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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king Aug 30. 2021

서른 살, 우울의 원인에 대한 고찰(10) 사라진 취미

#10. 왜 나만 내로라할 취미가 없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의외로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다가 그것을 잃고 나서야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이해하고 있다. 단지 나의 삶에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마주할 수 있을 것들로 생각하며 당장의 관심사에서 버려두었을 뿐.


나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것. 그중 하나가 바로 취미활동이다.


어린 시절에는 취미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 어린이들에게는 재밌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고, 자연스럽게 취미생활 겸 놀이를 즐긴다. 순간 자신의 마음에 따라 움직여가며 충분한 여가생활(?)보낸다. 하얀 도화지와 색연필만 눈앞에 두어도 그림을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상관없이 아이들은 잘 가지고 논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버린 어른ㅡ특히나 서른이 넘어가는 시점에서의 어른ㅡ 앞에 도화지와 색연필이 놓여있다면 아마 그 어른은 도화지가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도화지를 보았어도 무언가를 해야 함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 큰 어른도 도화지 앞에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어린 시절에게서 도로 배워와야 할 것 같다.



성인이 되면서 받게 되는 취미 스트레스는 '취미의 부재로 인해 해소하지 못하여 쌓여버린 스트레스'도 있지만, '취미가 없다는 것 그 자체로 인한 스트레스'가 또 쌓인다는 묘한 특징이 있다. 직장인들이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볼 때, 완벽한 워커홀릭이 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일과 삶의 균형이 탄탄하게 잡힌 삶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늘 그것을 갈구하고, 자신의 삶을 즐긴다는 것과 가장 연결시키기 좋은 것은 바로 '취미'다. 그래서 수많은 직장인들이 내 삶을 직장에 송두리째 가져다 바친 것 같을수록 '성인 취미 OO' 등을 검색어로 내세워 이것저것 검색해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직장 생활과 취미생활에 만렙을 찍은 듯한 동료는 꼭 한두 명씩은 주변에 존재한다. 우리는 건강한 동료들을 엿보게 된다. 그들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취미생활을 병행하는 습관이 몸에 익숙하게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꾸준히 즐기며 취미생활을 해오다 보니 그 실력 또한 거의 준프로급이다. 그림을 계속 그리다 보니 화가 못지않게 그림을 잘 그리거나 , 필라테스에 푹 빠져 즐기다 보니 아예 필라테스 자격증까지 따버린 사람도 종종 있다.  가지 일을 꾸준히 즐기며 하는 사람에게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에너지가 발산된다. 그것이 한 개인의 매력이 되어 그 사람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또는 그녀의 건강한 삶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낀다. 여기서 끝나면 참 좋으련만, 우리는 자꾸만 비교의 화살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로 꽂아버린다. '저 사람 참 멋지다.'가 아니라, '나는 저런 취미가 없는데. 난 그동안 취미생활 하나 못키우고 뭐하고 살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알 수 없는 열등감에 시달린다. 그 사람이 재밌어하는걸 내가 똑같이 재밌어할 수는 없으니 그저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되는 것인데, 왠지 모르게 저것은 멋져 보이고 내 것은 무얼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특히나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시기 동안에는 이런 자극이 더욱 묵직하게 나를 공격한다. 내가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인지, 쉬고 싶어도 뭘 하고 쉬어야 할지 모르겠고, 나도 움직여서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배터리가 나간 기계처럼 실행력을 잃어버린 스스로가 유난히 답답해진다. 이렇게 살려고 그동안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 아닌데.


그렇다면, 나는 처음부터 취미가 없었던 걸까?

아니다. 어린 시절, 100문 100답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스스로에 대한 100가지 질문에 100가지 답을 적어보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때 내가 적지 못했던 답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땐 빈칸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에 대한 질문이니 내가 그 답을 못 적을 리 없지. 분명 내게도 거창하지 않게 소소하게 답할 취미와 특기가 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은? 분명 살아온 세월이 더 쌓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답이 흐릿해져 가기 시작했다.


"나의 취미는?"

"나의 특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이런 질문이 대답하기 너무나 어려워졌다. 나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큰 멘붕에 빠졌다.  신기한 점은, 나의 우울의 원인은 "내가 나를 모른다"는 점으로 항상 수렴하고 있었다. 이런 작은 100문 100답조차 채울 수 없게 돼버린 스스로를 보며, 그동안 나의 색을 지우고 없애가며 평탄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본연의 나를 억눌러왔고 또 잊어갔는지 깨달았다.




 스스로에 대한 대답이 불명확해지면 모든 선택에 있어서 '결정장애'가 찾아온다. 모든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외압에 쉽게 흔들리며, 종종 자기 판단에 대하여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우울증의 증상 중에는  '의사결정을 잘 내리지 못한다'특징이 종종 등장한다.


 선택에는 좋고 나쁨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거나 내가 마음에 드는 답을 고르면 그것이 정답이 되는 것이고,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것을 정답으로 이끌어갈 책임이 생기는 것일 뿐이다. 나부터가 그것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그 어느 누가 나를 지지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의 호불호를 안다는 것은 작은 차이같아 보이지만, 사실상 이렇게 크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나를 정답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따라가고자 하는지 알아야 한다. 혹시라도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던 것이 오답같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수정하면 그만이다. 늘 항상 평생을 일관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영감을 주고, 나의 가치관에 알맞은 방향으로 얼마든지 수정해도 된다. 다만 그것은 분명히 온전한 나의 목소리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현재 나 자신의 마음을 다독거려줄 수 있는 '나에게 매력적인 답지'여야 한다.



힐링 추천- 버킷리스트 만들기 & 인스타그램 활용

나는 무기력을 끝내는 그 첫 번째 방법으로 '다이어리 쓰기'를 적극 추천한다.  나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여다보기에 좋고, 스스로 생각해볼 시간을 주어 나 자신이 나의 마음속과 대화해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다이어리 맨 앞장에 "버킷리스트"에 대해 써두어 보자.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언젠가는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것들을 포함하여 모두 부담 없이 적어 내려가 보자. (부담 없이 적게 되면 평소에는 "말도 안 돼. 내가 이걸 어찌해~"라고 생각할 일들도 마구 적어 내려 갈 수 있다.) 부담 없이 적는 버킷리스트는 생각보다 그 항목이 많아진다. 다 적었으면 이제 형광펜을 들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에 형광펜을 친다. 그리고 또 다른 색 펜으로 이번에는 당장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그 일을 쪼개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본다. 예를 들어 나는 기타를 칠 줄 모르지만 버킷리스트에는 '해외에서 버스킹 해보기'라고 적었다면, 그것을 하기 위해 현재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쉬운 것으로 '기타 독학 유튜브 시청하기' 등으로 목표를 나누어본다.

이렇게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뭔가를 시작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무기력증은 '일단 시작하면' 반은 이겨낼 준비가 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 차례 시도하다 보면 이미 당신은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미라클 모닝>> 열풍이 불면서 '확언 노트'에 대한 인기가 한창이다.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 적어보기가 그것들과 일맥상통한다고 느꼈다. 적어보기만 해도 훌륭한 에너지 원천이 된다. 그리고 아직 나는 버킷리스트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 목록만 한눈에 훑어보기만 하더라도 대충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자 사는지, 내 인생의 로망은 무엇인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로 추천할 방법은 인스타그램의 활용이다. 요즘 서른 즈음의 직장인들 치고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인스타그램 속 화려한 모습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순간"에 해당하고, 그 뒤편에는 얼마나 많은 "평범하거나 때로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는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과 비교해가며 부러움, 질투, 우울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우중충한 용도로 쓰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인스타그램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잔뜩 올린 나만의 피드를 만들어보자. 이건 내가 우울에서 벗어나게 된 나만의 꿀팁이다. 게시물은 남들 보기에 자랑거리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올리면 그만이다. 남들이 보는 게 싫다면 보이지 않게 올리면 된다. 나중에 한눈에 피드를 모아서 보기에 인스타그램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이렇게 한 3개월만 지나면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내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뭘 할 때 기분이 좋은지, 뭘 할 때 기분이 나쁜지, 여가시간에는 보통 뭘 하기를 좋아하는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대충 게시물의 개수를 통해 그 통계도 잡아낼 수 있다.

또 해시태그를 이용하여 내 사진을 설명하는 단어들을 달아두기 때문에, 알고리즘에 의해 나의 취향에 맞는 추천 게시물들이 알아서 떠준다. 그것들을 보면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지만 내 취향을 저격하는 것들을 새롭게 배울 수도 있다.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나기도 한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서서히 다시 쌓아나갔다. 어찌 보면 이미 내 안에 있던 나 자신이지만 그동안 나의 따듯한 눈길 한번 느껴보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이다.


 요즘 무기력에서 벗어난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찾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그 증거 중 하나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했을 뿐인데 요즘은 친구들에게서 부러움을 담은 메시지들이 많이 온다. "행복해 보여~", "부럽다.", "보기 좋다." 등등.

 과거의 내가 그랬듯, 날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듯한 반응을 하는 친구도 종종 보았다.

'그래, 나도 그때 그랬지. 행복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의 무기력증을 꾸짖었던 그때가 있었지. '

그리고 열심히 빠져나오는 중인 지금은 그게 얼마나 답답하고 힘겨운 얘기인지도 알고, 또 당연히 누구나 빠져나올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도무지 내게서 떠날 것 같지 않은 강력한 무기력증을 겪고 있는 당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만이 그 길을 당신에게 인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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