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취업준비생과 수험생활이 필히 동반하는 우울에 대하여
지금의 서른 즈음된 성인들에게 있어서 ‘취업준비생’ 또는 ‘수험생’ 타이틀을 갖지 않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예전 세대들도 비슷했을까? 과거 조선시대에도 관리가 되기 위한 ‘과거 제도’라는 게 존재했으니 생각해보면 청년들에게 있어서 시험, 취업준비 그리고 그 결과로써 합격과 불합격의 결과를 받는 것이 불가피했던 역사는 생각보다 그 뿌리가 깊은 것 같다. 그야말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과거에나 지금에나 현실인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예전 세대에 비하여 요즘 세대들은 가방끈은 참으로 길고, 그에 비해 취업의 문은 참으로 좁아서 결국은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려 젊음을 투자한다는 점이다. 많은 요즘 청년들이 한 번쯤은 ‘공무원 시험’ 또는 ‘고시’와 같은 수험생활에 도전한다. 사실 자신의 꿈은 뒤로 한채, 시대의 흐름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그런 시험들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도 아주 많다. 애초에 꿈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있었다 하더라도 응원받아본 적도 없기 때문에.
나는 80년대 후반생이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많은 친구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또 다른 준비 기간을 가졌다. 각종 시험을 통해 전문직을 얻고자 하는 친구들과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친구들이 거의 80프로 이상이었다. 의대, 치대, 약대, 로스쿨 입학시험, 변리사 시험, 5급/7급/9급 공무원 시험, 임용고시 등등. 몇몇 친구들은 발 빠르게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대학원으로 진학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그 비율은 상당히 적었다. 빠른 사람은 졸업하자마자 다음 진로를 진행하였고, 느리게는 5년 이상씩 백수 상태 또는 졸업만 하지 않은 의미 없는 휴학 상태로 수험생활을 하곤 했다. 주로 20대 중반에서부터 30대 초반 사이 벌어졌던 일이다. 그 아름답고 빛나는 나이에 다들 수험생 또는 취준생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이 그랬다. 지금이야 그 시기가 다 지나갔고, 나는 다행히 내가 선택했던 수험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쳐 목표로 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서른 중반이 된 아직도 시험 준비를 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기, 선후배들이 간간히 있다. 한때 무직 상태로 수험생활을 해본 나의 경험과, 주변에서 오랫동안 시험 준비를 하며 삶의 생기를 잃었다는 가까운 지인들을 정말 많이 보았기에, 서른 살의 우울의 원인으로 취업준비(혹은 수험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쇼트트랙 경기를 보다 보면 처음에는 거의 모두가 겹쳐 보인다. 엎치락뒤치락 그 순위를 다투며 경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몇 바퀴 돌고 나서부터는 그 차이가 현격하게 많이 나기 시작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아있다. 10대 시절 언제나 등수라는 것이 존재했고 점수가 중요한 삶을 살았다지만,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은 더 이후 20대 중후반부터 시작이다. 얼마나 진로 계획을 성공적으로 계획하고 충실하게 실행에 옮겼느냐에 따라 무서운 속도로 삶의 궤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오히려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차피 진로라는 것이 정답이 정해져 있는 길도 아니고, 개개인의 관심사도 모두들 다르니까. 그런데 이상한 점은 불안한 마음이 들면 다른 사람의 진로 계획을 기웃거린다는 점이다. 나만의 계획을 수정하고 굳건하게 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사람의 계획이나 기웃거리는 못난 짓을 꾸준히도 한다. 왠지 모르게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남의 것은 더 평탄해 보이고 쉬워 보인다. 단기간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한 친구를 보면서 ‘아, 나도 그때 저걸 했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심심찮게 하게 된다. 어차피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게다가 학생과 직장인의 격차는 체감적으로 정말 어마어마하다. 요즘 세대는 SNS세대라, 아무리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나 보게 될 일이 정말 아주 많다. 그래서 더욱 내 페이스대로 밀고 나가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남과의 비교에 시달리는 것 같다. 직장인이 되고 나면 그다음으로는 단체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연스레 경제적 독립, 결혼, 출산 등 인생의 과제들을 하나둘씩 수행한다. 직장인이 되는 단계에서부터 뒤쳐지기 시작하면 그 뒤로 줄줄이 모든 단계에서 늦어지기 마련이다. 같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몇 년씩 늦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개개인마다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만, 볼 때마다 내가 늦다는 생각과 어딘지 모르게 먼저 성숙해진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철부지 어린애가 된 뒤처지는 기분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 누가 정해준 적도 없지만 다 같이 지키고 있는 그 인생의 속도 때문에 결국 우울에 빠지기 시작한다.
나는 사회와 단절한 채로 공부만 하는 수험생활은 거의 1년 반을 경험했다. 비교적 빨리 시험에 합격한 덕분에 친구들에 비하여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 길어졌더라면 나는 아마 미쳐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속세와는 거의 단절을 하고 공부를 했다. 약간 미련할 정도로 내 모든 욕구를 억눌렀다.
가급적이면 모든 새로운 뉴스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나의 부족한 용량의 뇌에 그런 것들에게 자리를 쓸데없이 내어주는 게 아까웠다.
응원차 밥을 사준다는 친구들이 가끔씩 연락이 와서 “어차피 밥은 먹어가며 공부할 텐데, 잠깐 한 시간만 밥만 먹으러 나와. 내가 밥 사 줄게.”라고 고마운 제안을 해도 나는 그것을 모두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사회인이 된 친구의 모습을 보지 않을 수가 없고, 동시에 초라한 나의 수험생활이 더욱 우울하게 느껴져 공부에 방해가 될 것이 뻔하다는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수험생활 시작 직전에 마음에 드는 오빠가 나에게 사귀자고 고백을 해왔지만,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것 또한 거절했다. 왜냐하면 연애를 하면 분명 데이트에 시간을 뺏길 테고,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인해 안정적인 마음으로 장기적인 공부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게 말이야 쉽지 그 당시에는 이 모든 하나하나가 정말로 엄청난 유혹들이었다. 그렇게 독하게 배수진을 치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다행히 수험생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극단적인 행동에는 부작용이 존재하는 법. 나는 그 기간 동안 많은 친구들과 인연이 끊어졌다. 그 어렵다는 쌍방으로 통하는 사랑을 놓쳤다. 수많은 요즘 이야기들에서 도태되었다. 수험생활이 모두 끝나고 나서도 그것들은 다시 복구가 불가능했다. 심지어 시험을 모두 끝마치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에서는 정말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하도 말을 안 하고 지내서 말하기 능력까지 떨어져 버린 느낌이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입에서 걸려서 나오지 못하고 입 안에서 맴돌았다. 거의 반년을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정말 짧은 기간 단절되었을 뿐이었는데 내 모든 사회성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험생활을 오래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정말 좋지 못하다는 것을 그때 몸소 체험하였다.
수험생활을 가장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불안감이었다.
독서실과 집을 오가며 힘들게 생활을 이어나가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는 어느 회사에 들어갔다더라, 누구는 결혼한다더라, 누구는 외국에 유학을 간다더라 등등. 나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의 정해진 미래에 대해 말씀하시며 인생의 속도가 중요하니 빨리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답답한 마음에 편의점에 가서 간식이나 사 먹을 겸 달달한 초콜릿 우유를 하나 집어 들었는데, 초콜릿 우유를 집어 드는 동시에 눈물이 갑자기 이유 없이 쏟아져 나왔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계산대에서 허둥지둥 도망치듯 계산을 하고 나왔고, 그렇게 혼자 있을 곳을 찾다가 독서실 옥상에 올라갔다. 그 옥상에서, 츄리닝 바람을 한 20대 중반의 나는 먹으려다만 초콜릿 우유를 손에 들고 거의 한 시간을 내리 울었다. 그러한 불안감으로부터 오는 우울감은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을 만큼 강력했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지금 이렇게 노력하는 시간들이 내가 ‘불합격’을 하는 순간 결국에는 물거품이 되어 없었던 시간처럼 사라져 버릴까봐서 였다. 나이는 점점 쌓여갈 텐데 그렇다면 나는 몇 년까지나 이런 시험에 도전해야 하는 것인지 막연했다.
‘나는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면 어떡하지? 그 모든 시간들은 누가 보상해주지?’
생각하면 할수록 나를 우울의 늪으로 빠지게 만드는 무의미한 질문이었다.
성공적으로 수험생활을 청산하기 위한 두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험생활에 특효약은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성공적으로 수험생활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 최선을 다해 내 모든 것을 얼른 쏟아내기.
둘, 적절한 타이밍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와 지혜.
누군가에게는 약간 불편한 진실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나고 보니 정말로 모든 노력을 다하여 준비했는데 운이 나빠 계속해서 떨어지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그리고 만일 사실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노력 끝에 붙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하기 위해서, 그리고, 떨어졌을 때에 외부에다 그 억울함과 원망을 갖지 않도록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20대 중반에 시작하여 30대 중반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자기 노력한 것들을 성취했거나, 그렇지 못했다면 지혜롭게 태세 전환을 하여 다른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하여 결국에는 자신의 성향과 상황에 맞는 업을 찾아갔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것 만큼이나 아름답게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합격하면 좋지만, 합격하지 않더라도 건강하게 이겨낸다면 괜찮다. 좋은지 나쁜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직업을 가져야지만 잘 사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그 직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직업은 그저 업일 뿐이고, 계획이야 수정하면 그만이다. 그저 불합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해서 남는 미련과, 아름답게 포기하지 못하여 늘 마음 한편에 아픈 실패담으로 자리 잡아 남은 생애 동안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시그널로서 마음속에 두는 것이다. 그것은 남은 생애 동안 나를 우울에 가둘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