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가 박신영 Aug 14. 2017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추억하며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바흐 CD 에서 발췌함

사실, 한 번도 만난 적도, 실제 연주회를 본 적도 없는 피아니스트를 추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에 상처 - 상처는 곪든 아물든 우리 인생에 의미를 던져준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편안하고 아름다운 소리도 좋지만, 소리로 우리들의 마음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연주자가 진정한 예술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를 내거나 의미를 던져 주었던 사람을 종종 회상해 보듯이, 나는 피아노 소리로 의미를 던져준 한 피아니스트를 회상해보려고 한다.


  기억과 놀라움

 안타깝게도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Tatiana Nikolayeva, 1924~1993)의 내한 연주가 성사되지 않아 그의 실제 연주를 들을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니콜라예바에 대한 매우 강렬한 기억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이 니콜라예바의 음악세계를 과연 얼마나 말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기억은 니콜라예바의 음악만이 갖는 특성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 하나는 거의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밤늦은 시간에 택시를 탔다. 하루 일과를 마친 후의 피곤함, 그리고 약간의 고독함과 쓸쓸함, 거기에 약간의 정서적인 위축도 느끼는 그런 심리상태였다. 택시 안의 라디오에서는 니콜라예바가 연주하는 바흐/부조니의 코랄 전주곡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가 있어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BWV 645>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뜻밖의 경험이었다. 니콜라예바의 연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고 명료하게 나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물리적인, 이성적인 관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경험이었다.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 한 복판, 그리고 그리 성능이 좋지 못한 택시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가 어떻게 그런 의미와 울림을 던져줄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런 나의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음악에 대해, 예술에 대해, 인간의 감정에 말해주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연결된 고리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그 고리가 이어지는 순간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지 못한 경우에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택시 안에서 들은 니콜라예바의 음은 그 한 음, 한 음이 경건하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깊은 회한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음의 경험이었다. 그 이전에도 나는 니콜라예바를 종종 듣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니콜라예바가 지닌 음의 힘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 같다.      

 또 하나의 기억은 LP를 주로 듣던 시절의 일이었다. 바흐/부조니의 샤콘느를 니콜라예바의 연주로 듣는다, 클라이막스 지점(악보로는 183마디에 해당되는 부분이다)에서 니콜라예바의 연주가 틀린 것처럼(그것도 매우 크게)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히 LP의 바늘이 튀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들어보았다. 그런데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오디오의 바늘이 튀는 것이 아니었다. 본래 그렇게 녹음된 것이었다. 그건 이전까지의 통념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라이브 녹음이라고 하더라도 음반 제작을 위해 수정작업을 거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니콜라예바의 틀린 음은 당시 음악에 대한 나의 관념을 무너뜨리며 들어왔다. 그렇지 않은가. 모두들 클래식은 완벽해야 된다고 믿지 않는가. 클래식 작품을 연주할 때 연주자의 실수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관대하지 않다. 그러나 가만 지금의 모습을 돌아보면, 음악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대한 감동과 작품에 대해 말하고 있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소리의 질, 그리고 감각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큰 쾌감을 주는 연주를 찾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겠다.

후에 니콜라예바가 스튜디오 녹음보다는 라이브 레코딩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당시의 음반 역시 박수소리가 전혀 없었지만 실황 녹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내가 니콜라예바가 음을 크게 헛짚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잘못된 음을 연주한 것도 아니었다. 본래는 Sharp이 붙은 음에 내츄럴(Natural)이 붙어서 단2도 음정이 된 부분을 니콜라예바가 다른 음들보다 더욱 강하게 테누토로 연주하여 니콜라예바의 실수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지금은 이상하게도 니콜라예바의 샤콘느를 들을 때면 내가 그의 미스터치라고 생각했던 그 부분이 어김없이 기다려진다. 그 부분에 이르면 귀를 쫑긋 세우고는 기다린다. 그러면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북받쳐 오르는 것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니콜라예바는 아마도 샤콘느를 연주할 때 내가 느낀 감동의 수십 배, 혹은 수백 배의 감동을 지니고 있었을 것 같다. 그 뜨거운 감정을 아주 여러 해 품었기 때문에 그 순간에, 그 짧은 시간과 공간의 틈 사이를 통해 커다란 에너지가 여지없이 흘러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틈새를 통해서 우리는 바흐의 인간적 감정과 면모도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바흐는 역시 차갑게 타오른 불꽃이었다. 그리고 그 열기는 낭만파 작곡가들의 열기보다 더욱 더 뜨거운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나에게 “바흐야말로 진정한 로맨티스트였다.”고 말했을 때 그 ‘로맨티스트’의 의미를 나는 공감할 수 있었다.

니콜라예바가 역시 실황으로 녹음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베토벤 음반은 바흐의 경우와는 사정이 달라서 연주 도중에 청중의 기침소리와 온갖 잡음으로 듣는 사람에게 인내심을 요구한다. 첫 번째로 이 음반을 들으며 놀랐던 것은 니콜라예바의 집중력이었다. 정말 대단한 집중력을 지닌 사람이 아닐 수가 없다.

또한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단순히 훌륭한 피아니스트만은 아니다. 바흐 스페셜리스트라는 인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니콜라예바는 여성으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처음으로 녹음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피아니스트이기 이전에 작곡가였고, 러시아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가 가장 칭송한 피아니스트였다. 니콜라예바는 쇼스타코비치가 바흐의 평균율을 모델로 삼아 작곡한 전주곡과 푸가를 완성시키고, 세상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 니콜라예바가 없었다면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작품들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거나, 좀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 니콜라에바는 피아니스트 이전에 진정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연주회를 가면 그런 경험을 하는 때가 있다. 무대에 등장하여 연주를 하기 직전, 연주자가 잠시 호흡을 고를 때 주위를 침묵시키는 그런 힘, 그리고 그런 힘을 지닌 연주자는 대부분은 감동을 안겨주곤 한다. 우리 시대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풍요롭다. 음악도 그중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풍요의 피해자들이다. 왜냐하면 나의 바깥에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안,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를 알고, 음미하고 세상을 떠날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든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좋은 음악은 침묵을 안겨주는 음악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음악, 좋은 소리는 주변을 침묵시키고, 그 침묵 속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정신적인, 영적인 감흥을 안겨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클래식에서는 작품 못지 않게 위대한 연주자의 존재가 중요하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모습에 자기를 순응시키지 못해 불안에 떠는 그런 우리 현대인들 속에서는 결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존재하더라도, 그 사람들 사이를 부유하며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 방황하고, 현재의 삶을 좀 더 영적인 차원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내적인 힘을 키우는데 골몰하는 그런 연주자의 존재가! 니콜라예바는 과거의 위대한 음악가의 대열 속으로, 천상으로 사라진 사람이지만 그의 소리, 그의 음들은 그런 부분을 충복시키는 힘이 있다. 소리는 정신현상의 수준에 도달해야만 위대한 예술적 재료로서의 음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니콜라예바의 한 음, 한 음처럼.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Tatiana Nikolayeva, 1924-1993)

니콜라예바는 1924년 5월 4일 러시아의 남부 브리얀스크에서 태어났다. 니콜라예바의 어머니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한 피아니스트였고, 아버지는 음악 애호가로 주말이면 친구들과 더불어 가정 음악회를 즐기곤 했다. 이러한 음악적 환경에서 자란 니콜라예바는 이미 4세 경에 바흐의 전주곡들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였다. 13세 때인 1937년에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에 입학해 알렉산드르 골덴바이저(Alexander B.Goldenweiser)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학장과 총장을 지낸 골덴바이저는 니콜라예바 어머니의 스승이기도 했고, 라자르 베르만의 스승이기도 했다. 니콜라예바는 1950년 26세 때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으로 소비에트 연방 국가상을 수상하면서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같은 해 바흐 서거 200주기를 기념하여 열린 <라히프치히 국제 바흐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본격적인 바흐 해석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당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석에 있었던 쇼스타코비치는 니콜라예바의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아 자신이 작곡한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Op.87>의 초연을 부탁했다. 니콜라에바는 이 곡의 초연뿐만 아니라 쇼스타코비치가 이 곡을 작곡할 동안에 조력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뛰어난 음악성과 능력을 지닌 니콜라예바가 서방세계에 진출한 것은 1990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66세의 나이에도 니콜라예바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여행에 열정을 쏟았다. 니콜라예바는 샌트란시스코에서 쇼스타코비치의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Op.87>을 연주하던 중 쓰러져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니콜라예바는 피아니스트이기 이전에 뛰어난 작곡가였다. 그리고 그의 레퍼토리는 바흐 이외에도 50여곡의 피아노 협주곡,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작품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스크리아빈, 스트라빈스키 등의 러시아 작곡가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니콜라예바는 비상한 암기력으로 언제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작곡하여 만년에 녹음한 <어린이를 위한 앨범> 등에서 니콜라예바의 따스한 인간미를 만날 수 있기도 하다.                           

                                                                                                                              <글/김동준(음악평론가)>

매거진의 이전글 편안한 미소의 바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