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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king Sep 11. 2021

서른 살, 우울의 원인에 대한 고찰 (13) 일조량

#13. 햇빛 쬘 일이 없어서 사라진 나의 세로토닌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에 대하여


이번에는 조금 과학적인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과학적 근거가 있기에 다소 이성적이고도, 여전히 감성적인 영역에 있는 ‘빛의 영향력’에 대하여.

우리 몸에는 몸에서 직접 합성하는 여러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그중 일반인들도 많이 들어봤을 만한 아민계 신경전달물질로 도파민, 세로토닌 등이 있다. 아마 건강 관련 전문가가 아니어도 이런 물질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많을 것이다. 유명세를 탔던 서적의 제목 중에서도 <<세로토닌 하라>>라는 책이 있을 정도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느끼는데 필요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울증이나 불안의 증세를 완화하기 위해 세로토닌의 양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약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의 치료제로 흔히 사용되는 약물 중 SSRI 계열(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은 이러한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방지함으로써 세로토닌의 농도를 증가시킨다. 세로토닌은 우리의 기분, 식욕, 수면 등의 조절에 관여한다.


#일조량과 우울의 관계


 햇볕을 받는 시간이 줄어들면 비타민 D의 합성이 줄어들면서 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든다. 그래서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개념도 있다. 여름에 비하여 겨울철에 충분한 햇빛을 쬐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도 어찌 되었건 포유류 중의 하나인지라, 이렇듯 자연과의 관계에서 그 생리학적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낮에 해가 뜬 시간에는 충분한 햇빛을 쬐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ㅡ특히 직장생활에 매여버리기 시작하는 30대부터 그 이후 은퇴 전까지의 성인들ㅡ에게 물어보았을 때 과연 일조량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럽게 “네. 저는 충분한 햇빛을 쬐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 한 몸의 건강을 돌보기가 항상 뒷전이 되는 갓 서른을 넘긴 초보 어른에게 햇빛 쬐러 간다는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일반적인 경우, 주중에는 사무실에서 햇빛과 얼굴 한 번 못 마주치고 스쳐갈 듯싶다. 햇빛이 뜨면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고, 내가 사무실에서 나오면 햇빛이 사라진다. 주말에는 특별한 휴일을 보내기 위해 친구들과 약속을 갖거나 백화점, 영화관, 미술관 등 저마다 가고 싶은 곳을 향해 가겠지만 그것도 대부분은 실내 활동일 경우가 많다. 더 심한 경우 주중에 쌓인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 누워서 넷플릭스를 볼지도 모른다. 단 몇 명의 야외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빼면 말이다.


#교대근무와 우울의 습격  

대부분의 성인들이 햇빛 쬘 일이 없는 것도 맞지만, 특히나 특정 직업군에서는 업무 특성상 2교대, 3교대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병원에서만 보아도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약사, 보안담당자 등등 여러 사람들이 있다. 그 외에도 교대근무로 고생하는 경찰, 소방관 그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등. 그리고 야간에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더 나이가 들면 이것이 결코 몸에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른 업무 형태로 방향을 틀지만, 갓 사회인이 된 20-30대 직장인들은 건강에 대하여 조금 무뎌서인지 약간 망설이다 결국에는 기꺼이 교대근무를 하게 된다.

 내가 그랬다. 나는 약 2년간 대학병원의 원내 약국에서 야간 약사로 근무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야간 근무를 하는 것이 내게는 좋은 선택이었다. 학자금을 보다 빨리 갚기 위해 단기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고 싶었다. 아직 진로 고민을 덜 끝낸 내게 고민의 시간과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를 할 시간을 줄 수 있어야 했다. 평일 낮에 도수치료와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유 시간도 생겨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점에서 일주일에 단 이틀 삼일만 집중적으로 일하고 야간 수당으로 인해 높은 급여를 받는 야간 업무는 아주 최고의 선택이었다. 단 하나, 나의 건강에의 영향만 빼고.

“샘, 오늘 아침에 퇴근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죽어요..”

 가끔씩 연달아 근무하러 나타나는 날이면, 아침에 퇴근했다가 얼른 잠만 자고 다시 그날 오후에 교대를 하러 나오는 나를 향해 낮에 일하는 약사 선생님들이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며  마디씩 안부인사를 해주셨다. 사실 나는 올빼미형이라 수면 패턴이 바뀌는 것쯤이야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나는 학창 시절에도 방학만 했다 하면 일주일 이내에 새벽 5시에 잠들고 다음날 12시에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룻밤만 패턴이 바뀌어도 속이 쓰리고 불면증이 오는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나는 그나마 수월하게 야간 근무를 했다. 정말 씩씩하게 야간 근무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조금 이상한 의외의 증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우울감’.



밤에 일하다 보니 해가 하늘에 노르스름하게 오후의 태양빛이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출근길에 올랐다. 사람들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출근을 하면 이내 해가 진다. 휴게시간이 되어 간식이라도 사 먹으러 잠시 나오면 밖은 어두컴컴한 밤이 되어 있었다. 잠은 지하에 있는 약 창고에서 간이침대를 펴고 잤다. 병원이라는 곳의 특성상 24시간 불빛이 켜져 있고 늘 사람이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낮과 비교하자면 아주 고요했다. 늘 눈에 피로감을 주지 않는 정도의 약간 밝은 불빛 밑에서 일을 했다. 나는 창문도 없는 조제실과 약 창고를 드나들며, 화창하고 쨍한 햇빛이 이내 그리워졌다. 눈이 부셔 눈을 찔끔 감아야 할 정도의 그런 강한 빛 말이다. 사람도 그리워졌다. 야간에는 정말 필요한 인원만 두고 일을 하기 때문에 조용히 혼자 일만 하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면 가끔 오며 가며 마주치는 간호조무사 선생님들, 경비원들, 심지어는 편의점 아저씨까지도 갑자기 애틋하고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밤의 외로움 속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는 어떤 동질감 같은 것이 피어올라 서로에게 응원을 보내고 밝은 기운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늘 웃으며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네고 서로에게 즐거움과 밝음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사실 그래 봐야 그것도 서로 지나가다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혼자 일하면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들에 대고 대화를 걸기도 했다. 자동 조제 기계에서 약이 없다고 소리가 울리면 “넌 그것도 없니~? 기다려봐 내가 넣어준다!” 하고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심심하고, 조용하고, 어둡다. 이러한 고요한 환경은 사람을 절로 차분하게 만든다. 원래도 차분하고 생각이 많은 나는 그 시기에 더욱더 많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일이 많지 않은 시간 대에는 오만가지 철학적인 생각에 휩싸였다. 과거에 지나온 상처들과 의문들을 하나씩 다 꺼내어 굳이 헤짚기도 했다.


‘그때 그 아이는 내게 왜 그랬을까..? 난 정말 그러지 않았는데. 왜 거짓말로 나를 곤란에 빠뜨리고 이간질을 했을까? 내가 그렇게도 미웠나?’

‘그 친구는 한때 나와 그렇게도 가까이 지냈는데 왜 마지막엔 결국 내게서 말없이 떠나가버렸던 것일까?’

‘나는 언제부터 꿈을 잃어버렸을까?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릴 땐 둘 다 있었는데 지금은 둘 다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나는 둘 중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왜 이렇게 못난 걸까? 왜 저들 만큼 더욱 완벽하고 철저하고 치열하게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난 것인가? 내가 태어난 의미를 다 하는 길은 무엇이지? 나는 개인의 욕심을 채우고 싶은가, 아니면 어떤 소명을 다 하고 싶은가?’


 점점 질문의 깊이가 깊어지고,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해답은 점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수많은 질문들 속에 둘러싸여 해답을 찾고 있었다. 몇 년 지난 지금에서야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그저 내가 선택한 것을 정답으로 일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때만 해도 한창 해답을 찾고자 헤맬 때였다. 매일매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틀어놓고 일을 했다. 괴로운 마음을 달래는데 크게 도움을 받았다. 하도 많이 듣다 보니 나중에는 거의 조제실에 앉아있는 스님이 되었다. 어떤 고민이 들 때마다 이럴 땐 법륜 스님이 뭐라고 하실지 말투까지 똑같이 따라 해 가며 스스로 읊기도 했다. 그래, 정말 절간이랑 비슷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내 할 일을 하고 있는 바쁘면서도 심심한 절간. 타인과의 대화는 급격히 줄고, 나 자신과의 만남이 많아졌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불균형한 상태는 결코 좋은 느낌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타인과의 만남 속에 중간중간 스스로 자신과의 대화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 매일 혼자 대화하다 간혹 가다 타인과의 대화를 가지는 것은 상당한 우울감을 가져온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스스로와의 대화는 늘 진지하고 내 기분을 고려해서 예의상이라도 웃어주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힐링 추천- 낮의 산책

야간 근무를 업으로 삼고 있던 그 어느 날, 평일 오전에 야외 공원을 산책하는 날이 있었다. 평소라면 퇴근 후 쿨쿨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좋아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위로는 화창한 하늘과 평화롭고 부드럽게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있었다. 아래로는 흐르는 물과 그 위로 잔잔하게 일렁이는 윤슬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한참 보고 있으면 오리들이 찾아와 날아올랐다. 주변으로는 녹색빛의 나무들이 우거져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아, 이미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그리고 그날 깨달았다.

‘야간 근무가 나의 기본 무드를 어두움으로 만들어버렸군.’

몸이 어디 아프다면 바로 야간 근무를 그만두었을 텐데. 우울감이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따로 진단하기도 어려워 스스로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의학적으로는 보통은 2주 이상 우울감이 지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2주 이상 우울감이 지속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지라도, 먼저 내가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판단하기란 정말 생각보다 어렵다. 그만큼 우리는 자기 자신의 기분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지내나 보다. 의식적으로 세로토닌을 올리기 위해 오전이면 햇빛을 양껏 쬐고, 몸을 움직여보는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만약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 나도…? 내가 마지막으로 쨍한 햇빛과 자연을 본 적이 언제였더라?’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연차를 내고 산책을 나가보시기를.

아마 이것이 나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 모두, 세로토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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