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VIP는 아니지만 이래뵈도 플래티늄
내 유일한 자랑거리가 있다면
각 서점들의 플래티늄 회원이라는 것이다.
알라딘과 yes24, 영풍문고의 플래티늄 회원!!
영풍에 다녀오는 이 밤, 재테크 코너에서 사려던 책을 구했고, 그 외 오랜만에 마음먹고 혼자 서점에 간 길에 두런두런 이 코너 저 코너에서 이 책 저 책 쌓다보니 어느덧 계산대에 17만원이라는 거금이 쌓여있다. 작은 목소리로 3개월이요.. 결재하고 지하주차장을 뱅글뱅글 돌아 종로로 나오는 길에 문득 알라딘에서 샀다면 할인에 굿즈까지 선택 가능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종로 영풍에서 책을 굳이 사는 이유는, 영풍을 아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영풍이 망해서 없어지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따라 광화문의 교보문고를 처음으로 가 본 적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때 샀던 책 제목을 아직도 기억한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 이라는 두 자매의 이야기.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나베우동도, 왠지 뾰루퉁한 얼굴로 찍던 사진도 생각나는 쳣 서점 방문의 기억들.. 그 후 몇 년이 지나 교보는 샹들리에가 번쩍이는 천장장식으로 리모델링을 했고 종각 지하철역에 바로 연결된 곳에 열린 새로운 서점, 영풍문고가 옛 교보문고의 느낌 그대로 지어졌다.
요즈음에는 교보문고가 책의 향기를 지닌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한 때 그 번쩍이던 공간에게 거부감을 느끼던 동안, 영풍의 소박하고 차분한 책향은 서점을 찾던 내게 편안함을 주던 공간으로 기억되던 적이 있다.
요즈음의 영풍은 내게 또 다른 걱정을 주는데, 직원은 자주 바뀌고, 전문성은 부족하다. 신간이 없어 교보로 가면 수십권의 그 신간을 발견하는 일도 있었고, 영문판을 찾을 수 없어 교보로 가면 그 영문본이 세 권이나 있기도 하다. 해외서점에 주문을 넣고 기다리려 하면 교보에서 제시하는 가격이 더 저렴할 때도 있다.
그러나 좁고 사람많은 교보보다는 한적하고 평온한 영풍을 난 언제나 좋아라 한다. 그리고 교보보다는 영풍에서 상우와의 추억이 더욱 많다. 그래서 영풍이 오래오래 곁에 있었으면 한다.
이 모든 마음들이 교차하면서 난 가끔 아니 요즘은 종종 이렇게 수십만원 어치의 책을 직접 가서 사오고 있다. 알라딘이나 yes24의 10퍼센트의 할인과 적립도, 온갖 다양한 굿즈들도 포기하면서 말이다.
사실은 오프라인 서점에서만 누릴 수 있는 부분도 많다. 그것은 종이신문과 웹서핑의 차이와도 같을 수 있는데, 종이신문을 펼치다보면 내가 굳이 찾지 않던 부분까지도 다 보이게 되니, 오프라인 서점의 매대를 누비다 보면 굳이 사려하지 않았던 책도 눈에 띄어 지나치게 되는데 그런 중에 보석같은 책이 있고 그런 책들은 오늘의 나와 인연이 닿은 책인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로만 치면 17만원 어치의 책 중에 굳이 오늘 내가 사려던 책은 박완서 님의 책 두어권과 재테크 서적 두어권 뿐이었지만 그 이외 매대에서 내 눈에 띄어 골랐던 책들도 하나같이 귀하고 재미있고 소장할만한 책들만 심혈을 골라 고르게 된 것이다.
굳이 서점을 찾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친구 중에는 절대 백화점 세일기간에 백화점을 안 찾는 친구도 있지만(사람 많고 번잡하다는 이유다), 난 백화점에는 세일기간이라도 가 본 적이 없다. 무엇을 사든 마트나 종종 가고 할인점이나 인터넷 구매가 많다.
책으로 비유하자면 온라인서점은 마트에, 오프라인 서점은 정가를 다 주고 사는 백화점으로 대치해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 유일한 자랑거리로서 플래티늄
VIP를 만들어주는 곳, 굳이 깍으려 아끼지 않고 정가대로 팍팍 사 버리는 책 백화점, 바로 오프라인 서점, 종로 영풍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거기에서 책을 샀다. 이제 책들을 정리해야겠다. 앞표지를 한 장 넘겨 오늘의 년월일과 책을 산 곳을 기록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내일 아침에 있을 사무실 강의를 준비해야한다.
영풍문고 특히 지금 공사중인 종로 영풍문고..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내 여력이 닿는 한 종종 이렇게 VIP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려 최선을 다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