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마음으로 연주하는 것
'공감각적 표현' 이란 말을 처음 배운 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것 같다. 감각은 눈 코 입 귀 피부 를 통해 전해지는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의 오감이다. 공감각적 표현이란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사용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마음에 나타나는 상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푸른 종소리' 는 종소리를 푸르다고 표현함으로 청각을 시각화했다. 종소리가 들리는데 내게 그 소리는 맑고 푸른 빛과도 같이 그윽하고 청아한 느낌이다.
'하얀 눈발에 흩날리는 피아노 소리' 같은 경우도 지금 울리는 피아노 소리가 어떤 것일지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아마도 많은 음표로 빠르게 진행되는 소리일 것이다. 소리를 듣는 나의 느낌에 하얀 눈송이가 내리는 겨울이 생각났다.
'울음이 타는 노을' 이라는 문구를 읽을 때, 노을이 강렬하여 마치 울음을 터뜨린 듯 것처럼 보이는 수도, 또는 지금 노을을 보는 내 심정이 마치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는 느낌을 말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 마음을 실체 그대로 표현하여 전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친구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노을을 보더라도 나에게는 '울음이 타는 노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타인에겐 '붉은 비단 옷자락' 처럼 보일 수도 있다. 보편적 심상이 존재하더라도 체험의 순간, 내 주관적인 감정이 반영되어진 심상은 참 개인적인 것이기에 그 개인적 감정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다른 감각을 빌려와 함께 사용(공감각)'하는 것이다.
'음악'은 소리를 듣는 '청각'을 사용하고,. '글'은 글자를 보는 '시각'을 사용한다. 와인이나 커피를 마시면 '미각'이 작동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그런 신경계의 작동에서 끝나는 부분이 아닌, 음악을 듣고, 글을 보고, 와인을 맛볼 때 내 마음에 느껴지는 심상이다. 그 심상을 통해 내가 반응하는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시각]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은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주인공이 아버지와 같았던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남긴 (주인공이 자랄 당시 선정적인 장면은 모두 상영불가하여 잘라둔 필름으로) 키스장면만 모은 영상을 보며 우는 장면이다. 시각은 그에게 알프레도 그리고 잃어버린 첫사랑과 지나온 자신의 삶을 떠오르게 하였다.
[미각]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서 미식평론가가 먹은 음식 '라따뚜이' (우리나라식으로 된장찌게 정도로 비유할 수 있는 프랑스 시골일반가정단품식)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맛을 떠올리게 하여 완고하고 까다로운 평론가인 그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했다.
[청각] 영화 <연인> 에서 어린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중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듣는 쇼팽의 왈츠 no.10 은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다시 볼 수 없는 연인에 대한 슬픔으로 흐느끼게 한다.
"장르의 공감각적 표현"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이 음악이다.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소리'를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레슨 교수님은 종종 좋아하는 골프에 비유하여 가르쳐주시는데, 내가 운전을 좋아하는 걸 아신 이후로는 종종 운전에 비유하여 설명해주시기도 한다.
감각을 설명하고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러셀 셔먼이 쓴 <피아노 이야기>를 읽으면 온갖 다양한 장르, 다양한 경험들을 빗대어 음악연주법을 설명한다. 음악에 빗대어 쓴 그 경험을 체험해본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곡을 이해할 때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상상력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본다. 골프에도 운전에도 비유했듯이. 배울 때도 그러하고 이해할 때도 그러하다.
무엇보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글로 써보는 이야기는 곡을 이미지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와인의 세계를 설명하여 인기를 얻은 유명한 만화 <신의 물방울> 에서는 와인의 대가가 남긴 유산의 상속자를 택하기 위해, 대가의 유언대로 와인맞추기 대결을 벌인다. 대가의 글에서 제시하는 와인을 찾는 것이다.
첫번째 와인을 표현한 글을 읽어보자. " 나는 원생림으로 뒤덮인 깊은 숲 속을 걷고 있다. 이끼 낀 나무들에서 습기를 머금은 생명의 향기가 감도는 가운데, 자연의 혜택이 가져다준 이 풍요로움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이 처녀지이기에 어울린다. 오오, 보라, 저기 어울려 노는 짙은 보랏빛을 띈 두 마리 나비를! 이 옹달샘은 너희의 성지일지 모르겠구나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8번에 대해 상상하여 만들어본 이야기를 다음 링크에서 읽어볼 수 있다.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28번, Op.101 :: 想像의 숲 이 곡을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노인의 나른한 하루'로 이야기하고 있다. 악보와 아르투르 슈나벨의 연주를 다음 링크에서 들어보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No.28 in A major Op.101 - Artur Schnabel
지난 번 글에서 악보를 초견하는 방법을 설명하며, 마디수를 보고, 박자가 반복되는 부분을 찾고, 멜로디가 반복되는지 살펴본 후 제목과 악상을 통해 분위기를 잡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경향에 들어맞지 않는 곡도 많다.
Pre-ABRSM 교재인 Piano star 1권 앞 부분의 몇 곡들은 다 이런 성향에 들어맞는 곡들이었다. 그런데 지난 번 이재의 수업시간에 이재가 나에게 어렵다고 하는 곡이 있어서 보니 짧은 곡이었지만 박자의 반복도 없고, 멜로디의 반복도 없는 곡이었다. 멜로디도 박자도 여기저기 계속 변하며 뛰어다녔다.
지난번 글에서 예로 들었던 <Granny's Footsteps>의 악보를 보면 1~4마디와 9~12마디의 박자는 똑같고, 5~8마디와 13~16마디는 박자도 멜로디도 똑같다. 2분음표로 할머니의 걸음을, 스타카토 4분음표로 두 아이들의 걸음을 표현하고 악상을 통해 가깝고 멀리 오는 걸음들이 느껴진다. 같은 박자와 멜로디의 반복패턴을 알면 곡이 쉽다. 앞선 곡들은 이런 반복패턴이 있었다.
다음 <Grasshopper Jig>의 악보를 보면, 전체 16마디의 짧은 곡인 것은 같지만, 박자나 멜로디가 딱 떨어지게 공통된 부분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재가 이 곡을 어려워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악상표기와 제목, 그림을 보자. 제목이 <메뚜기의 춤>, 첫부분에 lively and bouncy '생기있고 통통튀는듯이' 라는 지시어가 있다. 그리고, 초록색 벌레 세 마리가 풀밭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상상해보자. 메뚜기의 몸짓을. 톡 톡 튀어오르며 풀잎을 건너건너 이동하는 메뚜기. 그런 메뚜기가 추는 춤이니 당연히 박자와 멜로디가 반복되는 것이 더 이상하게 여겨질 것 같다. 첫 두 마디 4분음표 스타카토는 이 풀잎, 저 풀잎을 날아다니는 메뚜기의 몸짓, 세 번 째 마디의 2분음표에서 메뚜기는 잠시 쉬어간다. 13개의 4분음표 동안 여기저기 톡톡 뛰어다니던 메뚜기는 여덟 번째 마디의 점 2분음표에 와서야 3박자를 온전히 쉰다. 다음으로 15번을 톡톡 튀기다 잠시 쉬던 메뚜기는 마지막 저쪽으로 사라져간다.
비슷한 부분이 없는 박자와 멜로디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메뚜기의 움직임을 생각하고 펼침화음과 음표의 진행방향을 염두에 두면 재미있게 연주해볼 수 있다. 이 곡은 박자와 멜로디 등 악보 자체에서 찾기 어려웠던 곡의 이해를 제목과 그림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연주했다.
비단 16마디의 짧은 곡이지만, 이런 연습을 꾸준히 확장해 나아가며 곡의 이해와 표현을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또 음악의 이해를 위해 내가 체험해본 적 있는, 좋아하는 여러 장르의 활동에 음악을 연계해 해석해보며 음악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베토벤 스스로 '별이 빛나는 한 밤의 무한한 깊이를 바라볼 때의 감상'이라고 토로했던, 신비스러운 느낌의 이 곡도 내 마음에 흡족하게 연주할 수 있는 날도 오게될 지 수줍게 기대해본다.
내가 마음을 다해 연주했다면, 내 연주곡을 들을 청중들의 마음에 안겨줄 무언가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음으로 한 연주는 또 다른 마음에 전해질 것이다. 작가가 글을 쓴 이후 그 글은 작가의 것이 아니듯이, 연주를 들으며 느끼는 심상 또한 청중들 스스로 찾을 것이다.
태산 앞에 서 있는 갓난 아이처럼 느껴지더라도, 천리길도 한걸음부터이니..
꾸준히 노력하고 연습하고 상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