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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Sep 19. 2017

연주회 산책 :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세상 번뇌 시름을 잊게해주는 그의 음악

     한 때 집 앞에 CGV가 생기면서, 모바일 예매 후 5분 전에 집을 나서 여유롭게 보고 들어오던 때가 있었다. 수 년 동안 CGV의 연간 VIP가 되어 결재할인쿠폰의 쏠쏠한 기쁨을 누렸는데, 그 때는 최신영화는 밤잠을 줄여서라도 꼭 보아야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때 만큼의 열정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면서 요즘엔 음악회에 간다. 올 봄 롯데콘서트홀에서의 마태수난곡을 시작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각각 리스트와 파가니니의 곡으로 연주하는 공연. 라르스 포그트와 로열 노던 심포니의 베토벤 협주곡과 교향곡 연주.

      예술의 전당에서 있던 백건우 님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8회 공연에 6회를, 그리고 9월은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회를 끝으로 이제 10월에 있을 라파우 블레하츠의 피아노 연주를 기다린다... 연주회 바람이 들었다.  9월 초 일주일간 매일 예술의 전당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피로에 시달렸던 터라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공연에 가는 일은 지양하고 싶었지만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씨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나도 이렇게 부지런 떨며 피곤함을 이기고 음악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발동이 걸린 상황이기에 꾸역꾸역 지난번에 현장예매했던 표를 들고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공연은 참으로 훌륭했다. 직장분들이 같이 술 한 잔 하자시던 말씀을 뿌리치고 다녀올만 했다. 아침에 출근하니 지난 밤 음악으로 샤워한 귀를 가진 내게서 무언가 빛이 나는지 출근길에 만난 동료분이 내게 예쁘다 하시고, 술자리에 다녀오신 동료분은 하루 종일 너무나 피곤해하시는 모습이었다.  술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잘 모르겠다. 그 또한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내 귀와 마음을 따뜻하고 열정적이며 재미있던 음악으로 감싸 온기를 느끼는 동안, 오고가는 술잔 속에 더 큰 계획과 미래가 그려졌을지, 냉혹한 세상 속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가 나누어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간밤의 술자리로 힘들어하시던 네 분은 점심해장도 함께 하셨다. 내가 선택한 일이라 후회는 없지만, 나도 가끔은 술자리 기분을 좀 내보고 싶기도 하다. 소주를 못 마시는 관계로, 야쿠르트 아주머니께 새로 나온 조금 큰 병의 얼려먹는 야쿠르트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은박뚜껑 양쪽으로 구멍을 뚫고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소주잔 마시듯 손을 꺽어본다.


     프로그램을 사서 정독하고 있다보니 그 분이 나오셨다. 미샤 마이스키 그리고 그의 여섯 자녀 중 큰 딸인 피아니스트 릴리 마이스키. 부녀의 머리스타일이 같았다.

   낭만시대의 곡이 이어지고 2부 마지막 벤자민 브리튼의 첼로 소나타 가 시작되었다. 곡을 들으며 나의 몰입과 이해도에 스스로 놀라게 되었다. 때는 앞서의 낭만곡의 분위기에 심드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브리튼의 곡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이었다.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고 곡에서 마음을 뗄 수가 없었다. 자꾸 관심이 가는 소리와 선율이었다.

    벤자민 브리튼은 거의 생소한 작곡가였다. 오페라 아카데미에서 피터 그라임즈 라는 오페라의 작곡가였다는 기억만 얼핏 있는 작곡가.  그의 첼로소나타는 앞서의 곡들과 형식도 느낌도 달랐다. 소음과 같은 그런 현대곡도 아니지만 멜로디가 뚜렷한 낭만이나 고전과도 다른, 그 사이 시대의 곡, 그런데 눈을 뗄 수 없어 계속 마음을 기울여 듣게 되는 곡. 동안 알아오던 바로크시대나 고전과 낭만시대의 곡을 들을 때 느낄 수 없던 느낌을 받고 그 시점에서 확연히 내가 현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왜 그런 곡들의 이해가 어려웠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되었다. 브리튼의 첼로소나타를 들으며 나도 집에 얼른 가서 무언가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3악장까지 즐겁게 듣고 무한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청산에 살리라 를 포함해 다섯 곡이나 앵콜곡을 연주해준 미샤 마이스키. 한 곡 한 곡을 마칠 때마다 제발 이 음악이 끝나지 않기를, 계속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마지막으로 전 공연이 마무리되었는데 특히 이 마지막 곡이 마음을 깊이 울리며,  전 주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듣기로 다소 피곤했던 나날들을 따뜻하고 평온하게 안아주는 느낌을 받은 연주회라는 생각을 했다.

    콘서트홀을 나오니 그의 포스터 밑 대자보에 앵콜곡의 제목을 친절히 알려주고 있었다. 이 사진의 포스터는 곧 줄을 섰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가져간다. 가져갈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아쉬웠다. 정말. 내 방에 둘 수도 있었을텐데..  그 아쉬움을 뒤로하고 연주에 감동받은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그의 CD를 구입했다.

*좌 서예관  우 음악당



    그리고 이 밤, 그 CD를 듣는다. 그의 음악은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다른 일을 하며 듣다가도 한순간 나를 돌아보아달라고, 잊지말아달라고, 순수하고 여린 모습으로 간절히 호소하는 아이처럼, 또는 우아한 아가씨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타고난 흡입력으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여배우를 생각나게 하는 면이 있다. 오로지 자신 외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 그녀의 말과  아름다움에만 빠져들게 하니 세상사 온갖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릴 여지를 주지 않는다.   

    굳이 귀기울여 들으려는 노력이 필요없이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악을 틀어두기만 해도, 피로했던 하루를 잊고 편안히 쉴 수 있게 되는 마법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보니 그가 앵콜곡으로 고른 한국 가곡도 '청산에 살리라' 였는데, 이 곡은 나에겐 고등학교 때 리코오더 시험곡으로 불던 곡이고 참으로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여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그의 연주가 주는 메세지가 이 가사에 들어있는 것 같다. "나의 곡을 들으며 세상 번뇌 시름을 한순간이라도 잊고,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그의 음악이 내게 전하는 메세지는 이러했다. 요즘 퇴근 후 내 방에 발을 들이면 첫번째로 하는 일이 그의 CD를 트는 일이 되었다.




     CD나 라디오만이 아닌 그의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역시 음악이든 미술이든 대가의 연주를 직접 듣고 대가의 작품을 직접 보는 것만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없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이번 연주회 이후로 난 더욱 연주회 바람이 들 것만 같다. 피곤하지만 행복한. 겨우 시간을 만들어 가야만 하는, 또 다른 것은 포기하기도 해야하는 연주회. 진정한 음악의 기쁨을 알게 될 시간. 너무 늦지는 않은걸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듣고 편안해진 내 마음속 한 편에서는 '이제 시작이라 다행이다'는 생각도 든다. 음악이 끝나길 아쉬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앞으로 알게 될 음악이 많으리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행복한 함박웃음을 짓게 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생로불사의 꿈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은 세상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음악의 기쁨과 위안을 느끼게 해 준 미샤 마이스키 씨,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라며, 다음 내한 공연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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