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트라우마 치료 상담을 받았다. 나는 당시 다른 동료들이 반응하던 것보다는 상당히 차분했고, 그래서 생각보다 덤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담을 하던 날, 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전부 들은 상담사는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왜 자꾸 본인은 덤덤했다고 표현을 하시나요? 덤덤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본인은 지금 전혀 괜찮지가 않은데 왜 자꾸 괜찮다고 하지요?”
큰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교감신경이 흥분되어 놀라고 소리치고 얼굴이 벌게지고 눈물이 나오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런 흥분 상태. 또 다른 하나는 부교감신경이 흥분되어 마치 맹수에게 놀란 먹잇감이 놀란 마음을 바짝 세우다가 오히려 그 반응이 느릿해지고 급격하게 침착해져 버리는 얼음 상태. 나는 전형적인 후자의 반응을 하고 있었다.
전문가는 역시 달랐다. 마치 무당처럼 내게 말했다.
“혹시 사건이 오른편에서 일어났나요?”
깜짝 놀란 내가
“어.. 어떻게 아셨어요?”
라고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내내 오른편을 보지 않으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시선을 회피하고 계세요.”
그날 한 시간가량 상담을 받고 나서야, 나는 내가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전형적인 목격자들의 트라우마 반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죄책감, 무력감, 우울감 등이 전형적으로 목격자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하셨다. 나는 당시에 이미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우울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 영향이 크게 다가왔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삶이 너무나 인간을 괴롭게 하는 그 느낌에 일종의 원망감, 무력감 등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그 계절 하필이면 날씨가 너무나 따스하고 화창한 날이 많았다. 우울한 기분과 화창한 날씨는 대비를 이루어 더욱더 서로를 뚜렷하게 만들었다. 나는 날씨를 볼때마다 더욱 강렬하고 뚜렷한 슬픔을 느꼈다. 매일같이 출근하는 건물이다 보니 늘 출근길에 그날의 일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들을 지워내기가 쉽지가 않았다. 모든 것은 허무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사고와 관련된 우울감에 빠져 지냈다. 우울감에 빠져있을 때 더욱 힘들었던 것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좋은 일이 아니다 보니 내가 먼저 ‘나 엊그제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혹여나 누군가가 먼저 “서울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던데 넌 괜찮아?”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겨우 그 말을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먼저 물어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과의 모임에서도 나는 얼마 전에 내가 겪었던 이 큰 사건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이 날을 빼고서는 나의 근황을 완벽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 내겐 너무 큰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요즘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얘기할 수 없었고, 그저 즐거운 얘기를 나누며 웃다가 문득 떠오르는 그 팝업 이미지와 함께 조용히 다시 우울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때는 그러한 사실이 힘들었던 것 같다. 나의 우울감들은 ‘아무도 나의 상황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항상 더욱 커졌다. 그 무게를 조금 나눴더라면 다가와주는 위로와 함께 오히려 내 마음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꼭 이런 것들은 지나고 나서야 생각이 난다. 막상 우울에 한창 젖어 들어 있을 때는 홀로 오도카니 그것을 감당하려 든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다행히도 이런 허무함 들은 시간이 더 지나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더욱 깨우치게 만들어주는 순기능을 해주었다. 현재를 소홀히 하던 내가, 내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기고 현재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에 대해 더 고민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타인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우울감은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교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감에는 전염성이 있어서, 아마 처음 그 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내 우울증과 함께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며 나를 더 괴롭게 하는 큰 우울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절대로, 그 우울함에 못이겨 스스로 소중한 목숨을 내던지는 일 만큼은 해서는 안된다. 나는 나를 충분히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장마가 왔다고 생각하자. 이 장마가 걷히면 분명 다시 맑은 햇볕을 쬘 수 있다. 지금은 믿기지 않더라도 그것은 분명하다. 그 믿음이 내가 사랑하는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첫번째 걸음이다.
힐링 추천 - 트라우마 심리 상담치료
‘나는 괜찮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스스로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당신은 전문가가 필요한 상태일 수도 있다. 사실 트라우마 상담 치료가 가격적인 면에서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많이 받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 3회 정도라도 받아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마 대부분의 상담이 10회 정도 진행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증상이 심하면 30회까지도 한다고는 하는데 보통 대부분의 경우 약 10회 정도로 진행되며, 경미한 증상이라면 한 5회 정도만 들어도 더 이상 상담을 받지 않아도 이전처럼 지낼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 몸처럼 필요할 때는 의사나 상담사의 조언이 필요하다. 우리는 몸에 외상을 입으면 당연스럽게 병원을 찾아가는데 비해, 마음이 상처를 입으면 자꾸만 혼자 해결하려고 든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경우, 조기에 상담치료로 마음을 다 잡지 않으면 오히려 나중에 더 큰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니, 스스로 당장은 못 느끼더라도 큰 충격을 받았을 나 자신을 위해상담을 통하여 내 마음에 위로를 전해보는 것도 고려해봄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