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라는 평생친구를 만들어주는 일
지지난주에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 예술의 전당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참 행복해했지만 음악분수 앞에서 신나게 얼음땡 놀이를 하던 일 때문이지 음악회 때문은 아니었다.
음악회에서 클래식음악을 들어보자는 것은 나의 과욕이었다. 초등학교 1.2학년으로 워낙 어렸기 때문에 음악회 측에서도 아이들의 관람은 그다지 권장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것을 몰랐는데, 예를 들면 학생할인은 중학생부터 적용되었고, 티케팅하면서 학교와 반을 물어보며 아이들이 과연 차분히 음악을 듣고 연주와 감상에 방해가 안되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이들은 시작과 동시에 무한정 잠의 나라로 빠져들어 한 친구는 1부 연주를 마치고 박수가 끝나고 잠잠해질 때까지도 일어나지 않아 흔들어 깨워야했다. 2부 연주는 보지 않기로 서로 이야기 나눈 후 예술의 전당 곳곳을 견학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비타민 스테이션이나 오페라홀 그리고 음악당 이 곳 저 곳을 보다보니 2부 연주가 끝나고 음악분수가 시작되었다.
10분 정도 음악분수 바로 앞에서 신기함에 분수를 쳐다보던 아이들, 얼음 땡 놀이로 40분을 내내 뛰어다니며 지칠대로 지친 연후에야 집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연주회를 간다면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이상은 되는 나이가 좋고, 아이들이 간다면 그에 맞는 음악극이나 국악극 등 나이에 맞는 공연을 보러 가는 편이 모두에게 좋다는 교훈을 얻은 하루였고,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예술의 전당 음악분수를 보며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던 추억은 남길 수 있었으리라며 스스로 위로한 하루였다.
그렇게 이 날 아이들과 5시간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낸 후 다음 수업시간에 만나니 아이들은 서로 더 친해진 느낌이고 나에 대한 의존도와 친밀감도 한층 깊어진 느낌이었다. 여전히 장난은 많이 치는 편으로 소리를 빼액~ 질러야하는 순간도 있지만 말이다.
이 날은 집에 있던 두 개의 지휘봉을 들고 갔다. 가서 잠만 자고 오긴 했으나, 명색이 음악회를 다녀온 기억을 좀 더 활용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작년 한학기 동안 들었던 지휘법 시간의 수업내용을 토대로 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먼저 아주 간단히 자리배치를 설명했다.
오케스트라는 관현악단 이라는 명칭으로 말 그대로 관악기와 현악기로 이루어진 음악단을 말한다.
지휘자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는 현악기
가운데는 관악기, 그리고 뒤편으로 타악기가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악기로는 좌측 바이올린, 우측 첼로, 가운데는 오보에나 클라리넷, 트럼펫, 호른 등의 관악기, 뒤쪽으로 심벌즈나 큰북, 작은북 등의 타악기 배치이다.
다음으로 지휘자에 대한 설명이다. 아이들에게 지휘자의 역할을 물으니 박자를 맞춰주는 사람 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약간의 힌트를 주긴 했지만 비교적 정확한 답을 말해주었다.
지휘봉으로 8자를 그리며 박자연습하기 좋은 곡이 2분의 2박자의 모짜르트 교향곡 40번 1악장이다. 또는 총보(지휘자가 보는 악보, 모든 악기의 악보이다)와 음악이 같이 소개되는 영상도 있다. 모짜르트 교향곡 40번 1악장 총보
각 지휘자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며 음악의 해석이 달라서 빠르기나 뉘앙스가 다르다.
요엘 레비, 사이먼 래틀, 레너드 번스타인, 다니엘 바랜보임의 연주를 들어보자.
아이들이 지휘자의 모습에 초집중한 영상은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연주 때였다. 러시아 출신의 지휘자인 이 분은 지휘봉으로 이쑤시게 를 쓰는 분이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쇼맨쉽으로 치부하기엔 이 분을 지칭하는 수식어가 현란하다.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 제일 바쁜 지휘자 라고 불리워지는데 어쨌든 이 분 손에 들린 이쑤시게를 보기 위해 바짝 다가든 네 아이들의 눈망울이 반짝반짝 보기 좋았다.
이제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지휘봉을 잡았다. 자리에 앉은 세 아이들은 각자의 위치에 맞는 악기를 연주하는 흉내를 내기로 했다. 지휘자의 좌로 바이올린, 우로 첼로, 가운데는 관악기이다. 내가 유튜브의 영상을 틀으니 아이들은 짐짓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곧잘 흉내냈다.
지휘자는 박자를 맞추기도 하지만, 지휘봉을 들지 않은 손으로는, 몸짓과 표정으로 곡의 악상을 알리고 사전에 악기가 들어가는 신호도 준다 며 영상을 보며 알려주었다.
다음으로는 가장 목소리도 크고 왈가닥인 민이가 나왔다. 앞으로 나와 지휘봉을 들자마자 친구들에게 "자, 날 잘 봐. 내 말 잘 들어." 라고 큰 소리를 친다. 오호, 좋은 기회다. 내가 끼어들어야겠다. "자, 민아 잠깐,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마음을 얻어서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해. 만약 내가 지휘자라며 단원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호령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거야. 그러면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기 어렵겠지? 지휘자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쉽으로 단원들의 마음을 얻고 이끄는 역할이 중요하단다." 내 말을 듣고 한층 차분해진 수민이가 지휘봉을 들고 박자를 맞추어본다. 마지막으로, 제일 어린 윤이는 넷 중에 가장 차분한 성격 그대로 역시 얌전한 느낌의 지휘를 마쳤다. 아이들마다 두어번씩 앞에 나와 서툴지만 지휘자의 모습을 흉내내어 보았다.
마지막으로, 피아노는 어디 있느냐 는 질문을 잊지 않은 아이들이 기특했다. 함께 들은 피아노 협주곡은 북한소녀 마신아의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20여분 정도의 영상인데, 정말 아름다운 연주이다.
과연 2016년,13세의 나이로 쇼팽 국제 청소년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할만 하다. 그 이전 2014년에는 리스트 국제 콩쿠르와 라흐마니노프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였다니 대단한 소녀이다. 영상 속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 이 곡을 다른 대가가 연주한 영상을 보아도 저 북한 여학생 마신아 의 연주가 훨씬 아름답고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다. 20여 분의 영상을 마치며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지휘자들도 그녀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모습이 보기좋다.
아이들에게 다섯살 위의 언니가 치는 모습은 신기하고 부러웠나보다. 아름다운 연주에 가만히 듣는 모습이 귀여웠지만 그것도 잠시, 언니를 흉내내어본다며 피아노 앞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피아노 뿐 아니라 음악의 다양한 세계를 알게되어 이해하고 감상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앞으로 커가며 학과공부에 시간을 빼앗기고 음악이나 미술, 체육 등 예체능을 못할 수도 있을텐데,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나 하던 잘못이다. 부디 우리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그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과 수업에 예체능이 있는 이유는 너무나 충분하다. 국어 영어 수학에 지친 아이의 심신을 바로잡아주고 달래어주는 과목이 예체능이다.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시간을 쪼개어라도 반드시 해야하는 것들은 바로, 하나도 실용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이런 과목들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에게는 구체적인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영혼의 심연이 있고, 그것은 알래스카의 얼음산처럼, 눈 앞에 보여지는 얼음보다 수면 아래 깊은 바닷속 얼음이 훨씬 크고 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말씀을 나누다 보면 이런 약속과 다짐, 우리 함께 한 합의 따위는 어느 순간 잊은 듯 말씀하실 때가 있다. 피아노는 어차피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이 되면 시간이 없어 못 배울테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느정도 진도를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학창시절에는 공부와 과제에 지치고 힘들텐데, 음악이나 미술, 체육수업이 없다면 아이들은 지친 그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학과공부에 매진하게 될 나이가 된다 하더라도, 하루에 20분이거나, 일주일에 한 두 시간이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예체능 한 가지는 꼭 꾸준히 가르치고 권하는 부모님이셨으면 좋겠다.
그것은 아이 인생에 평생토록 함께 할 훌륭한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친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와 많은 것을 함께 나누는 존재이다.
부디, 아이들 인생의 가장 길고 큰 도전을 하게 될 시기가 다가올 때, 그런 친구를 아이에게서 빼앗지 않는 현명한 부모님이시기를, 오늘 수업을 마친 네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그런 현명한 부모님이시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