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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Aug 23. 2017

아파트 커뮤니티에 음악실을 권한다

음악과 색채로 다시금 충만해지는 삶터이길

    예전에 발레리나 강수진 님의 자전적인 책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제목의 뜻을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몰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문답식의 불가의 이야기로 치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을 것이며 걸을 때는 걸음만 걸을 것이다. 즉, 순간순간 그 순간이 되어 충실하게 산다면 내일을 기다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연습으로 발가락 마디마디가 불거진 그녀의 발을 남편이 찍은 사진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녀는 책에서 말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몸이 아픈 곳이 없다면 전날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고.  죽도록 연습하였고, 인내하여 몸의 고통마저도 연습의 일부로 감내하는 승화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다.

    요즘 왜 그녀의 책 제목이 계속 되뇌어지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니 삶에, 생활에, 미래에 대한 걱정에 조마조마하고 불안불안한 심경이 내 마음 안에 그늘을 드리우는 중이라 그런 것 같았다. '그녀처럼 순간에 몰입해 최선을 다해 살면 걱정할 시간도 없을텐데.. ' 라며 그래보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약간의 부러움이 담긴 착찹한 심경으로 그녀의 선언적인, 이 화두와 같은 문장을 자꾸 되뇌어본다.




     예쁜 후배들이 몇 명 있는데 아이들이 다 어리다. 그녀들이 결혼 전 함께했던 것처럼 오랜만에 밥 한 번 같이 먹고싶어 전화를 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오직 하루, 건강을 위해 퇴근 후 운동하는 시간이 유일하게 평일 저녁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라며, 혹시 내가 만나자고 할까봐 조마조마하는 마음이었다. 잠깐의 통화중에도 그 마음이 목소리로 전해져서 차마 얼굴 보자는 말을 못하고 끊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 지금 나의 여유가 참 감사하기도 하고, 다 지나온 입장에서 그녀가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아이 둘에 직장까지 다니니 얼마나 힘들까. 그녀가 대견하면서도 참 안쓰럽다. 어쨌든 지금 그 바쁘고 힘든 시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다. 부디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녀는 명동의 피아노 학원에서 만났다. 나도 스트레스가 많았고, 그녀도 많았다고 했다. 내가 회사 건물 아래 내려다보이는 피아노학원에 등록했을 때 그녀는 이미 학원을 다닌지 1년이 넘어 있었다. 음악을 참 좋아했던 그녀.  지금은 음악을 접하지 못하고, 건강을 위해 헬스장에서 유산소운동만 한다고 하는데, 그녀를 아는 나로서는 참 안타깝다. 지금처럼 그녀 어깨의 짐이 많을 때, 음악은 최고의 피로회복제가 되어줄텐데.. 물론 집에는 아파트에서 사용하기 좋은 소리 조절이 되는 디지털 피아노가 있지만, 올망졸망 아이들이 있는데 몰입할 여유는 분명 안될 것이다. 아이들이 잘 때는 집안일이며 쪽잠으로 피로를 달래야할테니, 그 때도 피아노 소리를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주일 중 그녀가 쉴 수 있는 단 하루의 평일 저녁에 운동을 한다고 하는 그녀의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은 깔끔하고 시설이 좋다. 그런데, 육아와 직장생활, 살림에 지친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과연 운동이었을까. 그녀에겐 운동도 필요했지만, 음악이 더 필요할지도 몰랐다.  아이가 어렸을 때 나의 경우는, 주체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쌓여 어찌할 수 없을 때엔 바로 아이를 만나지 않고, 연습실에서 30분이라도 연습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미를 찾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얇아져 널부러져있던 내 정신은 알 수 없는 힘으로 충만해져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도 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 힘으로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키웠던 것 같다. 잘 못 치는 피아노에, 악보를 못 읽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건반이 현을 울리는 음색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상처입은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운동을 한다고 하면 왠지 자기관리를 잘 하는 사람, 삶과 건강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직장을 다닌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식사 후 걷거나 아침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운동을 한다고 하면 건전하고 더 성실해보인다. 운동은 필수적인 시간으로 시간 낭비와 소모의 이미지가 떠오르진 않는다. 그러나 출근 전 한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고 온거나 점심식사 후 연습실에서 30분 피아노를 친다고, 퇴근 후 연습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비추어질지 모르겠다. 그런 여유시간이 있다면 운동을 좀 해야지. 그래야 건강해지지. 라며 짐짓 위해주시려는 말씀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일단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는, 참으로 비실용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이다. 운동이라도 하면 근육도 생기고 소화도 쉽고 살도 빠지고 건강해질텐데, 음악이야 소리로 날아가 사라지는 것이며, 더우기 악보를 잘 못 봐 연주를 제대로 못해서 받을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왜 음악일까. 과연 음악을 해서 얻는게 무엇일까.


     사람들은 언제나 실용주의를 고수한다. 그런데 그 억척스레 고수하는 실용주의는 과연 무엇을 위함일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켜야할 것들을 지키기 위함이다. 우리가 가장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무형의, 비실용적인, 실은 전혀 돈이 안되는 몇몇 가치이다.


    <가족을 위해>  내가 병이 생기지 않고 건강할 수 있도록,  면역력을 키워줄 운동을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닌다. 승진을 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가족을 위해..."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실용이나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것은 근원은 알 수 없고 말로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나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실용과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난 음악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과 육아와 살림을 하며, 일주일에 단 하루만 갖는 자신의 시간에 커뮤니티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는 그녀의 지금에, 음악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안다.


     만약,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 옆에 작은 연습실이 있다면 어떨까. 방음이 완벽히 된 실내에 어쿠스틱 피아노가 놓여있다면 좋겠지만, 그냥 디지털 피아노 건반이라도 있다면 어떨까. 운동을 끝낸 그녀가, 단 20분이라도 음악을 연주하고 스스로 피아노 소리를 들은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돈으로 셀 수 없는 가치, 내 영혼을 충만케 해주는 소리를 듣고 돌아가는 그녀에게 생긴 여유는 아이들에게도 전달될텐데.


    <사랑> 이라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실용적으로 사는 우리에게는,

    실용주의 이상의, 돈으로 살 수 없을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져야만하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이는 이 영혼을 '음악'으로 채우고,  어떤 이는 '색채'로 채울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아파트 커뮤니티에 헬스장과 골프장, 수영장과 독서실과 사우나와 까페를 짓는다면, - 요즘에는 볼링장을 짓는 곳이 있다- 조금 더 나아가 음악연습실과 미술작업공간도 한 켠에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지친 하루를 보낸 후 사뭇 우울함으로 얄팍해진 영혼에게 음악과 색채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주어 스스로 충만해져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되는, 그런 삶터라면 좋겠다고 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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