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배우는 즐거움

by 박신영


진입장벽이 높은 것은 그 진입장벽을 깨부수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즐거움이 배가된다.

내게는 골프가 그랬고, 피아노가 그랬다. 마흔살에 처음 배운 수영도 많이 무서웠지만, 몇 번 맵고 숨막히는 순간 속에 빨갛게 맹맹해진 코를 가진 이후로는, 물 속 유영에서 느끼는 찰나의 고요한 물거품 소리를 좋아하게도 되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혼자 연습이라도 시작하려면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 망망대해에 발 하나를 적신 정도 쯤이라 해도, 그 무한한 즐거움이 한없이 남아있음을 알기에 가슴은 벅차고 두려움은 점차 줄어든다. 처음에는 어렵고, 접근하기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지만, 그 장벽을 하나씩 넘기 시작하면 두려움은 성취감과 재미와 자신감으로 대체된다.


요즘에는 요리가 그러하다. 학원을 다닌 일은 삼년도 더 되었지만 잊고 있다가, 요즈음 매일 저녁 솥밥에 새 밥을 짓고, 후라이팬 요리가 아닌 양념요리도 찌게도 국도 만들어본다. 주말과 저녁에 만들어본 요리는 다음날 점심, 동료들과의 식사시간에 은근한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음식과 집에서의 요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역시 몇 년 전만 해도 콩나물 무침 하나 만들기 두려워서 머릿 속으로 오만가지 과정만 생각하다가 말았으니, 다소 경외감을 느끼며 동경하듯 대하는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너무나 잘 안다. 사실, 불과 물과 칼과 기름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은 탓도 있다. 시집 간 후 아이를 낫자마자 잘 다니던 외국계회사를 그만둔 여동생이 늘 밥을 짓느라 한숨을 쉬면서도 '밥이 중요해, 밥이 중요해' 라던 말, 이제야 나도 깨닫는다. 제철 음식을 장날에 장터에 가 고르고 손질해 보관해서 냉장고 그득그득 식재료를 담아두고 먹고싶은 것을 해먹는 일, 요리하며 맛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과 이 요리를 먹을 가족이 맛있게 싹싹 비우는 그릇까지 생각하면. 그 모든 과정이 무한한 즐거움이 되는데, 시작해보면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지만, 시작할 엄두를 내고 즐기기까진 시간이 좀 소요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또 요즘에 나는 생물공부를 하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하던 공부는 하나도 모르고 받아적기만 하던 시절을 지나 올해서야 조금 알아들을만 하게 되었다. 넷플릭스를 보고, 디즈니를 보다가도 오늘 들었던 강의가 생각나서 그 다음이 궁금해 강의를 열어본다. <켐벨 생물학>과 <생명, 생명의 과학> 이라는 대학 교재를 기본으로 하는 과정들은 매번 가슴아픈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도 있지만, 그조차 극복하여 이제 호기심과 발견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 또한 어렵디 어려운 초기 진입장벽을 뛰어넘은 시기에 도달했다.


앞으로 또 내게 무한한 즐거움을 전해줄 어려운 장벽은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순간, 그것들을 배우고자 할 때 지나친 시간이 떠오른다. 내가 만나기 대신 수영장을 택했던, 만남 대신 생물책을 집어든, 요가학원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는 대신 함께 보냈을 시간들을... 어쩌면 이 모든 어려운 진입장벽 중에 가장 어렵지만 가장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오래 전 가만히 누워서 콩나물무침을 만드는 과정 오백단계를 그려보다가 에이 관두자 하고 말던, 가장 높아 오르지 못하고 쳐다만 보던 에베레스트산보다 그 진입장벽이 더 높게 느껴지는데... 그건 내가 깊고 깊으면서 여리디 여리기 때문인 것 같다.

나 혼자서라도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노력은 오랜 시간이 걸려도 시작해본다. 순수한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니. 하지만, 가장 즐거울지도 모를 그 하나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자기 보존의 용기랄까, 좁고 깊고 뜨겁고 열정적인 나는 내 불에 내가 데고 상대방도 다 태워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그 불길에는 나조차 조금도 가까이 하지 않길 바라는가보다. .


아무렴. 세상엔 내가 즐기고 기꺼워할, 어렵고 진입장벽이 높아서 한도 끝도 없는 재미를 선사해줄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래서 난 오늘도 고요한 일상에 머물며, 최고의 한량이 되길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오래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