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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Jul 28. 2017

ABRSM Piano : 초견 과 악보읽기

내가 정말 알아야할 모든 것은 유치원 때 배웠다. 악보읽기도.

   2003년도 즈음 재출간 되었던 <내가 정말 알아야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라는 책이 있다. 미국에서 초판이 나온 1990년 경 거의 9개월간 1위, 2년 간 베스트셀러 도서로 목록에 올랐던 책이다. 내용은 제목처럼 단순했다.


    "모든 것을 나눠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겨뤄라, 남의 것을 빼앗지 마라, 거짓말을 하지 마라, 남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용서를 구하라 등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모든 내용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음을, 단지 실천의 문제가 남았음을 다시 깨닫게 한다"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저자는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해서 잊고 지내는 그런 원칙들이 사실은 일생동안 반드시 지켜야할 것들이라고 언급하며 일상의 에피소드를 잔잔히 풀어간다.


      오늘의 주제는 악보보기인데  이야기하려고 보니 문득 이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어른들을 가르치다보니 '유치원에서 이미 알아야할 모든 것들을 배웠다'는 말이  악보보기에도 정확히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단, 우리가 어릴 때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면 말이다.


    사실 피아노를 배운다고 하면, 눈앞에 악보를 펼치고 곧장 음표의 음정에 맞는 손가락 자리를 잡고 건반을 치는 것이 어릴 적 우리들 피아노학습의   시작이었다. <바이엘 상> 의 도레도레도 부터 시작하는, 건반 위에서의 손가락 연습이 중심이 되는 교재로 말이다.

    그 때의 기억으로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많은 어른들은,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펼치자마자 음정에 맞는 건반을 더듬더듬 찾아 누르기 바쁘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최근까지도 그렇게 연습을 해왔다.


    그러나 ABRSM 이론교재로 공부하고, pre-ABRSM piano 교재로 아이들을 가르쳐보니 접근방법이 달라져야함을 깨닫게 되었다.  악보를 처음 만나게 되면, 한 음 한 음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것보다 선행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다.

     피아노뚜껑을 닫고 그 위에 악보를 펼치고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를 제대로 읽어보는 것 이다.  
같은 리듬이 반복되는 부분을 찾아보고,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는 부분을 찾아 곡 전체의 구성을 파악해보는 일은,  한음 한음씩 더듬더듬 악보를 보며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에 앞서 반드시 챙겨야할 일이다.

 바이엘과 같은 손가락연습 위주의 짧은 연습곡이 아닌 온전한 하나의 곡을 연습할 때 더욱 이 선행이 필요하다. 이런 악보분석의 시간은 언뜻 보기에 연습시간을 허비하는 듯 보이지만, 잠깐의 시간 동안 곡의 구성을 파악해 머릿 속에 담아두면, 곡 연습이 훨씬 수월해진다.


  다음에 각각 다른 수준의 기량을 요구하는 세 악보가 있다.

가장 왼쪽은 ABRSM Grade 1 공부 이전 pre course 인 <Piano star 1> 중 한 곡으로 4분음표와 2분음표가 전부인 16마디의 곡이다.

  이 교재는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어린이들에게 권하는 교재이다.


 중간의 악보는 세광음악출판사 <피아노 소곡집 1>에 나온 스와니강 으로 역시 16마디이다. <피아노 소곡집>은 흔히 바이엘 하 권까지 배운 수준의 단계면 시작할 수 있다.


 오른쪽의 악보는 ABRSM Piano 실기시험 <Grade 7 초견테스트>를 위한 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은  13마디의 곡이다.

참고로 ABRSM Grade 8의 실기를 합격하면 외국대학 입학시 가산점이 크다. 음악에 대한 이해도 뿐 아니라 연주실력도 어느 정도 갖추었음을 인정받는다.  이 악보는  바로 그 이전 단계의 초견테스트 곡이다.


    첫 악보를 보자. 이 악보에는 작곡자가 표현하고자하는 정보가 가득 담겨있다. 먼저, 큰보표의 중간을 보면 P -mp - p - mf - F  순서로 곡의 강약표기가 있고, 각 음정에는 스타카토와 페르마타(늘임표)도 표시되어있다. 이것은 작곡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음악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기호정보에 해당한다. 이런 기호정보를 잘 살려 악상을 표현함으로 전체음악의 유기적 구성이 완성된다.


     처음 악보를 읽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리듬과 멜로디 두 방면에서 전체 구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구성을 파악한 후에 악상기호를 체크하여 연주시 곡의 분위기를 표현하도록 하자.


   세로줄과 세로줄 사이를 마디 라고 하고 세로줄이 두 줄 겹치면 겹세로줄 이라고 부르며 곡의  끝을 나타낸다. 이 곡은 총 16마디로 첫 8마디의 리듬을 살펴보면, 두 번 째 8마디의 리듬과 정확히 일치한다.  멜로디를 보면 5~8마디의 멜로디가 '도솔 파미레도 파솔라시 도' 로 13~16마디의 멜로디와 같다. 음악을 이루는 큰 축인 리듬과 멜로디로 나누어 곡의 구성을 파악한 이후 곡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기호와 곡의 제목을 생각하며 곡을 표현할 수 있다.


 다음은 두 번째 악보  스와니강 을 보자.

    왼손이 모두 8분음표로 음표가 많아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같은 방법으로 마디를 나누고 리듬과 멜로디를 살펴보자.  이 곡도 16마디이다. 친절하게도 4마디씩 4단의 구성으로 그려져있다.

    먼저 리듬을 보면, 1~4 마디와 5~8마디, 13~16마디의 리듬이 비슷하다.  2단,  4단의 리듬은 똑같고 3~4마디만 조금 다르다.

9~12마디는 음높이가 전체적으로 높고 곡의 구성 상 클라이맥스 또는 약간의 변화를 준 부분으로 보인다.

     멜로디를 보면 2단과 4단의 멜로디가 정확히 일치한다. 1단을 보면 1~2마디는 2,4단과 같고 3~4마디가 조금 다르지만 음의 이동방향은 같다.

     이 곡은 1단 2단 4단의 리듬과 멜로디가 거의 같으니 본격적인 건반연습 때 3단 부분만 좀 더 신경써서 연습하면, 반복되는 부분들은 수월할 것이다.


  마지막은 ABRSM Piano 실기시험 의 한 분야인 초견 악보이다. 7급 수준으로 마지막 단계인 8급보다 조금 쉬운 수준이다.  초견시험시 1분의 시간이 먼저 주어진다. 1분 동안 처음보는 악보를 파악한 후 연주하는 것이다.  다소 느리더라도 멈추거나 반복없이, 흐름이 끊기지 않고 곡을 연주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내게 1분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악보를 보자.

  13마디의 구성이다.  리듬을 보면, 1~5마디와 6~10마디의 리듬이 같다. 10마디에서 양손의 리듬이 바뀌나 11마디에서 다시 오른손으로 멜로디가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멜로디를 보면 1~5부분의 멜로디가 6~10에서는 전체적으로 네 개 음 올라가 표현되어 있다.

   

     위에서 함께 한 악보읽는 법을 정리해보먼,                          

 악보를 4마디나 8마디씩 그룹핑한다.

 그룹끼리 리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다.

 그룹끼리 멜로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다.

 전체적 구성이 파악되면 마음에 정리해둔다

 악상기호와 곡의 제목을 참고로 분위기를 만들어 연주해본다.


   예시로 본 첫 번째 악보는 초등학교 1~2학년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중이다. 두 번 째 악보는 초등학교 때 잠시 피아노를 배웠다가 이번에 다시 시작하신  50대 남자분이 연습중이다. 세 번 째 악보는 ABRSM실기 7급 초견시험 곡이다.

 

   각각의 수준은 다르지만, 첫번째 악보를 분석하는 방법 그대로 세번째 악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즉,새로운 곡을 만나면 먼저 마디를 묶어 그룹짓고, 리듬과 멜로디의 공통된 부분을 찾은 후 전체의 구성을 염두에 둔다. 이후 악상기호를 살려서 연주해본다.

   음표가 아무리 많은 곡이더라도, 아무리 긴 곡이더라도 곡을 파악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 잠시 피아노를 배우다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시는 분도, 전공공부중인 나도, 아이들이 보는 악보를 보며 읽는 법을 새로 배운다.  

    유치원 시절 어릴 때 배웠던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조금 덧붙이고 늘이고 응용해간다면 피아노 연주도, 삶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지 않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음악가들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밤새 연주를 하며 즐겁게 보냈다는 구절이 종종 보인다.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도 그의 자서전 <나의 기쁨과 슬픔> 에서 그런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때로 매우 부러운 일이다.     

    사실 피아노는 대개 독주악기로, 음식으로 치면 우유나 계란같은 완전식품처럼 오직 홀로서도 오케스트라와 독주의 느낌을 다 낼 수 있는 유일한 악기이다. 다른 현악기나 관악기들은 반주와 어우러지는 삼중주, 사중주의 앙상블곡들이 피아노의 독주곡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고 해서 피아노가  앙상블에 적합하지 않은 악기라는 말은 아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곡도 많고 네 손을 위한 곡도 많다. 슈베르트의 가곡엔 피아노 반주가 더할나위없이 아름답다. 마음만 먹으면 친구들과 밤새워 음악을 연주하며 놀기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행조건이 있다. 밤새워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레파토리를 준비하고 있을 것. 그렇지 않으면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려는 악보를 초견으로 칠 수 있을 것. 결국 악보를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음악과 함께하는 최고로 사치스러운 밤을 지새워보고픈 로망이 있다. 그러려면 악보를 많이 보고, 많이 연습해야겠다. 

제대로 놀기 위해서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며 의욕을 불태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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