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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Sep 04. 2017

가을밤 예술의 전당 피아노 독주회, 예매부터 감상까지

끝없는 여정.. 베토벤 & 백건우

   백건우 님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회를 보러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다. 첫날 금요일 프로그램은 20번, 1번, 19번, 15번, 8번 의 순서였다.

   19번과 20번은 소나티네에서도 볼 수 있던 친근한 곡이었고 베토벤이 스승 하이든에게 헌정한 1번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한 멜로디였다.  

   지난 4월에 예매하고 전곡CD도 준비하며 공연 전 미리미리 예습을 하고 가리라 다짐하였건만, 전날인 목요일이 되어서야 곡을 제대로 들어보았다. 수년 전 사놓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악보를 함께 펼쳐놓고 프로그램 순서대로 CD를 들었다.  5개월이 지나도록 마음만 먹고있다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발등에 불이 붙으니 하룻밤 아니 한시간도 안 걸리는 일이었다. 5개월 마음의 짐이 참 무거웠을텐데..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는 밤.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진즉 공지되어있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좀 더 일찍 들어볼 수 있었는데 역시 마음먹기보다 행동하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하는 길. 오랜만에 보는 예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퍼지는 노래가사는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첫부분..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첫눈에 난 내 사람인 걸 알았죠.. '  

  얼마전 들러서 라이프 와 보그, 하림라시드전, 엑스레이맨과 간다라미술전 까지 하루에 섭렵한 지 한달 정도 지났던가. 그래도 너무 오랜만인 것 같다. 마음같아선 이 근처에 살고 싶은데.

까페테리아 예 에서 허겁지겁 5500원의 저녁식사를 마쳤다. 이곳에서 식사할 때면 2014년 과 2015년에 걸쳐 예술의 전당 아카데미 오페라 강의를 수강하던 때가 떠오른다. 헤드뱅잉하며 침흘리며 꾸역꾸역 듣던 강의시간 내 모습도 기억나고.. 그때 좋았지. 황량한 겨울바람을 헤치고 늦을까봐 계단을 뛰어 올라가던 기억도 나름 좋았던 것 같다. 옆 자리 세 아가씨들은 음악 전공생들인지 음악이야기와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곳에 오면 나와 다른 사람들 보는 재미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시 느껴졌다.

    

    음악당으로 가는 길,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랴. 아트샵에 들러 스윽 새로나온 상품들을 훑어보았다. 아기자기 새로 진열된 예술적(?) 상품들 덕에 눈이 즐거워지는 곳이다.   아트샵 바로 옆에 자리한 예술의 전당(SAC : Seoul Art Center) STORE 에 예술의 전당 굿즈가 다양하게 생겨서 나처럼 예전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이쁜 것을 사두고 싶겠다. 각 건물들 모습이 배치된 크리스털 문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  골드회원만 10% 할인되다하여 조금 아쉬웠지만, 늘 이렇게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 보기좋고 흐뭇한 마음이다.  

 ** 예술의 전당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편의시설과 까페와 식당 등 링크해두니 방문 전에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예술의 전당 입점매장 및 편의시설 안내

예술의 전당 저녁의 조명은 참 운치있다. 전에 비오는 날 찍은 사진들은 분위기가 더 좋았다. 아트샵과 SAC STORE는 첫번째 사진의 한가람 미술관 입구 1층에 있다. 디자인미술관에서는 무민전을 하고 있다. 다른 날 방문했었는데 전시가 아기자기하고 그림과 색채가 너무나 귀엽다. 전시관 안에 사진촬영을 위한 공간도 많아 아이들과 한 번쯤 가볼만 하다. 전시 그림을 보며 미대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터치와 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식당에서 봤던 음대생들과의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다.

   

  조금 지체했더니 금세 8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계단에 푸드코트와 파라솔에 한가로이 식사와 음악분수에서 들려주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모습이 여유로워보여 한 컷. 이 분위기 참 좋다. 가을바람 솔솔 부는 예술의 전당의 밤이다.

  계단을 다 오르니 또 이런 조명을 가진 음악당(우측) 과 서예관(좌측) 전경이 들어온다.

  

    예매표를 찾아 3층으로 올라왔다. Yes24에서 할인받아 27,000원에 4월에 예매해둔 표. 아쉬웠던 점은 공연일이 가까워오며 진행된 이벤트로 8회 전공연을 신청하는 경우 50%할인석 이 각 등급별 100석까지 있었던 것. 이번 베토벤 전곡 연주를 많은 도시에서 진행하고 계셔서 서울에 좀 여유가 있지 않았나 싶었다. 이러면서 또 하나 배운다. 상황과 희소성에 따라 좌석예매를 여유롭게 해야하는 공연도 기한이 다가와 하는게 더 좋은 공연도 있다는 것을.  이런 상황을 알고 영리하게 예매를 했다면 같은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2층 좌석에서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하우, 하나하나 직접 부딪히며 배워가련다.  

    3층 좌석에 앉으니 예술의 전당 음악당 콘서트홀의 전경이 다 보인다. 고풍스럽다. 롯데콘서트홀의 아늑함과 새로움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래도 30년 전에 이 정도의 음악당이라니. 세계적 예술가들이 공연해본 후 칭찬하는 음악당이라니. 시간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더욱 대단한 건축물의 위용을 느껴본다.  

        합창석까지 찬 청중들의 기대, 저 넓은 연주홀 가운데 우아하게 놓여진 그랜드 피아노, 피아노  주위로 소리를 캐치하려 설치된 마이크선들, 오케스트라도 없이 오로지 홀로인 피아노 독주회인 것이다.  이런 중압감을 어찌 견뎌낼 수 있을까. 연주자는 말이다..

이 사진은 마지막 악장이 끝나고 들어가신 후 바로 찍은 사진

    연주가 시작되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연주자에게 간다. 청중들의 인기척, 그들의 눈빛과 그들이 내는 소리 모두 신경쓰일텐데.. 이런 가운데에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청중을 이끌며 늘 청중의 관심이 끊이지 않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음으로 연주하며 감동을 이끌어내는 연주를 하려면.. 괜스리 걱정하는 건 내 입장 내 수준의 생각이겠고 올해 71세의 백건우님은 수많은 경험과 지혜와 집중력이 있으시니 기우일 뿐이다.

   지난 6월 제주 해비치 아트 페스티벌의 연주회 때 연주에 홀린  25세 발달장애인 정영씨가 연주 중 피아노 옆에 다가왔을 때에도 미소 띈 얼굴로 정영씨를 바라보며 연주를 멈추지 않으셨던 백건우 님이시다.  백건우, 연주 홀린 자폐성 장애인 다가오자 '하르방 미소' 활짝


     이제 진짜 연주가 시작되었다. 익숙하고 반가운 20번의 2개 악장이 끝나고 베토벤이 하이든에게 헌정한 1번의 4개 악장이 끝나고 역시 익숙한 19번이 흘렀다. 잘 모르지만 각각 만들어진 시기도 다른 이 작품들인데 이어서 연주하는 전개가 참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프로그램지에 실렸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  2007년 그의 나이 예순 한 살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마라톤 리사이틀을 완수한 백건우가, 10년 만에 다시 '피아노의 신약성서'(한스 폰 뵐로 베를린 필 초대 지휘자 코멘트)앞에 앉는다. ... 2017년, 일흔 한 살의 백건우는 우리네 삶과 베토벤을 다시 돌아보기에 적절한 시간이 됐다고 판단한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유명한 곡을 그냥 늘어 놓지 않습니다. 작곡가의 마음에 스며들어, 더 나은 작품을 고르려고 노력합니다. 번호 순서대로 연주하기보다는 베토벤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출판 순서대로 늘어놓는 것을 베토벤이 의도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 작품이 끝나면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를 음미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음표들이 사랑하고 서로 끌리는대로 곡의 순서를 정합니다." ]

    20분의 인터미션 시간이었다. 피곤하여 잠시 눈을 붙였다. 어제 잠을 많이 못 잤음에도 기대하던 공연이어서 집중해서 들으니 졸리거나 하진 않았다. 졸려서 못 들을 정도라면 1층 심포니까페에서 샷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냉큼 마시고 올라왔을 것이다. 다음 곡을 한 번 더 들어볼까 하다가 요즘 순위 1위라는 윤종신의 '좋니'의 플레이버튼을 눌러보았다. 윤종신 특유의 사실대로 표현하며 정곡을 찌르는 가사가 역시 인상적이고 그래서 그다지 듣고싶지 않았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참 듣길 잘한 것 같다. 후렴부분  길게 내지르는 소리가 구슬프면서도 따뜻한 성악의 소리내는 느낌으로 다가오며 감동이 깊어진다. 세 번의 후렴구가 지난 후 펼쳐지는 음악의 향연은 요즘 높아진 청중의 수준을 충분히 만족시킬만 하다고 생각했다. 평상시 들었다면 무언가 다른 일을 하며 들었을텐데 음악회장에서 음악에 흠뻑 흘러든 마음으로 오직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온전히 노래만 들으니 그 감동이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사실 내게 익숙한 쪽은 클래식보다는 가요. 공연장보다는 차 안이나 내 방에서 듣는 음악. 그리고 항상 무언가 같이 하면서 지나가며 듣는 음악 쪽이다.

    또 워낙,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요하는 성격이다보니 극장에서 영화보는 것 조차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편이다. 여전히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는 일은 여간 신경쓰이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연주회도 마음먹고 가야하는 일이라 자주 가본 일이 없어 역시 익숙하지 않아서 어쩌다 가보게 되는 연주회는 매번 실패했다.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그냥 소리나 들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가 연주자의 연주를 마치는 순간을 나타내는 마지막 손짓이 끝나면 우뢰와 같이 일어서서 박수치는 사람들을 따라하며 그런 척 한 적도 꽤 많다. 슬프게도 '저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잘하긴 잘했나보다. 난 어떻게 듣는지 모르겠던데.. 무식한 모습 들키지 말기로 하자. 같이 박수 많이 쳐야지...' 정도의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연주회는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다. 레퍼토리 순으로 악보를 보며 CD를 들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며 지휘법과 대위법 수업을 들은 일, 음악을 사랑하여 뒤늦게 꿈을 쫓는 학우들과의 대화, 세 번의 전공실기 위클리 수업과 실기시험, 똑 떨어진 추계음악회 오디션의 경험 등.. 음악회 이전에 이런 많은 경험을 하고 들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감상에 도움을 받게 되었던 영상의 내용을 늘 기억한다.


다니엘 바렌보임 "How to listen to Music"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이 음악감상하는 법에 대해 설명하는 5분 정도의 영상이다.

   "음악을 단순히 일상의 불쾌한 일들을 잊기위한 도피처로 삼지 맙시다. 다른 일을 함께하며 음악을 듣지 맙시다. 음악을 듣기 전에 잠시의 침묵의 시간을 가지며 음악을 들을 준비를 합시다. 첫 음이 흘러나오면 그 음을 따라 함께 여행해봅시다. 온전히 완벽히 그 음에 집중하며 그 음과 함께 날아가봅시다. 그리고 그 음악과 함께 느끼며 즐겨봅시다. 장송곡에서도 미사곡에서도 그 기쁨도 슬픔도 우리는 즐길 수 있습니다.

  음악에 많은 것을 주면 줄수록 우리는 음악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영상에서 진정으로 호소하는 다니엘 바랜보임 님의 말씀이 내게 큰 감명을 주었고 음악감상을 할 때 어떤 자세이어야하는지 알게 해주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번째 시간이 시작되었다. "전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15번 소나타. 사전예습 때 곡에 대한 글도 떠오르고 4악장이 정말 좋았던 기억도 났다.

    

   [베토벤은 자연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 긴 시간 시골길을 산책하며 떠오른 악상들을 스케치북에 적었다. 베토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원천이 어디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는지 물어보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다. 아이디어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떠오른다. 음악적 영감은 자연에서, 숲에서, 산책하면서, 밤의 적막 속에서, 이른 새벽 동이 틀 때도 솟아난다. 악상은 감정에 따라 일어난다. 시인의 경우에는 언어로 전환되고, 내 경우에는 소리로 와닿는데, 이 소리들은 음표로 표현될 때까지 내 안에서 요동친다." ]  

  -이상 D.J.Grout, 서양음악사,1973, p.516 에서 발췌-

   

  '전원 Pastorale'이라는 부제는 베토벤이 직접 붙인 이름은 아니었지만, 부제를 들으며 곡을 감상하면 그런듯 하다. 곡의 선율을 따라 여행하다 4악장에 들어서면서는 나도 모르게 음악당 천정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수십인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아닌, 피아노 한 대, 한 사람의 연주자, 그리고 인류에게 위대한 선물을 가져다준 작곡자가 합작한 작품이 음악당 전체를 울리고 사람들 가슴 속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감동을 몰아 드디어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Pathetique">이다. 이 부제는 베토벤이 직접 적은 부제라고 한다. 숨죽이며 격렬한 감정들이 1악장부터 시작된다. 참고 참던 그 마음의 타격을 더는 견디기 어려워서였을까. 1악장 중반으로 가는 중 여기저기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군데에서 시작한 기침소리가 서너 곳으로 퍼져갔다 . 그 이전까진 감정의 동요를 그리 일으키게 하지 않는 곡들이었는데... 8번 1악장은 다르다. 기침하던 몇 사람들은 숨죽이며 참고 참다가 힘들었다던 느낌으로 기침이 쉽게 멈추지 않는다. 연주자의 집중을 흐릴까 걱정되었지만 역시 기우일 것이다.  

   

    2악장 Adagio Cantabile. 2악장은 아르투르 슈나벨의 경우 무척 느리게 연주한다. 지난 학기 시험곡이기도 했던 2악장이다. 나의 경우 빠른 곡보다 느린 곡에서 음악에 대해 더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이 곡을 배우면서 느린 곡의 매력과 학습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베토벤 소나타의 느린 악장은 한 번 쯤 다 연습해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베토벤이 표시했다시피 아다지오의 아주 느린 악장임에도, 백건우님의 연주는 그다지 아다지오로 느껴지지 않았다. 1악장과 3악장의 템포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그 템포에 맞는 아다지오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곡자는 곡을 세상에 내어놓을 뿐, 그 이후는 연주가의 몫이다. 그리고 우리는 베토벤이 직접 친 비창 을 들어본 적이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갈 수 있다면 베토벤의 연주를 녹음해올 수 있을텐데, 물리학에서는 가능하다고도 한다. 언젠가는 정말 그런 날도 오게 될까.  

   많은 연주가들이 아다지오 보다는 빠른 템포로 연주하기도 하는 2악장. 그 동안의 내 선호는 이 마음이 스러져감을 아쉬워하며  함께 좀 더 오래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표현하는 느린 쪽이었으나,  백건우 님의 연주 마지막 즈음 가서 느낀 깨달음으로, 빠르게 치는 것도 충분히 설득력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1악장은 너무나 심장을 쥐어뜯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런 감정이 과연 왜 만들어졌을지 생각해보다가, 죽음이나 다른 고통을 표현한 느낌보다는 사랑의 감정이 가득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악장의 지시표는 Adagio Cantabile 느리게  노래하듯이 이다. 그러나 과연 무언가 사랑의 큰 고뇌를 겪었는데, 노래하고싶은 마음이 들기나 할까 싶기도 하며 지속적으로 연타로 들어가는 16분 음표나 셋잇단음표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1악장의 심장을 쥐어뜯는 처절한 심경에서  다소 벗어나, 아닌 척 조용히 노래하는 멜로디도 생겼지만, 오른손 또는 왼손으로 멈춤 없이 계속되는 음표들의 느리지 않은 연타는,  나 괜찮아요 라며 아닌 척 가장하던 일이 실은 과장이었음을. 슬픈데 슬프지 않은 척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웃음을 흘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꾸미려하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겉으로는 평온히 노래하지만 마음 깊은 곳 뚝뚝 떨어지고있는 눈물방울들.. 양손 중 셋잇단 음표나 16분음표로 안 채워지는 마디가 하나도 없다가, 곡의 마지막 네 마디에서만 긴 음표로 연결되며 맺어진다.  나 슬프지 않다고 가장하고 있던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알게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사랑도 미움도 슬픔도 정리하겠노라고 체념하며 조용히 그 두근거림을, 가장을 멈춘다.

  

     3악장이다. 마음의 깨우침 이후에도 세상은 똑같이 돌아간다. 나의 기쁨과 슬픔에도  아랑곳 없이 전날과 똑같이 흘러간다. 나 또한 그런 세상에 보조를 맞추어 살아간다. 함께 움직여본다. 반복적인 일상을 작은 변주를 통해 새롭게 보내보려 하기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도 하고, 또 다시 보내는 똑같은 일상의 저녁, 밤.. 잠을 청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난 다시 흔들리지 않으리라.' 고.

    3악장을 마치고 일어서는 마에스트로를 향해 우뢰와 같은 박수가 울려퍼진다. 벌떡 일어나 함께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3층 맨 앞좌석은 아찔하다. 조금 무서워서 자리에 앉아 손만 높이 들어 박수치며 마음을 전했다.

      3악장이 끝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재빠르게 눈물을 닦았다. 창피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박수를 치며 눈물을 훔쳤는데, 마에스트로가 무대에서 나가신 후  음악당을 나오는 길에 함께 나오던 다른 여자 관객도 눈가의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 감동받았다.

    깊은 고개숙임으로, 함께 한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마에스트로의 모습은 다시 한 번 경외로웠다. 끊이지 않는 박수에 세 번의 커튼콜 인사 후 사인회를 위해 기다리는 관객들을 보러   나가시고.. 마지막 공연에서는 좀 여유롭게 앵콜곡도 연주해주실까. 은근히 기대해보게 된다.

  

    1층으로 내려가니 긴 줄이다. 먼 발치서 사인하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앞으로 여러번 뵐 거라 오늘 난 여유로우니. 사인을 마치고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9시 20분쯤.. 밖으로 나오니 음악분수 앞에서 좋아하는 재즈 선율이 흘러 한참을 서서 들었다. 다음곡도 재즈. 흥겨움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춤을 추기도 하는 모습이 참 즐거워보였다.

    재즈가 이렇게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흥겹게 하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다음곡은 일 디보 Il Divo 의 <마이웨이 A Mi Marena>,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를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곡으로 음악분수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서서히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왔다. 가을바람이 청명했다.

    완벽한 하루, 완벽한 마무리, 한마디로 좋은 날. 정말 행복했다. 행복은 순간이다. 행복한 사람은 이런 좋은 순간순간들을 더 만나려 하고, 이런 찰나의 순간들을 모으고 모아 시간으로, 기억으로 만들며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

    음악과 함께 한 긴 여행의 순간들, 이 공기 이 바람 이 느낌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



   

    오늘의 대미를 장식했던 비창 3악장을 떠올린다. 늘 결심해도 우리는 또 다시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늘 새로이 결심하는 우리 모습. 같지만 다른 날, 오늘 또 새로운 변주로 새 날을 연주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음악에 우리를 더 많이 내어줄수록 우리는 음악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는 말. 리고 일흔 한살 마에스트로의 삶과 함께한 음악과의 동행길, 잠시 함께 걸을 수 있었던 오늘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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