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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Sep 29. 2017

휴대할 수 없는 악기, 피아노

휴가지에서 피아노 찾기

    거의 매일 올리다시피하던 글인데, 휴가로 제주도에 와 있으니 모든 일정이 올스탑 되었다. 직장인 모드, 글쓰는 모드, 학생 모드, 선생 모드 모두 올스탑. 대신 새로 생긴 모드는 온전한 주부이자 제주도 유랑객 모드.  이렇게 한가한 시기가 내 인생에 또 언제 올까 싶을 정도로 내 인생의 일주일을 온전히 제주도 그리고 아이에 대해 알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록 일주일이지만 온전히 내가 아이를 캐어하고 챙겨야하니 신경쓰고 새로 배워야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참 어려우면서도 행복하다.  나는 이번에 새로 나온 레토르트 식품을 렌지 없이 조리하는 법을 배웠고, 남은 음식은 내 배가 아닌 쓰레기통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던 생각을 고쳤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아이는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 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밥이 맛이 없으면 아예 안 먹는 아이였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되었다. 이건 엄마에게는 반찬투정보다 훨씬 무서운 일이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밥은 늘 두세그릇씩 먹던 아이라 식성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맛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참 세련되게 표현한다. 가차없이 행동으로. 그나저나 이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 냉장고를 다 뒤질 듯한 태세이니 추석을 넉넉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여행에 가장 큰 우려를 표하신 두 분의 스승이 계시다.  일찌감치  "올 여름휴가는 피아노 휴가가 어떠신가요" "네? 그게 뭐에요 교수님" "휴가기간 중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이죠." "(헐~)"

   한 6월 즈음에 하시던 이야기. 이러저러 여러 모드에서 다 벗어나 온전히 피아노에 집중해본다. 굉장히 솔깃했다. 이런 시간을 거치면 부쩍 성장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이미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있기에, 찔끔찔끔 시간들을 쪼개어 가장 최저수준으로 턱걸이로 넘기고 넘어가는 식으로, 매우 느리고 느리게, 나아가고 뒷걸음질치다가 다시 나아가는 생활들의 연속이지 않았나. 오로지 음대학생의 모드가 되어 홀로 외롭되 피아노와 음악이 있어 혼자이지 않은 시간들을 거친 이후의 내 모습을 기대해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 일은 제주도 유랑객 모드를 끝내고 꼭 경험해보기로 미루었다. 환상적인 2017년 추석 연휴 기간이 있으니 말이다. 그 연후에 교수님과 이야기나눌 수 있을 것이다.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을 피아노와 보내셨을 교수님. 그리고 단 사나흘 정도 온전한 음대생으로 보낸 내가 어떤 교감을 느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른 한 분의 스승은 일생을 피아노와 함께 하고 여전히 함께 하고 계시는 클라라 선생님이시다. 블로그 글에서 읽은 선생님의 음악에 대한 이해와 깊이 그리고 일상에 반해 휴가 일주일 전에 첫 레슨을 받았다. 서로 다른 원두로 만든 두 잔의 커피 그리고 독학하신 사주명리학으로 풀어주시는 이야기들에 홀딱 반했는데, 매주 서너시간 일년 반동안 사주명리를 개인레슨받은 나보다 훨씬 통변에 능하셨다. 피아노는 내 수준에 한 일 년 정도 연습해야 겨우 들을만 해질까 말까 할 듯한 곡의 악보를 초견으로 곡을 만드시고 해석해주시는 것을 보고 무조건 믿고 따르리라 결심하게 되었다. 수업을 허락받으며 이 여행에 대해서도 미리 허락받았으니 조건은 '여행 중 피아노를 찾아 연습할 것'이었다.

    선생님과의 대화 중 예명인 '클라라' 가 슈만과 브람스의 사랑을 받았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클라라가 아니라 곱추에 평생 병으로 고통받았던 '클라라 하스킬'의 클라라 였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는데, 클라라 하스킬의 모짜르트 연주는 모짜르트의 연주가 그러하리라 는 평을 듣는 연주이다. 바흐와 베토벤, 쇼팽과 리스트도 가르치시지만 사실 선생님의 마음속 오랜 이상은 모짜르트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유기견 여섯마리를 십 년 이상 키우시며 요즘 노견의 병구완에 지극정성이신 모습..그리고 예술과 공부, 교육에 대한 자부심까지.  여러 모로 애잔함이 느껴지는 스승이시다. 연습을 안하고 자세가 부족해 아웃당한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내 스스로 의욕적으로 시작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주시던 학교 교수님과는 다른 분인 것은 진즉 알고 여쭈었으니, 이번 휴가는 큰 고비인 셈이었으나 무사히 허락을 받아 안도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휴가지에서 피아노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겨우 하나 발견한 건반이 성산일출봉 근처 떠돌이식객 이라는 횟집에서 장식용으로 둔 아리아 풍금.

    다른 한 대는 섭지코지에 있는 지포라이터 박물관에서 찾은 라이터 속 화이트 그랜드피아노.

진짜 칠 수 있을만한 피아노는 이 박물관 2층 까페 민트 객장에 있던 그랜드였으나

한 마디로 내가 연습하기는 불가능했다.


    리조트에서도 피아노를 연습할 곳을 물었으나 있을리가. 대신 가끔 이런 문의를 받는데 익숙한지 프론트의 여직원이 리조트 옆 마을에 피아노학원이 하나 있지만 연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3박을 보내고 이동한 중문 근처의 리조트에도 피아노는 없다고 했다. 요즘은 욕실에 욕조가 없는 곳이 많아 집의 욕조를 생각하며 필수조건이 욕조였던 숙소. 창밖으로는 수영장이. 목욕실에는 자쿠지욕조가 있는 이 곳은 왠지 피아노도 있을듯한 비쥬얼이라 은근 기대해보았지만 원래 피아노는 의식주 그리고 가외로 첨가되는 의식주의 편안함과 편리함에는 포함되지 않는, 있어도 없어도 살아가는데 하등의 불편함이 없는 물건이라 리조트에 없는게 너무나 당연했다.

   오죽 마음이 피아노연습에 가 있었으면 지나는 길에 슬쩍 본 영화 <오션스13> 에 그들이 모여 작당하던 룸에 있던 1초 정도 비춰진 그랜드 피아노를 보았을까.

   그렇다. 최고 호텔에 가장 좋은 스위트룸에는 피아노가 있을지도 모르고 어렵겠지만 방해되지 않는 시간에는 연습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드니 그 정도까지는 불가능한 나의 가난함(?)이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 피아노를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한히 감사해야할 일이지만 욕심이란 이렇게나 끝이 없는 것이다.

    휴대할 수 없는 악기, 피아노라는 악기를 택한 음악인은 이렇게 피곤하다. 어디 휴가지에서 뿐일까. 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은 악기의 질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있기만 하면 다행인 악기 자체는 물론이고 기타나 바이올린 처럼 음정을 내 스스로 조절하는 것도 불가능하니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고 싶다면 조율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리흐테르의 일화는 유명한데, 콘서트를 앞두고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피아노를 쳐보지도 않고 일어섰다. 왜 소리를 들어보지 않는지 묻는 말에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차피 마음에 들지 않을테니까요"




  자신만의 피아노를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굴드의 피아노> 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매우 독특한데 단순히 글렌 굴드의 이야기가 아니다. 목차의 도시명은 연주자, 피아노, 조율사가 태어난 고향 으로 시작된다. 각각의 탄생과 역사로 시작되고 이 셋의 만남과 그 이후의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연주자 글렌 굴드가 주인공이 맞지만 그가 연주하고 사랑하던 피아노 그리고 그 피아노를 조율한 조율사들도 똑같은 비중의 역할로 조연이 아닌 주인공급인 것이다.

    굴드, 그의 스타인웨이 CD318, 앞을 못보는 조율사 에드퀴스트의 탄생과 만남과 소멸에 이르는 이야기. 원제 <A Romance on Three Legs>를 읽어보면 피아니스트와 피아노 그리고 그 둘을 잇는 조율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평생에 내 피아노를 만나게 될 일은 어쩌면 없을지도, 굴드처럼 만나더라도 그 만남이 그다지 길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또 만나더라도 소유하지 못하고 바라만보게 될런지도..


    그래서 피아니스트는 익숙해져야 한다. 모든 피아노에. 단지 건반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건반이 존재하기만 하다면 소리가 울거나 음정이 다소 안 맞는다는 조금 불편한 점은 감수해야한다. 지금 심정으로는 정말 어디 내 곁에 있기만 하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휴가지에서 피아노찾기. 쉽지 않다. 충분히, 확실히 재충전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날, 처음부터 차곡차곡 연습을 시작하기로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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