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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Sep 18. 2017

Pre ABRSM : 음악과 언어

Piano star1의 두 곡을 이야기로 만들어보며

      지난 주에는 이제의 수업이 있었다. 집에 피아노가 없는 친구인데도 워낙 영민해서인지 수업시간 앞 뒤 잠깐의 예습과 복습으로 꽤 좋은 소리를 낸다.    

    이번 주에는 전주에 배웠던 <Watch Your Step> 과 <A Sad Story> 의 악보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보았다.


    먼저, 음악과 언어 를 생각해보자. 음악과 언어 모두 '소리' 라는 수단으로 전달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소리를 내는 이유는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언어는 그것을 좀 더 명확히 나타낼 수 있다. 음악은 언어처럼 뚜렷하거나 명확하지는 않지만 뉘앙스나 느낌은 전달이 가능하다.


    아래의 두 음악을 언어적 표현으로 묘사해보자. 친절하게도 그림이 함께 있고 악상기호가 구체적이다. 제목과 함께 이것들을 잘 활용하면 언어적 묘사가 더 수월해질 것이다.


   첫번째 곡이다. 제목은 '주의해(발걸음을 조심해)' 이다. 그림을 보면 세 동물이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피며 숲길을 걷고 있다. 첫번째 표현기호가 '꾸준히 그리고 조금 주의를 기울이며' 이다. 총총총 숲길을 걷다가(1~8마디) 9마디에선 소리가 작아지며 부드럽게 이어지는 소리를 낸다. 이 부분은 그림에 나온 부엉이가 정찰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걷는 동물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부엉이는 이들의 앞길을 날며 선회하다 (9~11마디) 걱정될만한 일이 없으리라 생각되자 '괜찮아.와도 좋아(12마디)'라며 경계태세가 해제된다. 동물들은 다시 처음처럼 숲길을 총총 걸어가며 멀어진다.


    두번째 곡을 보면, 제목이 '슬픈 이야기' 이고 표현기호 역시 '슬프고 슬픈 마음으로' 라고 되어있다.  그림을 보면 펼쳐진 노트 연필과 지우개가 있고 책상 위의 전등이 노트를 비추고 있다. 곡을 먼저 계이름으로 불러보면 '라'음이 많이 쓰인다. 전체적으로 3박자음이 자주 나오는 등 음표가 많지 않고 마지막 부분은 점점 느려지다가 '미'음으로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이 곡에 대해 나와 이재의 이야기 만들어보기가 조금 차이가 났다. 분명 이런 해석에는 요즈음의 생활상도 그대로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 : 전등을 켠 것으로 보아 식구들은 모두 자는 밤에 혼자 공부하는 중이다. 내일이 시험이라 공부는 해야하지만 잠이 쏟아진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이 든다.

   이제의 이야기 : 혼자 공부하다가 너무 어려운 문제가 나와서 고민중이다. 혼자 이렇게 저렇게 노력해보다가 포기하고 어머니께 여쭈어본다. 어머니를 부르며 곡이 끝난다.


    두 곡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여기에서 장조와 단조의 차이도 느껴볼 수 있다.  장조인 Watch your step 에는  '도'음이 많이 쓰인다. 첫 시작도,  끝맺음도 '도' 로 끝나고 도미솔 화음이 곡에 잘 어울린다.  한 편, A sad story에서는 '라'음이 시작이고 '라도미' 3화음의 5음으로 끝맺음된다. 제목도 곡조도 전체적으로 슬픈 느낌이다. 노트와 연필이 그려진 그림이 아니었다면 다른 식의 슬픈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위의 곡은 <Piano Star1>에 실린 두 곡으로 책을 펼친 양쪽면이 장조와 단조의 곡으로 되어있어 장단조 느낌의 비교, 슬러(이음줄)와 타이(붙임줄)의 비교 공부에도 좋은 페이지였다.



  

    우리가 언어로 말을 전달할 때에는 의사소통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다른 뉘앙스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음성언어에는 말투, 목소리의  높낮이, 강약, 말을 맺고 끝는 리듬과 프레이즈가 있다. 또한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되고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게도 된다.

      음악의 멜로디와 리듬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창작하는 작곡가의 성향이 사람마다 다른 성향의 말투로 비유할 수 있겠다.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여기에 화음 및 다른 여러 악기들의 소리가 합쳐지면 그 분위기는 더 강하고 화려해지고 추상성이 더 심화되기도 한다.

     언어는 일반적으로 명확한 의미의 전달이 가능하나 음악은 언어에 비해 추상적이므로 분위기와 뉘앙스는 비슷하게 느끼더라도 이야기로 만들기는 무한할 수 있다. 그만큼 자유롭게 판단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또한, 언어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며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공통된 기본적 약속에 의한 의사소통이듯이 음악 또한 공통된 경험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흔히 서양음악사에서 바로크시대, 고전시대, 낭만시대, 현대곡 등으로의 변화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곡을 듣고 직관적인 느낌으로 해석하고 연주해도 무방하겠으나, 시대적인 변화에 따른 공통적 약속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곡의 이해와 감상에 도움이 된다.


     직관적인 감정을 음악으로 잘 표현하는 이루마 나 조지 윈스턴, 브라이언 크레인, 앙드레 가뇽 등의 피아노곡을 듣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음악을 듣고 이해하기에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도 위 악보와 같은 간단한 선율 등 주제선율이 분명히 있으니 그 음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따라간 선율에 당시 나의 상황에 맞는 나만의 이야기를 입혀보면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를 받게도 되고 기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음악을 듣는 일은 더욱 즐겁고 흥미진진한 일이 된다.


    " 음악은 인류의 우주적인 언어 " 라고 언급한 롱펠로우나 "음악은 천사의 언어" 라고 말한 토마스 카일라일의 말을 생각해보자. 서양음악에서는 종교적으로 음악의 사용이 매우 중요했고 종교음악의 발전에서 현재 서양음악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요즘에도 개신교 예배서는 음악이 매우 중요하며 예배시간 전체가 음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음악이 인류의 언어라는 말을 가장 잘 보여준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영화 <The Mission>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 장면이다. 선교사를 십자가에 매달아 폭포수에 떨어뜨리기도 하는 원주민과의 첫 만남에서, 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그들과의 소통을 도운 건 말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이 곡을 작곡한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삼고초려하여 가사를 입혀 부른 곡이 사라 브라이트만의  <Nella Fantasia> 이다)


     음악은 구체성을 띈 언어보다 더욱  인간의 내면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대한 언어이다. 음악을 감상하고 연주하고 공부하면서 내 마음을 면밀히 관찰하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편안함과 기쁨을 누리는 하루하루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음악을 배우는 목적과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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