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주말 빈둥거리다 새벽 3시쯤 잠이 깨서 설겆이와 빨래를 해놓고 천천히 나왔다. 빨리 달려 35분만에 회사주차장에 도착, 옆 건물 스터디카페에 가니 왠일로 그 시간에 사람이 두 명이나 앉아있었다. 점심은 내키지 않아 거르고 다시 스카에 와서 강의를 열었다. 유전, 체세포 분열, 상동염색체, 딸세포... 작년 같았으면 눈물을 쏟으며 꺼이꺼이 상념에 잠겼을 수도 있는데,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던지 그보다 호기심과 재미가 있어 이해도 쏙쏙 잘 되었다.
눈치볼 일이 많은 사무실에 5분 늦게 자리에 앉았다. 매일 들르는 고객이 오늘도 앞에 앉아 말을 거는데 늘 하는 불평이라 대꾸도 안하니 뻘쭘한지 조용해졌다. 시간은 금세 가서 퇴근을 앞두고 있는데. 사장님이 내 업무경력을 보다가 뜬금없이 아이디어를 구한다. 짐짓 의뭉스럽게 모르는 사람을 시전하고 조용히 앉았다.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해야지. 그것이 직장인의 미덕이 아닌가. 산전수전 겪고 얻게 된 깨달음은 그냥 조용히 있는게 좋다 이다. 일을 마치고 다시 스카에 왔다. 한 삼십분 엎드려 잠을 잔 것 같다. 비몽사몽 강의를 듣는데 왠일,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도 읊는다더니 그 동안 들으면서도 안 들리던 것 같은, 보면서도 못 본 것 같던 막막함이 좀 없어진 것 같아 맘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차가 안 막히는 시간을 골라 최대한 짧은 시간을 찾아 운전을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요즘에 다시 얼음땡과 수건돌리기 게임을 어른들이 공원에서 하고 있다고 나온다. 사람들이 미친건가 잠시 생각하다가 진짜 그런다고 하니 모 그럴 수도 있지 바로 수긍해버린다. 효율적이지 않고 뭔가 스펙이 되지도 않고 도움이 하나도 안 될 듯한 순수하고 계획없고 이득 없는 놀이 가 나를 살린다. 지친 어른들이 그걸 깨닫고 살기 위해 노나보다.
열심히 요리를 해서 밥 한 술을 뜨고 티비 앞에 앉았다. 세상에는 어쩌면 저리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걸까. 감탄을 하며 티비를 보다가, 이야기야말로 사람의 본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엊그제 까페에서 읽던 소금장수 원님 이라는 아동도서가 생각났다. 한 페이지 읽다 말았는데, 다음에 가면 다 읽어봐야지 생각한다. 공부도 공부지만, 언젠가 나도 재미있는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다. 자료조사도 꽤 열심히 해보고, 사연과 이야기와 성격을 가진 멋진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단편이든 중편이든 장편이든 말이다. 새롭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형식도 만들어보고 말이다. 학창시절에 공부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랬지. 연극영화과 청강하며 만화가게를 창업한 동기, 드라마작가가 되겠다며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 해 개인 노트북을 산 동기들이랑 연락 좀 하며 살걸 그랬지.
세상이 멸망하면 마지막으로 읽고싶은 책을 고르시오. 라고 질문받는다면 올리버 섹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를 고를 것 같다. 그 책을 읽으며 인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어렴풋이 깨닫는 것도 많았는데, 인간은 결국 이야기로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이 참 크게 와닿게된 책이었던 것 같다.
한 숨 자고 다시 새벽 출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