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가 박신영 Sep 13. 2017

눈건강과 피아노

기도가 되는 연습

     봄과 여름학기를 지나는 동안 피아노 소리가 조금씩 나아지던 60대의 고운 어머님이 계셨다. 세 자녀분들이 매주 번갈아 손자 손녀들과 함께 집에 오기 때문에 못 오시는 날도 많았지만, 손자가 피아노학원에서 보던 동요책도 가져다주며 할머니의 피아노 시작을 응원하고, 손자에게 들려줄 동요도 배워가셨던 어머님.  

      9월 가을학기 시작을 앞두고, 새로운 결심을 다지며 안경을 새로 맞추러 들렀던 안과에서 황반변성진단을 받으셨다고 연락이 왔다. 독서 금지, 신문이나 악보 금지령을 받으셨다며..


       망막의 문제인 백내장, 녹내장은 수술로, 노안이라든지 시력저하는 안경이나 교정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지만, 황반변성은 안구를 감싸고 있는 황반의 문제인데, 아직까지는 썩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고 한다. 글의 촛점이 맞지 않거나 올록볼록하게 보이거나 일부분이 안 보이는 증상으로, 예방이나 보존만 가능하다고 한다. 요즘에는 주변에도 루테인 성분의 눈 영양제를 드시는 분이 많고 매일 1알씩 먹으면 눈이 좀 편안해진다고 들었다.

      나도 15년 쯤 전에 받은 라식수술로 양안 시력 1.0을 유지하고 있지만, 40대 중반으로 가며 점차 눈건강이 나빠지는 것도 느끼게 된다. 모임에서 단체로 산 루테인을 쟁여두었는데, 매일 약을 챙겨먹는 것도 일이려니 지난 설 때 산 약이 아직도 반이나 남아있다.

     아끼고 마음을 나누던 수강생분께 안좋은 일이 생겨 안타까운 심정이다. 평소에는 대학 강의도 들으시며 일상을 넉넉하고 여유롭게 지내시던 분인데, 상황이 조금 나아질 때까지는 피아노 연습  대용으로 틈틈히 연주회 참석 등 간접연주활동으로 음악을 접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10년 전 쯤, 업무는 많고 아이는 어리고 공부는 하고싶고, 스트레스 해소라고는 그저 책 읽고 음악 듣는 일 밖에 몰랐던 때, 직장을 다니며 육아를 병행해야하는 흔한 30대 엄마의 자아분열적 상황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에도 여전히 책이나 피아노는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이 지긋한 고객과 대화를 나누다 저도 모르게 하소연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책이라도 책장에 사 두고, 언젠가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올 때를 대비해요" , 노신사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쯧쯧~ 하는 마음으로 날 보시더니  "지금 읽어야해. 그 때가 되면 눈이 나빠져!" 하신다. 지금보다 10년이나 어렸던 나는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충격이 컸다. 그 때가 언제 올까 싶었는데, 과연 인생선배들의 말씀대로 마흔이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시작되는 것을 느낀다. "마흔이 넘으면 안 먹던 나물의 맛을 알게 되고 눈은 조금씩 침침해지거나 확 나빠진단다. 마흔 후반 쯤 되면 갱년기가 오는데 그 때 관리를 잘해야해."


      그 때는 '나이가 한 살 씩 들어가며 새로운 앎도 생기고 새롭게 대비해야할 일도 생기는 것이다' 라며 천진하게 각오를 다지기도 했는데, 막상 겪어가는 이 순간이 그렇게 용감하거나 유쾌한 일은 아니다. 나물과 김치의 맛을 알아지게 된 건 매우 좋은 일이긴 하지만, 육아와의 전쟁에서 겨우 벗어나는 30대를 지나고 나니, 노화라는 시간의 흐름 앞에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이대로 노화가 계속되어 악보를 보는 눈이 멀고, 음악을 듣는 귀가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음악의 성인'이자, '피아노의 신약성서'라고 불리는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작곡한 베토벤에게 닥친 불행을 함께 아파했던 제자의 글이 있다.

     

    [베토벤은 시골에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기를 아주 좋아했다. 어느 날 우리는 기분 좋게 출발하여, 바덴 근처의 아름다운 산기슭에 있는 어느 외딴 수풀에 도착했다. 한 시간 가량 걸어다닌 뒤에 우리는 풀밭에 앉아 쉬었다. 갑자기, 골짜기 한쪽 기슭에서 목동의 피리 소리가 들렸다. 더없이 고요한 숲 속에서, 맑고 푸른 하늘에 울려 퍼지는 예상치 못했던 멜로디에 나는 매우 감동했다. 베토벤이 내 곁에 앉아 있었으므로, 나는 그 이야기를 했다. 피리 소리는 계속 맑고 밝게 울려서, 듣지 못할 까닭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귀를 기울였지만, 그의 표정으로 나는 그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를 슬프게 하거나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나도 이제는 그 소리가 안 들리는 척 했다. 하지만 이 소리가 처음에 내게 남겼던 달콤한 매혹이 이제는 지독히 깊은 슬픔이 되었다. 거의 깨닫지도 못한 채 나는 슬픈 생각에 잠겨 내 위대한 스승 곁에서 조용히 걸었다. 그는 예전처럼 자신의 내면적 명상에 잠겨 알아들을 수 없는 프레이즈와 음표들을 흥얼거리다가 큰 소리로 노래하곤 했다. 여러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피아노 앞에 앉아 이렇게 소리쳤다. 거의 화난 것처럼 보였다. "자, 자네에게 연주해주지." 막을 길 없는 불꽃과 거대한 힘으로 그는 나중에 위대한 소나타 <열정>에 포함될 알레그로를 연주했다. 그 날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다. ]

    - 제러미 시프먼 저, <베토벤, 그 삶과 음악> page 55~56  -


      음악가로 성공을 거두던 20대 중반 나이의  베토벤에게 닥쳐온 시련, 청력상실.. 주위 사람들의 일화로 읽으니 마치 베토벤이 피와 살을  가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내 옆에 숨쉬고 있는 듯 생생히 다가오며 마음이 더욱 아프다. 멀리있는 성인이 아닌, 나처럼 이 세상에 살아 숨쉬던 사람. 귀가 안 들리는 작곡가였던 사람.  이래서 그의 음악을 듣고 그의 생애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은 진실한 기쁨의 표현이자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산물'이라고, 그는 '운명이라는 역경에 맞서 싸운 영웅'이라고 말하나보다.



    

     악기를 배우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신체활동에 많이 의존한다. 눈으로 악보를 읽고, 귀로 듣고, 손과 발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손과 팔을 지탱해주는 자세는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 오랜 시간의 연습에도 견딜 수 있다. 선생님들 중에는 요가나 필라테스 등을 하며 기초체력을 기르는 분도 많으시고,  연주시에 숨을 안 쉬기도 하는 습관을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바꾸려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즉,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신체의 거의 모든 부분을 활용하여 음악에 마음을 담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인 것이다.  

      때로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다시 한 번 복기해 보아야 할 때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킴으로서, 일상이 되어 잊어버리게 된 고마운 마음을 되살리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다짐해보게도 된다. 그러므로 가끔씩, 아니 자주, 가능하면 매일,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러한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매일매일 마음에 새기며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항상 기뻐할 것, 모든 일에 감사할 것,

    (나와 당신을 위해) 쉬지말고 기도할 것"  

                                              -신약성서 중-

 

     오늘 내게 하루의 삶을 주기 위해 애써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며. 내가 가진 것에 기뻐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연습에 담아본다.

       

P.S. 눈이 점점 나빠진다 (책을 읽어야하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ABRSM : 스케일을 재미있게 연습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