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에 공감해줄 이가 많을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삶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것만 같은 순간을 많이 느꼈고 그것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분명히 나인데, 나는 이 영화에서 조연인 것만 같은 느낌. 이 이야기는 주연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나는 스포트라이트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서 충실히 내 역할을 하고 있는 서글픈 느낌.
누구나 어린 시절에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손바닥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면 내 눈에 상대방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 역시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까꿍~’ 하며 손바닥을 활짝 열어 상대방을 보게 되었을 때 “나 여기 있지요!” 하는 마술을 부린 기분을 느끼며 즐거워한다. 나도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모든 생각의 중심에 내가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회성을 띠며 단체 생활을 할지라도 그 중심에는 늘 내가 있다. ‘나’ 자신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러니 내 삶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혹은 엑스트라라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인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들 이런 기분을 느끼고 살았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한 명씩 물어보고 싶다. 이럴 때는 가끔 글이라는 소통방법이 일방통행이라는 점이 아쉽다.
서른 즈음이 되니, 그간 살아온 기억들이 모두 뒤엉켜 올라오며 나 자신을 향해 끝없이 조연이라고 외치며 확인사살하는 것 같았다. 아래는 뒤엉켜 올라오던 나의 의식들을 마구 쏟아낸 글들이다. 있는 그대로의 흐름이라 약간 두서가 없음에 이 글을 깔끔하게 다시 수정해야할까 고민도 했지만, 오늘은 그냥 이대로 두고 싶다. 이것이 나의 고찰들을 더욱 현실적이고 간단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인 것 같아서.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한 것일까.
나도 저기 저 무리에서 사랑받는 사람들처럼 반짝이고 돋보이는 매력을 가지고 싶다. 나는 사람들에게 캐릭터가 불분명하고, 가지고 있는 재능도 불분명하고, 외모도 평범하고 모든 것이 평범해. 동창들끼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내 이름이 나왔을 때 ‘걔가 누구지?’라고 생각할 것만 같은 그런 조연.
나도 사랑받는 사람이고 싶다. 물론 나도 친한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아주 소수이고 그 아이들이 사랑이 넘쳐서 항상 내게 먼저 다가와주었기 때문에 이 인연이 가능했었다. 매력은 내쪽이 아니라 상대방 쪽에 있었고 나는 늘 다가와줌에 감사했다. 나는 여러 사람 속에서 기억에 남고 사랑받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나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나도 뛰어난 두뇌와 실력으로 나의 전공, 나의 직업에서 남다른 재능을 뽐내고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어릴 적에는 정말로, 진짜로, 내가 노벨상이라도 받을 발명을 할 수 있을 줄로 알았어. 혹시나 대학교에서 훌륭한 학생으로 스카우트되어 교수님 밑에서 유능함을 뽐내며 대한민국의 대표 과학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과 상상.
하지만 나는 이미 서른이 지났고, 이제 무언가 특출 난 모습을 보이기엔 늦었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도 해봤는데, 나는 그냥 딱 노력 그만큼인 사람인 것 같다.
옛날에는 이 나이쯤 되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어있을 줄로 생각했는데.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네.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자라는 동안 모든 일들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느꼈을까?
우리 집은 아주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이라 태어나보니 딸, 딸, 아들의 둘째 딸이었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먼 친척 어르신들을 만나면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일이 잘 없었다. 큰집에 가면 정말 많은 친척 어르신이 있었다. 언니랑 남동생의 이름은 아시는데, 내 이름은 모르시는 것 같은 순간이 많았다. 언니야 우리 집안의 첫 딸이고, 내 남동생은 장남의 장남이었으니까. 나는 그냥 ‘누구네 둘째’라는 소개에 그칠 뿐이었다. 사실 나도 그 아저씨들이 다 누군지 모르니까 결국 서로 똑같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이 상처 받지 않도록 애써 외면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다들 내 이름을 아셨겠지?
언니와 남동생에게로 관심과 지원이 쉽게 흘러들어 가는 것만 같다. 언니의 고등학교 졸업식날, 언니는 꽃다발과 만년필을 선물로 받았고 우리 가족은 맛있는 것을 먹으러 외식을 했다. 나의 고등학교 졸업식날, 나는 재수를 하게 되는 바람에 엄마는 나에게 화가 난 듯 보였고, 아빠는 그냥 출근을 하셨다. 나를 불쌍히 여긴 언니가 겨우 꽃다발을 사자고 해주어 엄마는 나에게 꽃다발을 툭 주셨다. 너무 서러웠다. 나도 고3 내내 열심히 공부했고 재수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원서를 잘못 쓰는 바람에 지원했던 대학에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재수였다. 그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졸업식날 예쁜 옷을 한벌 쫙 빼입고 오는 것이 풍습이었는데 나는 집에 있는 옷 중에 가장 예쁠 수 있는 옷으로 억지로 끼워 맞추어 입고 나갔다. 새 옷을 사 입고 있는 멋진 친구들 옆에서 잔뜩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사진조차 찍기 싫어했다. 친구들은 내가 재수를 하게 되어 주눅이 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재수를 하게 된 게 서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졸업식에서 축하를 받지 못하는 것이 서러웠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재수를 하게 되었으니 그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5년 뒤 내 남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성적이 저조해서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엄마는 손수 만든 꽃다발을 동생에게 선물했다. 나는 뒤늦게 정말 큰 충격에 빠졌다.
나는 모든 것을 어렵사리 쟁취해내야 했는데. 얜 뭐가 이렇게 쉽지. 하긴, 딸딸 아들의 둘째라고 하면 모두가 불쌍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나라고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었을까. 그래도 그 와중에 여기까지 온 것이 스스로 대견하네. 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
#결혼을 해보니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들 아직까지는 정말 남자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마치 내가 남편의 성씨에 편입된 느낌이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결혼 후의 생활도 ‘나’와 ‘나의 부모님’을 중심으로 돌아갔을까?
남편은 자주 시댁에 가자고 말하지만, 친정은 어째서인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나 혼자서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도 그럴 것이, 시댁에서는 우리에게 자주 연락을 주시지만 우리 집에서는 통 연락이 없다.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이렇게 잘 지켜주실 줄이야. 엄마 아빠는 진짜 ‘시집보냈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한 가정을 이루고 나니 집안일이 마치 나의 소관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힘들고 피곤한데. 나도 남편처럼 내 직장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밥을 안 해 먹어서 남편이랑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면 왠지 모르게 여자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것 같고 시어머님을 뵐 면목이 없고 죄송하다. 왜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도 나는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집안일은 정말 부지런해야 한다. 엄마랑 살 때는 엄마가 계절마다 옷장 정리도 싹 다 해주시고, 이부자리도 늘 청결하게 정리해주시고, 내가 방을 어지르면 어느 순간에 싹 다 정리해두어 주시고. 정말 다 도와주고 계셨던 거구나.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는 집안일을 참 잘 돌보셨는데. 항상 쾌적한 환경에서 뽀송한 이불 덮고 잠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우리 집 이불 하나 뽀송하니 유지하기가 버겁네. 어머님이 이불 빨래를 대신해서 가져다주시는데 정말 죄송하다.
이놈의 집은 매일매일 청소를 하는데도 왜 이렇게 항상 치울게 많은지. 쓰레기도 참 자주 쌓이고, 빨래는 자주 돌리는 것 같은데 왜 맨날 쌓여있을까.
#내 인생도 도와줘..
남편은 결혼 후 365일 돌아가는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월-금 출근하는 평범한 직장을 다닌다.
남편이 시간이 없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자꾸만 나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할 때면 나도 마음이 갑갑하다. 나도 월-금 정말 힘들게 일하고 주말에 겨우 탈진상태로 쉬는 것인데. 심지어 최근에는 번아웃이 와서 모든 것에 무기력하고 우울하다고. 나도 충전의 시간이 필요한데, 토요일이면 남편을 도와주란 말을 다들 쉽게 한다. 너무 서운하다. 사는 곳도 남편 직장에 더 가깝도록 양보했고, 남편이 바쁘다는 이유로 집안일도 내가 거의 다 하고 있는데.
나도 내 위주로 도움을 받으며 일하고 싶다. 나도 내 직장 근처에 살고 싶다. 내가 괜찮다고 결정해서 이렇게 된 거지만 이럴 때면 정말 내 마음은 괜찮지가 않다.
나도 곧 아이를 낳아야 할 텐데, 아이를 낳고도 지금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을까? 아아, 하지 못할 것만 같아. 지금도 충분히 직장생활과 집안일을 모두 하는 것이 너무 버거운데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없어. 그렇다면 내가 참고 참으며 이 일을 이어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일 자체도 나에게 너무 스트레스고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가는데. 이렇게 일해봐야 가정에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가 않다. 요즘 남편도 바쁘고 나도 바쁘니 결국 집 관리가 엉망이 되어 간다. 남편과 나 둘 중에 한 명은 가정에 조금 더 신경을 쏟아야 할 것 같은데, 결국은 내가 양보를 해야 하겠지. 나는 ‘엄마’가 될 테니까. 서른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보니 주변에서 하나둘씩 아기를 낳기도 했고,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를 낳는 행복을 느껴보고도 싶다. 하지만 너무 두렵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면 내 삶보다는 아이의 삶에다 나를 희생해가며 나의 시간을 양보해야 마땅하겠지? 나도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그러고 보면 나 공부도 참 열심히 오랫동안 해왔는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결국은 욕심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니 너무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커리어적인 부분이 끊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 왠지 허무하다. 많은 커리어 우먼들이 그랬듯 악에 받쳐서 하면 못할 거야 없겠지만 그거 다 결국 내가 스스로 고생길을 걷게 되는 것일 텐데. 지금 에너지가 다 떨어져서 그런가. 상상만 해도 너무 괴로운 길이 될 것만 같다.
아기가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얼른 해두어야겠어. 마치 벼락치기 시험공부하는 사람 마냥 마지막을 불태우게 되네. 모든 활동들이 ‘나중에 애기 엄마가 되면 못할 것 같은 일들’일 때 나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나는 결국,
우리 집 딸일 때도 그렇고, 결혼을 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도 그렇고, 미래에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면 더더욱,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냥 누군가의 서포터(supporter)로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나를 도와달라’고 말을 하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렵고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을까.
‘내가 몇 년간은 이런 것을 열심히 해볼 테니 모두가 나를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 것이 아닌 그냥 상상.
그리고 이내 나는 아주 많이 우울해졌다. 그날 밤 샤워하다 말고 욕실에 혼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힐링 독서 추천- 소설 ‘82년생 김지영’
한참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리고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책이 발간되고 난 후 동창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소설에 대해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남자들의 부정적인 반응 뭐 그런 것들. 하지만 나는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내게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일부러 논쟁을 만들기 위해 과장되게 글을 썼다는 한 남자인 친구의 말에 몹시 화가 났다.
우리 집은 가부장적인 집안이다. 옛날 문화가 아직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버지는 가끔 ‘여식’이라는 단어를 쓰셨다. 여자는 시집가면 남의 집 자식이라고 말씀도 하셨다. 제사를 지낼 때면 남자들은 거실에 앉아 없는 주제까지 머리에서 쥐어짜 내며 대화를 했고, 부엌에서는 여자들이 정신없이 음식을 했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남자 애들도 부엌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잘 구워진 전이 있으면 한번 맛보라며 가서 입에 넣어주곤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다. 절을 할 때는 여자들은 뒷줄에 모두 몰려 서있었다. 상을 차리고 과일을 깎고 커피를 내어오고 모든 준비를 끝마치면 밥을 먹었다. 잘 차려진 접시는 모두 남자 어른들과 남자 어린애들이 앉아있는 큰 상에다가 내어가고, 뭔가 엉성하게 담기거나 접시가 모자라 조금 허름한 접시를 내어오거나 젓가락 숟가락 세트가 맞지 않거나 하는 등 사소하지만 어설픈 모든 것들은 여자들의 밥상에 올라왔다.
내가 학원을 가려면 엄마한테 조르고 설득을 해야 했지만 남동생은 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 학원을 당연하게 다녔다. 내가 대학을 한번 졸업하고 다시 전문직에 도전하고자 해서 수험생활을 결정했을 때ㅡ공교롭게도 언니도 동일한 시기에 수험생활을 하게 되었는데ㅡ ‘우리는 아들 키워야 하니 딸들은 얼른 독립해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내 동생이 전문직에 도전한다고 말했더라면 그 자체로 기뻐하시며 온전히 응원해주셨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부모님께서는 ‘잘 키워서 시집가버릴 텐데 아깝다.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씀을 하셨다. 도대체 뭐가 아깝다는 거지? 나는 계속 엄마 아빠 딸인데.
나와 언니는 큰 사고 안치고 살았지만 부모님께 따끔하게 혼난 경험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남동생은 가끔씩 큰 사고를 쳤는데도 그때마다 ‘남자는 그럴 수도 있어. 남자는 기가 죽으면 안 돼.’라는 이야기로 적당히 넘어갔다. 그럼 여자는 기가 죽어도 되는 걸까? 물론 우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건 아니라는 것 잘 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 집에서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애를 쓰고 ‘나 여기 있어요!’ 열심히 표현해야 하고 싶은 바를 겨우 쟁취해낼 수 있는 딸, 그리고 딸 중에서도 사이에 낀 둘째였다. 나는 가끔 ‘나도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보는 동안 이런 내 속이 후련해졌다. 아마 김지영, 그리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소설을 읽는 동안 수도 없이 공감을 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위로가 되고 한바탕 울어내니 가슴이 후련해진다. 울적한 기분에 더욱 젖어들고 싶다면 성공적일 것이다. 하지만 희망찬 해결책을 위해서라면 큰 도움은 안될 수도 있으니 내 마음의 상태를 봐서 공감이 필요한 시기에 독서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