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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Jan 10. 2018

리뷰 말고 책을, 연주곡 말고 악보를

스스로 찾는 기쁨

    감기를 심하게 앓고 나니 2018 새해의 덕담은 그야말로 "감기 조심하세요" 가 아닐까 싶다. 의욕이 심하게 줄어들고 힘이 없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병은 처음인 것 같다.

    게다가 시간을 보내자며 집어든 책이 하필이면 심히 정신건강을 해치는 첩보소설로, 책을 구입할 때는 스티그 라르슨의 밀레니엄 의 여주인공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를 기대했다가 분야가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에다 꾸역꾸역 3권까지 읽고나서는 그 잔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런 의욕상실과 충격파의 와중에 유일하게 마음을 달랠 수 있던 부분은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68> 중 38번 <겨울시절에> 였는데 이 곡은 클라라 선생님께 배우는 슈만 곡집 중에서 12번 <루돌프> 이후 두 번째 배우게 되는 곡이다.

   두 개의 연곡 중 첫번째 곡은 그야말로 한겨울의 와중에 있는, 춥고 서러워 더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하는 곡이고 두번째 곡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용조용 거니는 겨울시절, 잠잠히 그 시절을 지내고 난 이후 조금씩 깨어나고 일어나는 기운을 찾아가는 겨울의 끝자락에 맞이하게 될 봄에 대한 기대를 비추고 있다.

  

   의욕상실을 야기하는 독감을 앓는 중에도 가끔씩 힘을 내어 일어나 이 곡의 악보를 더듬어 연습해보며,  곡의 선율과 화성을 따라가며 내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을 챙기다보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마음 속에 잔잔히 퍼져갔다.


    겨우 감기를 추스린 어제는, 구석으로 던져버린 첩보소설 다음에 읽을 책을 책장에서 고르는데 오래 전 사두고 책장에서 제목만 쳐다보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집어들게 되었다. 감기로 조금 우울해진 나의 마음을 달래어줄 듯 하여, 백년 동안 고독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울까 상상하며 집어든 책 내용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즐거웠고 재미로 가득했다. 그래서 잠자리에 펼쳐들었던 이 책 덕분에 우울했던 마음이 과하지않은 수다와 순박한 사람들로 가득 찬 이야기에 빠져들어 조금은 밝아졌으니 아침에 일어나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읽겠노라 안 집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목과 전혀 매칭되지 않는 내용이 계속되고 있어서 궁금해죽겠다. 이 책의 리뷰와 줄거리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싶은 강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이 즈음에 클라라 선생님의 불호령같은 목소리가 떠오른다. 최근 2년 음악을 배운 모든 시간에서보다 최근 3개월 동안 뵈었던 클라라 선생님의 강력한 리더쉽과 열정에 더 많은 것을 배운 듯 한데, 리뷰를 읽고싶은 내 호기심을 억누르고 자제할 수 있는 이유는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처음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68 중에서 <미뇽>을 배운 후 다음 시간, 아무 생각없이 이 곡을 유튜브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연주한 곡을 들어보았고 사람마다 어떻게 연주하는지 어떤 느낌으로 하는지 들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매우 화를 내셨다.

    곡을 접하면, 연주자라면 악보를 보고 읽을 줄 알아야하고, 내 연주를 통해 곡을 해석할 줄 알아야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의 해석이 어느 정도 내 마음에 든 이후에 다른 사람의 연주를 한 번 들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새로운 곡을 대하고 그 곡에 곧 익숙해지기 위해 처음부터 곡의 연주를 여기저기서 찾아 들어보는 태도를 극구 지양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남이 전해준 해석과 아웃라인이지, 내 스스로 작곡자의 악보를 읽고 공부하며 한 음 한 음 만들어내면서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감동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고 하셨다. 연주가의 자존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불호령과 그 속에 담긴 뜻을 십분 이해하고 난 이후로 나는 이전에 악보를 처음 받고나면 으례히 연주된 곡을 찾아 미리 들어보던 습관을 버리게 되었다.

   시간이 들어도 내 스스로 직접 악보와 직면하며 작곡자의 마음을 알아보리라는 다짐으로 음표 하나와 화성 하나 박자 하나를 소중히 생각하며 핑거링을 하고 음을 다루는 습관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 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로 궁금하지만 조금 더 기다리며 부단히 읽어보려한다. 즐거운 수다와 소박한 사람들이 가득한 이야기에 왜 작가는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스스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보면 알 수 있겠지 기대해본다.



     의욕이 없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된 B형 인플루엔자는 너무 무서운 감기였다. 가장 약하고 예민할 때 슈만의 <겨울시절> 이라는 좋은 곡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정신건강을 돌볼 수 있어 참 다행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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