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your own two hands
내일이 중간고사인데 아직 암보조차 불안하다. 지난주 클라라 선생님 레슨시간, 연습 안해간 채 피아노 앞에 앉아.....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듯 하다.
"그래 들었지? 니가 딱 이만큼이야"
하마트면 레슨 한 번 제대로 받아보기 전에 짤릴 뻔 했다. 연습,연습, 연습, 글을 쓸 시간이 어디있을까.
하루에도 마음을 수없이 바꾸다가 수강신청을 했던 날이 있었고 이제 중간고사가 바로 코 앞인데.
작년 이맘 때처럼 그냥 놓아버릴까. 한 학기 그냥 학점은 포기하고 레슨만 받기로 할까. 안돼 난 정말. 온갖 자괴감이 밀려오다가 하나님께 의지하며(많은 합격수기에서 보아온 것처럼) 나 내일 할 수 있을거라며 오늘 밤새워 다 익힐 것이라며 기운을 얻어보기도 한다.
포기에 대한 갈등이 여전하다. 지나고나면 후회할 일임에도 꾸준히 잘 못 해와서, 창피함의 순간을 못 넘길 시험 때문에 참여조차 안하리라, 다음에 잘하리라, 내가 왜 이런 사서 고생을 하는건지 오락가락하는 심정이 계속 된다.
새벽에 졸린 눈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들려지는 소리에 귀기울이다 눈이 뜨이는 아침... 간밤 내 포기와 진행을 왔다갔다거리던 마음을 다시 꽉 잡아주는 건 음악이다. 그것도 클래식 에프엠에서, 자동차 CD에서 들리는 음악이 아닌, 내가 잘 치는 초등생보다 못한 실력으로 뚱땅거리는 절룩절룩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시험곡인 8번 3악장을 치다가 스스로 행복해서 역시 난 포기할 수 없다 고 되새겨지는 이 마음.
아무도 모르리. 음악을 '듣기만' 하는 이들은 정녕 모르리. 설령 녹음해서 내가 내 음악을 듣는다면 당장 포기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피아노를 못 치고 유려하지 못하여 힘들어하고 연습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만, 내가 듣기에도 들어줄 수 없는 음악일 때가 더 많지만, 그 음악을 피아노 치는 나는 왜 즐거운지 모르겠다. 그리고 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고 있는지도.
이것이 바로 음악이 가진 중독성이 아닐까. 그 깊은 심연에 조금 닿기 시작한 발걸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20년 전 이 책을 처음 하이텔에서 소개받고 늘 갖고다니며 읽으려 했다. 어려운 책이지만 20년이 지나 다시 한 번 책장을 넘기니 왜 그동안 이 책을 갖고있었는지 알 것 같다. 딱 지금이 이 책을 읽기 적절한 시기이다.
연습을 해야하는 시간이지만, 날아가는 생각을 잡고싶었다. 그래서 글로 남겨본다. 음악은 고통스러운 만큼의 기쁨도 큰 것이다.
그래서 공평해. 사서 고생한다 해도 내 두 손으로 직접 연주하는 순간 느끼는 경이로움. 그 기쁨. 그 믿음이 확고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