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악보 : 피아노 소곡집 1 [세광출판사]
올 초에는 아이 셋 막내까지 대학에 보내신 후
할 일을 다 마쳤다 고 한숨을 돌리시며
어릴 적 잠시 배우고 마셨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어하는 50대 어머님이 수강신청을 하셨습니다.
음악을 따로 배우지 못하신 어머님들은 연세가 있으셔서 음악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세 자녀를 키우며 피아노학원을 보내며 아이들이 연주하는 곡을 들으며 귀가 무척 밝아져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나도 연주해보고 싶다는 꿈이 늘 마음 중에 있으셨어요.
동안은 아이들을 대학까지 돌보느라 그 바람을 실행에 옮길 시간이 늘 부족하셨지요. 그러다 올 초에 막내를 기숙사에 보낸 후 드디어 시작해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피아노.
기초가 전혀 없진 않았습니다. 성인용으로 나온 딱 이 제목의 교재를 택하고 조금씩 진도를 나갔습니다.
성인분들이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 진도가 훨씬 빠릅니다. 어릴 적 배운 경험에 늘 아이들의 연습곡을 듣던 어머님도 예전의 기억을 잠시 되살리며 조금씩 연습하시더니 어느날 이 책을 가져오셨습니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던 분들이라면 이 표지가 기억나실 듯 합니다. 추억의 악보이죠.
새 책이 아니었습니다. 세 아이가 배웠던, 레슨흔적이 역력한 오래된 책. 역사가 깃든 악보집을 가져오셔서 베토벤의 월광을 연주해 들려주시더군요.
이 곡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아이들이 이 곡을 칠 때 정말 행복했다고. 그래서 나도 연주해보고 싶어서 한 마디 씩 . 한 줄 씩 더듬더듬 연습해보았다고. 하십니다. 어머니의 감성이 더해져 듣기에 참 아름다웠습니다.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도 함께 배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님보다 어릴 적에 조금 더 피아노를 배우셨던 것 같아요. 소리가 참 맑고 곱고 자연스럽습니다.
두 분이 함께 배우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며
모짜르트의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리오 변주곡, 일명 작은별 변주곡 의 테마 부분을 함께 연주하실 수 있게 악보를 보여드렸습니다.
아버님은 오른손. 어머님은 왼손 부분의 연주였지요. 서로의 소리를 들어가며 맞추며 연주하시는 모습이 제 눈엔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다니엘 바렌보임이 함께 연주하던 듀엣 피아노와 매칭되더군요.
아버님은 기초피아노를 익히신 후 피아노 소곡집의 곡을 1번부터 차례로 연습하고 계십니다. 샾 두 개의 스와니강을 어려워하시더니 용케 넘기고 이제 플랫 하나의 고별의 악보를 보고 계십니다.
익숙한 C Major 곡 먼저 선별해 연습하자고 권유드렸지만 아버님 성격상 차례대로, 한 곡도 빠짐없이 연습중입니다.
첫학기를 마치고 방학이라 집에 온 막내까지 다섯 가족. 부모님이 피아노 연습을 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피아노 앞에 앉게 되고 집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행복하다고 하시네요.
연말엔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월광으로
아버님은 이번에 익히신 스와니강으로
아이들과 작은 음악회를 여실지도 모르겠어요
주말에 바쁘실텐데 하루도 빠짐없이 늦지 않게 레슨 받으러 오셔서 저도 공부하는 학생으로 그 한결같음 많이 배운답니다.
학창시절 교과목엔 음악과 체육과 미술이 항상 있었는데요. 일상에 지칠 때면 늘 음악으로 돌아오는 음악인이 있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음악이라고 여겨지고 돌아오는 경향을 스스로 느끼게되는. 그런 분들은 음악이 나의 성향에 맞는 것이지요.
아이들을 왠만큼 키워내고 이제야 나만의 시간 속에 하고싶었던 것을 시작하신 두 부부께는 음악이 늘 함께하였고 늘 필요하셨던 것 같습니다. 일상의 잔잔한 기쁨과 슬픔. 음악을 통해 함께 겪고 나누실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