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가 박신영 Aug 18. 2017

피아노를 가르치다 오래 전 꿈을 떠올리다

자식을 키우는 일의 어려움

    피아노를 가르치다 똑똑한 학생과 어머니를 보며 우연히 어릴 적 꿈을 떠올렸다. 지금은 내게 꿈이란 게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의 나의 꿈은 수의사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늘 싫어하셨고 내 사주에 나왔다는대로, 법이나 공무원 쪽으로 진로를 정하기 바라셨다. 입시 때, 문과였지만 해당학과에 갈 길이 유일하게 열어진 절호의 기회, 성적도 안정권이었지만, '평생 개 돼지나 만지고 살 거냐'는 비명같은 호통에 어린 나는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영문학과에 들어갔다. 다니는 중에도 편입을 기웃거려 동대문에 있던 김영편입사에서 생물학 공부를 하며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두꺼운 동물학 책을 들춰보기도 하고, 졸업 후 여군 수의사가 될까 학교 게시판의 모집광고를 보며 계획을 세우기도 했던 것 같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서른이 넘으면 그만두고 편입을 하겠다며 주위에 공공연히 말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나는 그다지 목표지향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살다보니 이렇게 그냥저냥 흘러와버렸다. 그래서 요즘 읽은 이야기 중에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참 내 상황에 적절하구나 싶고, '모,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겠어'라며 스스로 위로도 한다.


    지난 설날, 어머니와 함께 뉴스를 보다 '올해 설빔은 아이들 한복보다 애완동물용 설빔이 더 많이 팔렸습니다' 라는 앵커의 멘트를 들으시던 어머니는 뻘쭘해하시며 내게 미안한 낯빛을 지으신다. 그리고 호랑이처럼 호령하시던 예전에 비해 많이 수그러드신 말투로 '내가 무지해서 미안하다' 라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말씀도 하신다.

    아들과 다니는 교회에 아이의 교회선생님과 함께 당일치기 수련회에 갈 기회가 있었다. 50대이신 권사님 가족 자녀와 손자 손녀 모두 한 교회에 다닌다. 손자 손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따님 말씀을 하신다. "우리 딸이 대학입시 때 가천대의대에 합격했었는데, 내가 지방이라고 안 보내고 서울에 있는 식품영양학과에 보냈어.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그리 미안할 수가 없어." 라고 회한의 말씀을 하시는데, 문득 나와 어머니가 떠오르며 우리만이 아니었네 싶었다. 어머니의 마음도 따님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학 때 기웃거리던 수의학과에 대한 이야기 중에 안타까운 일들이 있다. 의대나 수의대 수업에는 필수로 살아있는 생물 실험이 있다. 아픈 사람이나 아픈 동물을 살려 생명을 주고싶은 마음으로 진학했으나, 막상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그 생명을 실험용으로 이용해야 한다. 동물을 키우고 새끼를 낳아 키우고 다시 실험용으로 쓴다 들었다. 그리고 매달 실험용으로 희생된 동물을 위해 제를 지낸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다. 동물을 살리는 법을 배우려면, 무수히 많은 동물의 희생을 보고 견뎌야했다. 그 지난하고 괴로운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내가 원하던 꿈을 이루게 된다. 피상적이던 오랜 꿈과 현실의 고된 과정, 그 상황의 괴리를 과연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사실, 한 번의 기회를 놓친 후에도 어렵지만 계속 꾸던 꿈을 확고히 밀고나가지 못했던 이유도 꿈을 꾸던 과정에서 알게된 현실적 상황에 스스로 방황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요즘 내 마음 속 인생의 지침이 되는 말은, 최근 예술의 전당 간다라 미술전에서 읽게 된 잡아함경의 한 구절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행복과 불행은 함께 온다.' , '인생은 새옹지마' 이런 말들은  엄밀히 따지면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의 현상에 '이것'만 오지 않는다는 것, 반드시 '저것'도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잡아함경의 다음줄을 보면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다.

   정말 그렇다. 내가 꿈을 이루어 수의학과에 진학했다면, 아픈 동물을 치료하는 과정을 배우기 위해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실험을 거쳐야했을 것이다. 내가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있었을지 지금의 나는 모른다. 끝까지 '이것'을 얻으려했다면 '저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저것은, 이것에 대한 마음이 지극하여 그 지극함으로 극복해야했을 것이다.

    못 가본 길은 늘 가슴아프지만, 그 길을 가지 않음으로 겪지 않아도 된 일에 대해서는 안도의 숨을 쉰다. 그러니, 우리 어머니도, 50대의 권사님도,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시면 좋겠다. 사실, 자식에게 미안하지 않은 부모는 없다는 말도 있다. 영문학과를 간 나도, 식품영양학과를 간 그녀도 세월을 살아오고 자식을 키워왔다. 그러니 어머니의 마음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어린 학생들을 대하다보면, 유난히 똑똑한 학생이 있다. 기대 이상으로 잘해줘서 가르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학생, 아마도 그 학생은 어디에서나 늘 칭찬을 들을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칭찬과 기대로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는데, 자녀의 칭찬을 들으시고도 썩 기뻐하지 않는 느낌이다. 그저 겸손하신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늘 들으셔서 무덤덤하신가보다 생각했다. 왠지 어릴 적 우리 어머니가 생각났다. 늘 남들의 칭찬에 덤덤하게 때로는 내가 서운하게 느끼는 말씀도 하셔서 많이 섭섭했다. 어린 마음에 다른 친구들 어머니와 비교해보기도 했다.

    수업이 수 회 반복되며 학생의 어머니와 문자대화를 나누다 '많이 기뻐해주시면 좋겠다' 라는 말씀을 건냈고, 그제서야 어머니의 속마음을 듣게 되었다.  여러 선생님들의 칭찬을 계속 듣다보니 똑똑하고 선망을 받는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고민하게 되고 엄마로서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이끌어주어야할지 큰 부담을 갖게 되셨다고 한다. 나도 내 아이가 어릴 때 <아이는 100% 엄마가 만든다> 라는 제목의 유명한 박사님이 쓰신 책을 읽고 고민하던 적이 있었는데, 과연 유난히 똑똑한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는 많이 고민이 되실 듯도 했다. 그제서야 자녀의 칭찬을 듣고도 썩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시던 어머니를, 나 어릴 적 우리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칭찬도 조금은 자제해야할까.

   지금처럼 잘 키워주셨으니 앞으로도 잘 이끌어주시리라 믿는다. 나는 겨우 주 1회 잠시 피아노를 가르치며 학생을 만나지만, 앞으로 오래 보며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어머니께서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주위분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잘 이끌어가시리라고 용기를 드리고 싶다.



   정말 택도 없는 일이지만, 현재 나의 꿈은 한량이다. 마흔이 넘으며 이제야 클래식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혼자 시간날 때 관심을 두고 공부하며 듣던 클래식음악의 여러 분야에 이제야 조금 깊이있게 발을 들이고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장일은 고달프다. 그러나, 늘 '저것'보다는 '이것'을 생각하며 본질을 잊지 않고자 한다. 그런 중에, 점점 깊이있게 알아지는 느낌이 드는 클래식음악의 세계가 내 앞에 있어 감사하고, 일을 마치고 샤워 후 소파에 누워 편안한 마음으로 클래식음악을 듣는 그 잠시의 한량의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나의 소박하고, 솔직한 꿈이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이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을 벗어난 꿈을 이루려 산다. 이 꿈 최고의 난관은 집에 도착해 내 방 TV리모컨을 찾아 전원버튼을 누르는 순간이다.

<그림출처> Yaoyao Ma Van

매거진의 이전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추억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