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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Aug 14. 2017

편안한 미소의 바흐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의 바흐 CD에서 발췌함

  

필자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 중 박사 과정에 입학을 위한 연주 무대에서였다. 무사히 시험을 통과한 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며 미소를 짓던 니콜라예바 교수가 불과 몇 달 후 미국에서 연주 도중 스러져 불귀의 객이 되리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아직은 전성기가 지나지 않은 69세라는 나이도 그러했거니와, 바흐 이외에도 쇼스타코비치의 새로운 사이클을 계획하며 왕성한 레코딩을 진행중이었던 터라 그의 죽음은 비단 러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 음악 팬들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평생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라는 큰 인물을 해석하고 그려내는 것을 사명이자 즐거움으로 삼았던 니콜라예바가, 서양 음악의 삼라만상이 총정리돼있음이 분명한 평균율 조곡 전 48곡과 조우할 때 그 모양새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줄 것인가. 이미 최고의 대가들이 저 나름의 기준으로 완성품들을 빛내고 있는 지금, 그의 해석은 그 가운데 어느 위치에 놓여질지도 흥미로운 일이다.

무엇보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보편타당한 논리가 니콜라예바의 바흐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겠다. 일체의 거부감이 없는 둥근 터치와 악상은, 같은 여성으로 바흐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로잘린 투렉과 유사점도 발견되나, 다소 옛스런 프레이징의 투렉과는 달리 니콜라예바의 호흡은 깔끔하여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담백하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의 3번이나 2권의 5번의 프렐류드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연결과 마무리는 복잡한 대위법의 중첩되는 음의 논리를 달관한 노련미의 승리이다.

거기에 꿋꿋한 심지와 남성미마저 느껴지는 옹골찬 타건도 그만의 매력이다. 1권의 4번에서 요구되는 푸가의 장대함이나 12번의 푸가에서 들려지는 방대한 스케일은 그 자체가 드라마틱한 효과를 자아내며 멋지다. 같은 러시아의 대가로, 한없이 투명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의 연주와 차별화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러시아인다운 서정성과 강한 표현력 또한 니콜라예바의 연주를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큰 기둥이다. 언뜻 들어서는 쇼팽을 연상시킬 만큼 낭만음악풍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8번의 프렐류드나 오르간 이디엄에 따른 2권 11번의 프렐류드 등은 유려한 싱잉 라인과 결코 도를 벗어나지 않는 리듬 감각에 실려 청자에게 훌륭히 전달되며, 바흐의 악보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석과 같은 멜로디들을 마주하는 기쁨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니콜라예바의 바흐에서 어딘지 모를 여백의 미와 초월의 경지를 느낀다면 그것은 단연 인벤션(2성)의 연주에서일 것 같다. 잘 다듬어진 음상과 세심하면서도 사려깊은 손길로 어루만지는 듯 연주되는 이 열 다섯 곡의 소품에서, 그의 솜씨는 세속의 모든 잡념과 고민을 벗어버린 듯 홀가분하다. 물론 다성부에의 적응과 기초 훈련이라는 목적의 충실함 안에서 그 해석이 빛을 발하고 있으며, 단순함 안에서 들려지는 니콜라예바의 웅변이 놀랍다.

  수많은 바흐 연주자들 중 ‘바흐의 즐거움’을 몸소 실천한 이가 있다면 그도 역시 니콜라예바이다. 생전에 필자에게 “나는 운좋게 다성부를 빨리 몸에 익히는 능력을 타고났으며, 그 능력으로 바흐가 소유한 아름다운과 그를 연주하는 즐거움을 청중에게 나눠주려 합니다.” 라고 의견을 피력한 바 있는데, 과연 신포니아(3성) 15곡의 모습은 바흐라는 이름이 전해주는 고풍스럽고 다소 딱딱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선율미와 음의 유희성에 충실한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어 이해하기 쉽다. 새삼 대 바흐의 미소, 아니 니콜라예바의 미소가 떠오르는 명연이라고 하겠다.                                                                                                                  <글/김주영(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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