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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Nov 03. 2017

나의 기타 이야기

음악과 함께 생명으로 2

    송창식 님의 <나의 기타 이야기>라는 곡을 참 좋아한다. 노래방에 갈 때 간혹 부르게 되는데 어떤 노래를 불러도 동요티를 벗어날 수 없는 내게 나름 잘 어울리는 느낌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곡이다. 송창식 작사 작곡의 이 노래는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가 아름답고 아련한 곡이라 여운이 오래 간다.


    내게도 오랜 기타 이야기가 있다. 어언 20년이 되어가는 신경숙 선생님과의 인연. 요즘은 같이 나이들어가는 중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켜보며 격려해주는 사이가 되었지만 20여년 전 그 때, 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햇병아리 사회초년병이었고 30대 중반이셨던 신선생님은 직장인이자 클래식 기타 독주회를 열기도 한 연주자셨다.

    기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 하이텔을 통해 수소문해 만나게 된 신선생님. 일주일에 두 번, 선생님 댁에 가서 레슨을 받기로 하고 여덟번 째 회차까지 왔다. 선생님께선 늘 그러하시듯 오른손 손톱을 정성껏 손질해주셨고 이후에는 현을 퉁기며 소리를 들으셨다. 소리는 내가 들어야한다고, 깊고 고운 소리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떤 것이 좋은 소리였는지 계속 현을 퉁기게 하셨다.

    그리고 그 날이 내 첫 번 째 기타 도전의 마지막 날이었다. 회사일을 핑게로 지속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6년 즈음 지난 어느 날 난 다시 선생님을 찾았다. 부모님과 함께 사시다 종로의 빌라로 이사가신 선생님을 뵙고 다시 자세부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다시 손톱을 정성껏 손질해주셨고 다시 현을 퉁겨 소리를 듣게했다. 이 번에는 세 번 째 수업 이후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수업을 안 가며 그렇게 또 두 번 째 기타 배우기 시도도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2009년 즈음, 아무래도 오래 전 뽑은 칼로 무우라도 썰어야했는지, 도무지 포기가 안되었던지, 나는 당시 자주  지나던 길목에 있던 강남기타학원이라는 곳에 등록하게 되었다. 첫 시간.. 도레미파솔라시도 자리를 배운 이후 한 시간 동안, 난 세 곡이나 칠 수 있게 되었다. 짧은 동요라지만 자그마치 세 곡이나.


   갑자기 동안의 모든 의문이 풀리면서 신선생님이 몹시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선생님을 만난 건 2015년이다. 선생님은 오래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신 후 문화센터에서 기타를 가르치고 계셨다. 마침 신사동 주민센터에서 주 1회 클래식 기타반이 개설중이었고 늦은 퇴근 후 단 20분이라도 수업을 참여하게 되면 그 기타 연주 소리에 힘든 하루가 맑게 개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때의 선생님 수업방식은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대일 레슨이 아니기는 했지만 <기타 바이엘>을 교재로 정한 후 진도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죽죽 나아갔고  금세 익히게 되었다. 단체 합주 때는 코드를 익혀 벚꽃 엔딩 노래에 맞추어 기타를 치기도 하였다.

  선생님의 가르치는 스타일이 바뀌고 나도 하루 20분 정도는 꾸준히 연습을 해서인지, 어려웠지만 흥미를 잃지 않고 2권까지 배울 수 있었다.


    나의 오랜 기타 이야기, 신선생님께 배우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 배우던 도돌이표는 여기까지이다. 선생님과는 가끔 얼굴보며 안부를 묻는다. 얼마 전 대학동문회 기념 연주 사진으로 근황을 본다. 멋지다. 계속 연습해온 손은 쉽사리 굳어지지 않아 언제 어느 곳에서도 연주할 수 있다.

  

    현악기나 관악기를 배운다면 소리를 곱게 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수 밖에 없다. 쉽사리 소리가 나지 않는 악기들도 많고 말이다. 그러나 건반악기의 경우는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반악기에서는 어려움 없이 소리를 잘 낸다.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잘 만들어진 액션이 정확하게 현을 두드리게 되어있으니 악기 중에 이보다 더 소리내기 쉬운 악기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이 너무나 쉬운 법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그렇게 쉬운걸까? 우리가 연주하는 소리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소리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 때문일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신선생님과의 세 번의 레슨시간 중 첫 번 째와 두 번 째를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현악기의 줄을 퉁겨 깊고 고운 소리를 내는 기본부터 충실히 가르치려 하셨다. 손가락과 손의 쓰임, 현을 퉁길 검지손톱을 잘 다듬는 법 등 매우 섬세하고 디테일하고 자상하고 느린 가르침이었다.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악기의 올바른 소리를 내는 법을 정확하고 제대로 배우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이처럼 건반악기도 그 소리내는 법을 처음부터  배워감이 옳다. 한 음 한 음 신중히 정성들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중요한 것이 소리를 듣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예술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어떤 종류의 예술을 택하건 그것은 그 사람의 정신적인 부분에 있어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채워지게 되기까지는, 자신의 근원을 찾아 되돌아가는 연어처럼 그는 다시 또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다만 나의 그러한 성향이 어느 단계에 도달하였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단순히 내겐 지금 음악이 필요해서 듣고싶은 사람, 한 번 연주해보고싶은 악기가 생겨서 배워보고자 하는 사람, 음악이 없으면 못 살 것임을 알고 남은 삶을 음악과 함께할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 사람, 그리하여 음악에 매일매일 시간을 내어 연습하여 스스로 그 기쁨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사람 등 스스로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단계의 사람도 있고 뼈속 깊이 내게 이것이 필요하고 인생과 함께 해 나갈 것이라고 인식하게되는 사람 등 처한 상황이 다를 뿐이다.

    연주를 통해 기쁨을 얻겠다고 생각했다면 , 프로연주자가 아닌 아마추어라 해도 음악을 긴 호흡으로 대하며 겸손히 배워가고자 하는 자세,  음악에 진지한 마음, 음악에 나의 시간을 할애하여 발전하겠다는 마음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런 마음을 온전히 갖게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아주 많은 시간이. 그래서 선생님들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예술을 가르치는 사람은 내게 그것을 배우고자 하여 온 사람이 과연 지금 어떤 단계에 와 있는지 체크하고 그에 맞는 지도를 할 필요도 있다. 아직 찰랑찰랑한 해변가에 발을 담그고 따사로운 햇빛 아래 고운 모래의 감촉을 느끼는 게 최고인 학생을 깊은 물에서 헤엄쳐보라고 하면 얼마나 언밸런스한 일인가. 그나마 해변가를 거닐고자 했던 마음도 두려움과 겁에 질려 떠나고 싶기만 할 지 모른다.



    처음 받은 보너스로 내 첫 번 째 피아노를 산 지 20년이 지났다. 이제서야 음악에 진지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음악이라는 거대한 바다 앞 찰랑찰랑한 해변가에서 발목만 적시고 있는 내게 저 깊은 곳으로 가라고 성급하게 등을 떠밀지 않으신 레슨선생님은 능력이 없어도 하고싶은 곡을 선택하게 두었고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기다려 주었다. 그 덕분에 포기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따뜻한 물에 적응도 되었고 이제 마음의 준비도 된 것 같다. 더 깊은 바다에서 흠뻑 그 아름다움을 느낄 준비. '희로애락'에서 가장 마지막에 오는 '락'이더라도 가는 여정 그 '희로애' 를 피하지 않을 준비. 이끌어주시는 여정을 따르며 깊은 바다의 희로애락을 만나보리라는 결심. 그것은 나의 생존회로가 이끄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품 안에 포옥 들어왔던 이상주 기타 40호와 함께

   누구에게나 생존회로가 이끄는 길이 있다.  경제활동과는 별개로 내가 정말 하고싶은 일 말이다. 오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기어코 찾으려 노력하고, 찾았다면 그에 따른 희로애락을 모두 감당해 내리라는 결심이 섰다면 남은 삶은 그 목표와 함께 명확해진다.

    

     삶의 여러 갈림길이 있었고 내게 주어진 길은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따르더라도 앞으로 내게 남은 미래는 나의 선택을 기다린다. 인생의 후반기에서 새로운 선택을 한다면 가능하다면 다른 비본질적인 것은 배제하고 생명활동을 기반으로 선택할 수 있기를.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나에게 또 당신에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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