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가 박신영 Jan 10. 2018

리뷰 말고 책을, 연주곡 말고 악보를

스스로 찾는 기쁨

    감기를 심하게 앓고 나니 2018 새해의 덕담은 그야말로 "감기 조심하세요" 가 아닐까 싶다. 의욕이 심하게 줄어들고 힘이 없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병은 처음인 것 같다.

    게다가 시간을 보내자며 집어든 책이 하필이면 심히 정신건강을 해치는 첩보소설로, 책을 구입할 때는 스티그 라르슨의 밀레니엄 의 여주인공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를 기대했다가 분야가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에다 꾸역꾸역 3권까지 읽고나서는 그 잔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런 의욕상실과 충격파의 와중에 유일하게 마음을 달랠 수 있던 부분은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68> 중 38번 <겨울시절에> 였는데 이 곡은 클라라 선생님께 배우는 슈만 곡집 중에서 12번 <루돌프> 이후 두 번째 배우게 되는 곡이다.

   두 개의 연곡 중 첫번째 곡은 그야말로 한겨울의 와중에 있는, 춥고 서러워 더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하는 곡이고 두번째 곡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용조용 거니는 겨울시절, 잠잠히 그 시절을 지내고 난 이후 조금씩 깨어나고 일어나는 기운을 찾아가는 겨울의 끝자락에 맞이하게 될 봄에 대한 기대를 비추고 있다.

  

   의욕상실을 야기하는 독감을 앓는 중에도 가끔씩 힘을 내어 일어나 이 곡의 악보를 더듬어 연습해보며,  곡의 선율과 화성을 따라가며 내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을 챙기다보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마음 속에 잔잔히 퍼져갔다.


    겨우 감기를 추스린 어제는, 구석으로 던져버린 첩보소설 다음에 읽을 책을 책장에서 고르는데 오래 전 사두고 책장에서 제목만 쳐다보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집어들게 되었다. 감기로 조금 우울해진 나의 마음을 달래어줄 듯 하여, 백년 동안 고독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울까 상상하며 집어든 책 내용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즐거웠고 재미로 가득했다. 그래서 잠자리에 펼쳐들었던 이 책 덕분에 우울했던 마음이 과하지않은 수다와 순박한 사람들로 가득 찬 이야기에 빠져들어 조금은 밝아졌으니 아침에 일어나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읽겠노라 안 집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목과 전혀 매칭되지 않는 내용이 계속되고 있어서 궁금해죽겠다. 이 책의 리뷰와 줄거리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싶은 강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이 즈음에 클라라 선생님의 불호령같은 목소리가 떠오른다. 최근 2년 음악을 배운 모든 시간에서보다 최근 3개월 동안 뵈었던 클라라 선생님의 강력한 리더쉽과 열정에 더 많은 것을 배운 듯 한데, 리뷰를 읽고싶은 내 호기심을 억누르고 자제할 수 있는 이유는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처음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68 중에서 <미뇽>을 배운 후 다음 시간, 아무 생각없이 이 곡을 유튜브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연주한 곡을 들어보았고 사람마다 어떻게 연주하는지 어떤 느낌으로 하는지 들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매우 화를 내셨다.

    곡을 접하면, 연주자라면 악보를 보고 읽을 줄 알아야하고, 내 연주를 통해 곡을 해석할 줄 알아야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의 해석이 어느 정도 내 마음에 든 이후에 다른 사람의 연주를 한 번 들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새로운 곡을 대하고 그 곡에 곧 익숙해지기 위해 처음부터 곡의 연주를 여기저기서 찾아 들어보는 태도를 극구 지양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남이 전해준 해석과 아웃라인이지, 내 스스로 작곡자의 악보를 읽고 공부하며 한 음 한 음 만들어내면서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감동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고 하셨다. 연주가의 자존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불호령과 그 속에 담긴 뜻을 십분 이해하고 난 이후로 나는 이전에 악보를 처음 받고나면 으례히 연주된 곡을 찾아 미리 들어보던 습관을 버리게 되었다.

   시간이 들어도 내 스스로 직접 악보와 직면하며 작곡자의 마음을 알아보리라는 다짐으로 음표 하나와 화성 하나 박자 하나를 소중히 생각하며 핑거링을 하고 음을 다루는 습관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 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로 궁금하지만 조금 더 기다리며 부단히 읽어보려한다. 즐거운 수다와 소박한 사람들이 가득한 이야기에 왜 작가는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스스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보면 알 수 있겠지 기대해본다.



     의욕이 없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된 B형 인플루엔자는 너무 무서운 감기였다. 가장 약하고 예민할 때 슈만의 <겨울시절> 이라는 좋은 곡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정신건강을 돌볼 수 있어 참 다행이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예술을 하는 이유 : 죽어있는 오감을 살리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