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라 말하기 마저 버거운 완벽주의자
<네 명의 완벽주의자>라는 저서를 쓴 연구가에 의하면, 대한민국 사람의 2명 중 1명은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사실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완벽하다는 말과 동일한 말은 아니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비율로 존재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나 역시도 완벽주의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쓰면서도 아직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을 향해 ‘완벽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 께름칙할 정도로 완벽에 대한 나의 강박은 심하다. 나는 많은 순간 완벽하지 못한 허술한 나 자신을 향해 완벽주의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인가 싶다. 그리하여 내 서른 즈음의 장마의 원인에 대하여 완벽주의를 논하면서 그 끝에다가 물음표를 붙임은 오타가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과 이로 인해 스스로가 끊임없이 주는 그 압박은 완벽주의자들을 끝없는 좌절로 이끌고 들어간다. 이것은 아주 끔찍한 경험이다. 늘 열심히 살지만 자존감은 늘 바닥을 치기 십상이고, 주변에서는 이해를 받지 못한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시험문제 하나 틀리고 우는 애들이 종종 있지만, 절반을 틀린 아이들도 섞여있는 그곳에서는 그들은 썩 위로받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하나 틀리고 울고 있는 그 아이야말로 마음에 병이 깊은 아이다. 그 완벽주의로부터 구원해줄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완벽하려다 걸려든 무기력의 덫
사실 나는 지난날에서는 완벽주의의 덕을 많이 본 사람이다. 10대, 20대를 거치면서는 스스로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한 번도 나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러한 나의 성향 덕분에 자기 검열이 강해서 스스로 자발적인 노력을 하는 데에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완벽주의 덕분에 어렸을 때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자제력이 높았고,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무엇이든 결과를 선보여야 하는 날에는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다. 목표에 몰두하여 좋은 결과(주로 성적)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가끔씩 그 좋은 결과들 속에서 하나라도 삐끗하게 되면 나는 세상이 무너진 마냥 우울하고, 울먹이고, 가슴 아파해서 감정 소모가 심했던 기억은 있지만 말이다. 사실 이러한 감정 소모도 지나고 보면 참 불필요했다. 그저 나는 9가지 잘한 일을 즐기며 스스로를 다독여도 됐었을 텐데, 항상 1가지 삐끗한 일에 대해 곱씹느라 결과적으로는 늘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그대로 30대가 되면 그 문제가 심각해진다. 단기적인 목표를 두는 10대, 20대와는 달리, 30대에는 이제 슬슬 목표 기한이나 결승선(이를테면 시험의 합격, 결과를 보여주는 당일 등)이 주로 없기 때문이다. 서른 즈음이 되면서 깨달은 점 하나는 인생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고, 항상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여행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늘 완벽하게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오히려 불필요한 개념이 되어버린다. 무언가에서 완벽해지기 위해 한 평생을 자제력을 높여 나 자신을 억제하며 살 수도 없고, 늘 실수 없이 성공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 늘 한 가지에만 몰두하여 온 신경을 그 일에만 집중시키는 것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는 다른 많은 부분을 놓치는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다소 실수를 하더라도 수많은 영역에서 다양하게 그것들을 사랑으로 꾸준히 관리해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완벽주의 성향은 완벽한 삶을 불러오기보다 오히려 무기력한 삶을 불러온다. ‘완벽하게 하지 못했다’는 절망감과 실패감으로 좌절을 맛보는 사람은 무기력의 늪에 빠지기 쉽다. 완벽에 대한 집착으로 움직이다 그 열과 성을 다함으로서 번아웃 증후군도 찾아온다.
그리고 그 끝에서 오히려 ‘완벽하게 하지 못할 거면 쉽게 시작하지 않겠다’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게 결국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탄생한다. 정말 아이러니한 단어 조합이지 않은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게으를 수 있다는 것이. 그러나 한번 이 덫에 걸려본 사람은 안다. 완벽에 대한 강박이 어떻게 나를 옭아매고 결국 실행력을 빼앗아 가 버리는지 말이다.
이번 주에는 약속이 많아 완벽하게 식단 조절을 할 수 없으니, 그냥 다이어트는 다음 주부터 시작하겠다. (하지만 늘 약속은 새롭게 생겨난다.)
어학을 공부하려면 매일 꾸준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요즘 업무가 너무 바쁘니 일단 시간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 (하지만 시간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없어진다.)
워킹맘으로서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고, 집안에서는 훌륭한 엄마, 아내이고 싶다. (하지만 결국 두 마리 토끼를 좇다 나의 건강이 먼저 고장 난다.)
여건이 되지 않는 와중에 꾸역꾸역 무언가를 노력해서 조금 해내었을 때도, ‘힘든 와중에 너 참 그것까지 해내 주었다니 대견하다’가 아니라,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는 실패감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좌절을 맛본다. 이것은 정말로 우울로 빠지는 지름길이다.
#내가 행복한 순간은 오직 11시 59분뿐이었다.
11시 59분. 12월 31일. 일요일 밤.
내가 에너지와 열정으로 건강한 빛을 내는 시간은 오직 저 순간뿐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다짐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막상 12:00이 되어 새로운 날이 시작되거나, 1월 1일이 되어 새해가 시작되거나, 월요일이 되어 일주일이 다시 시작하게 되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나는 우울해졌다.
‘아.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완벽하긴 글러먹어 졌어.’
‘올해도 별 볼 일 없이 나는 새로운 습관을 실천하는데 실패했어.’
‘이번 한 주도 계획을 다 지켜내지 못했어. 이번 주는 망했어.’
위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나는 그 새로움을 앞둔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늘 우울하다는 뜻이다.
#작심 3일 오뚝이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의 경험담을 들었다. 자기 자신은 의지력이 약해서 스스로 ‘작심 3일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3일마다 다시 계획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가치관을 접했을 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실패를 대하는 그 건강한 마인드가 정말 성공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내게서 결핍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주 잘 와닿았다. 스스로 전혀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배웠다. 어쩌면 완벽주의자는 정말로 헛똑똑이 인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 모두가 오뚝이라고 한다면, 아마 넘어졌을 때 완벽주의자 오뚝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오늘도 넘어져버렸어. 난 왜 외압에 이렇게 자꾸 넘어지지? 지난날로부터 교훈이 있을 텐데 왜 잘 개선이 안 되는 거냐고! 엉망이야! 다시는 넘어지지 않을 테다.’ 그리고 항시 과도한 긴장상태를 유지하느라 온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것이다. 다음에 넘어지면 그 괴로움은 배가 될 것이고.
반면 작심 3일 오뚝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이쿠 넘어졌다. 난 오뚝이라 원래 잘 넘어져. 하지만 괜찮아 또 일어나면 돼! 늘 다시 일어서는 나의 모습 좀 멋진 듯? 오늘도 잘했어. ’
#완벽주의자들에게
나는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잘 안다. 그들은 작은 일이 주어지더라도 늘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하는 모범생들이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사람들이다. 인생에 대해 늘 진지한 자세를 갖는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강박으로 인해 고통받는 완벽주의자들이 더욱 안쓰럽다. 그들에게 휴식과 심적 여유를 선물하고 싶다.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에게 스스로 칭찬 한번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워서. 온당히 누려야 할 칭찬과 휴식을 스스로가 거부하는 그 모습이 정말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 생각이 든다. 뭐든 과하면 그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 완벽에 대한 욕심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든 완벽주의자들이 스스로를 이제는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사랑의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제 그만! 너 자신을 그만 괴롭혀, 이 욕심쟁이들아!”
힐링 추천- 긍정적인 욕심 발휘하기
인생은 연습 없는 실전이다. 연습이 없는 실전에서 완벽하려고 드는 것 자체가 오류이다. 그러나 완벽에 대한 욕심은 나 스스로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때문에 내려놓기가 어렵다. 이 모든 것은 욕심이다. 우선은 그것부터 인지해야 한다. 욕심으로 똘똘 뭉친 이 마음이 건강한 욕심만을 추구할 수 있도록 스스로 각별히 신경을 쏟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완벽하게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인생에 활기를 얻고, 동기부여를 받는 것은 완벽에 대한 긍정적인 욕심이다. 하지만 완벽하고자 하는 집착으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감이 증폭한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욕심이다. 그런 완벽주의는 설령 내가 진짜로 완벽해진다고 해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습관으로 인해 아마 당분간은 그렇게 실천하기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힘겨운 여정이 될 것이지만 이제 막 서른 길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쯔음 그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 딱 적당하다. 이제부터라도 건강한 욕심을 유지하는 내에서 불필요한 욕심을 덜어내고 어느 정도는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제는 ‘인생은 실전이다’라는 말로부터 오는 압박감을 덜어내기 위해 오히려 ‘인생은 연습이다’라고 바꾸어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연습을 할 때처럼 여유를 갖고, 잘 되지 않는 것을 잘 해내고자 노력을 들이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해보자.
다같이 행복한 오뚝이가 되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