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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Aug 28. 2017

매일 연습을 위한 다짐

내가 내가 되는 순간의 쌓임, 연습

   3월이 시작되며 나에겐 꼬마학생들이 생겼다.


   매주 수요일, 지칠 즈음인 주중 한 가운데 날에 난 내 꼬마아가씨들을 만난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우리 쌍동이 아가씨들은, 수업시간 내내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고사리손으로 건반을 누르며 그 티없이 맑은 눈동자를 나에게 고정하고 한껏 개구진 미소를 날려준다.

   백가지 쯤 되는 일에 모든 영혼이 어디론가 정신없이 흩어져 가버리는 듯한 하루를 보낸 후, 나는 너희들을 만나 내 지식을 전해주고, 대신 너희들의 맑은 눈빛과 표정을 보고, 그 사랑을 읽고, 에너지를 얻고 무한한 힘을 얻는다.


  "힘들지 않으세요, 선생님. 좀 쉬셔야 하는데 말이죠.."

   이제 처음 개원한 교회문화센터. 왠지 아무도 지원안할듯한 피아노기초수업을 내가 맡아주길 바라셨던 간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대답한다.

   "아니에요 간사님, 전 이런 시간 속에서 더 에너지를 얻고 힘을 얻어요. 이제 컨서버토리 학부생에 불과한데 이런 기회를 주심에 감사해요. 가르치는 게 최고의 공부인데, 제가 공부하는 것을 복습하게 되고, 다양한 수준의 피아노곡을 잘 가르치고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한 번이라도 더 책을 보며 공부하게 되거든요. 또 제가 매주 받는 레슨시간에도 역지사지로 생각하게 되며 좀 더 준비하게 되지요. 피아노 기초를 배우는 어른들께는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스럽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구요. 아이들이 보내주는 미소가 제게 또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

 



   매주 쌍동이 아가씨들을 보던 5월, 나는 아이들과

하나의 약속을 했다. 아이들은 매일 20분, 나는 매일 120분 연습하기.


   <나의 다짐> : 아이들용

매일 20분 피아노 연습을 하겠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음악을 가까이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일 연습하겠습니다.


   보통, 요즘 아이들도 그렇고 내 어릴 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초등학교 졸업 이후 중학생이 되는 순간부터 예체능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교과목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경험상 여러 교과학습과 경쟁으로 힘든 아이들에게 하나 이상의 예체능을 꾸준히 지속하도록 해

주면 아이들 스스로 그 속에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자신감도 키우게 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건전한 취미생활로 자리잡으며 평생의 벗처럼 함께 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살아가며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음악을 가까이 하고 또 학창시절을 잘 보낼 힘을 음악 속에서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문구를 정하고 함께 약속했다.   

   나로 말하자면, 스스로 쑥스럽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지킨 날이 열 손가락에 꼽으니 첫 마음으로는 아침에 일어나 60분, 저녁에 집에 와 60분, 하여 하루 120분의 연습은 전공을 하는 입장에서 꼭 필요하리라 생각하고 다짐하였으나, 지금의 나에게 하루 2시간의 연습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다소 무리이기도 했던 것 같다.  

   방학을 유익하게 보내지 못함에 개강을 앞두고 휴학을 생각하기도 하는 요즈음, 매일매일을 이 약속대로만 지켰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지나간 날에 아쉬움만 가득이다.


  아이들에게는 종종 체크하기도 하는 이 다짐들.

   지난 수업 시간, 아이들에게 고백했다.

  "선생님이 너희들과 한 약속을 못 지키고 연습 안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싸인까지 한 약속을 안 지키고 있는데 선생님 혼나야겠지?"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내 눈을 또렷이 맞추던 수민이는

 " 아니요 안 혼낼거에요. 선생님이 약속하고 선생님이 안 지킨거니까요."

   아 이런 자세! 영리한 꼬마 아가씨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작은 떨림을 느꼈다.

   맞는 말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누가 강요하고 혼내서 하는 연습이 아니다. 집중하는 동안 스스로 알게되는 것이 음악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연습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내면에 쌓이게 되는, 내가 내가 되는 순간들을 만나게 해주는 시간인 것이다.


   액자에 걸어둔 다짐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나의 다짐>

 매일 120분 솔직한 마음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겠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음악을 가까이 하겠습니다.

 마음이 기쁠 때에도 음악과 함께 하겠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매일 연습을 약속합니다.

  

    다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산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변주곡처럼 오늘 하루도 그렇게 새로울 것이다. 비슷한 하루하루의 날들에 변화를 주는 시간이 연습시간이다. 하루를 보내는 데 있어 연습시간을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만들어 보아야겠다. 일기 쓰듯 매일 연습일지를 작성해보아도 좋겠다. 


   지난 백일이 아쉽다. 앞으로 꼭 백일만 다시 해보자고 새롭게 다짐하는 오늘이다. 열심히 한 후에 우리 아가씨들, 너희들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련다.  

     " 매일 20분 연습, 잘 하고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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