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하는 삶

by 빛기

야행성 인간에게 아침 6시는 한밤중이나 다름 없다. (참고로 이 글을 쓴 시점으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아침 6시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아침형 인간이 다 되었다...) 한창 단잠에 빠져 있을 무렵, 잠결을 비집고 '우다다다, 우다다다'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어떻게 고양이가 이렇게 아침형 동물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제발 잠 좀 더 자자.. 제발..."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사랑스러운 두 고양이 콘이와 순리는 작은 방 안을 서로 좇고 좇으며 힘차게 내달린다. 그러다 진이 다 빠져 배가 고파지면 '야옹, 야옹' 울면서 나를 깨운다. 순리는 간혹 '엄~망~' 하고 울음소리를 내서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왜 밥그릇을 넉넉히 채워 놓지 않았는지 어제의 나를 탓하며, 느적느적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 올리고 강제로 기상한다. 내가 슬 뒤척이기 시작하면 '빨리 일어나지 못해!' 거센 항의를 하듯 순리의 울음소리가 더 날카롭게 귓전을 파고든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에는 게으름을 부릴 수 있을 때까지 부릴 수 있었지만 아침부터 울며 보채는 자식이 둘이나 있으니 억지로 몸을 일으킬 수밖에. 주섬주섬 사료봉지를 들고 밥그릇을 향해 가면 '야옹, 야옹' 따라온 콘이가 내 다리 사이를 스치듯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린다. 밥그릇이 채워지면 허겁지겁 코를 박고 밥을 먹는다. 그 뒷통수는 또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피로가 조금 가신다. 일어난 김에 이제 두 손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화장실을 향한다. 내가 볼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콘이 순리가 본 일을 치우러 녀석들의 화장실로 향한다. 많이 먹는 돼지 고양이들 답게 화장실에는 감자와 맛동산이 한가득이다. 하루에 두 번은 말끔하게 치워 놓아야 까탈스러운 주인님들이 만족하며 시원하게 일을 또 보실 수 있다.



그 다음은 물그릇을 채울 차례다. 평소에 워낙 물을 자주 마시지 않아 생수 한 통을 사두면 3~4일을 먹는 나에 비해 우리 주인님들을 물 마시는 걸 참 좋아하는 효냥이들이다. 늘 새롭고 신선한 물을 채워드려야 한다. 나도 안 쓰는 정수기도 사용하는데 가득 채워뒀던 정수기 물이 금방 바닥이 나서 새 물이 솟아 오르지 않을 때 발생하는 '쉭, 쉭' 소리를 들을 때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 후 스크래처에서 떨어진 종이 조각들을 싹싹 쓸어모아서 버려야 우리 주인님들이 킁킁대다 주워먹지 않는다. 순리는 스크래처를 뜯고 핥아 먹는 버릇이 있어 제대로 탈탈 털어 치워주어야 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부산을 떨다 보면 어느 새 30분이 훌쩍 지나있다. 그 사이 잠기운으로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온다. 우리집 주인님들 덕분에 나도 아침 루틴이란 것이 생겨서 대부분의 하루를 똑같은 흐름으로 시작한다.



늘 뭐든 즉흥적으로, 내 마음 가는 대로 살아왔던 삶에 콘이 순리가 입장하면서, 그리고 녀석들이 내 삶의 중심을 꿰차고 앉은 후부터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일단 첫 번째로 웬만하면 빠른 귀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 예전에 나는 하루에 약속이 두세 개 있을 만큼 밖을 쏘다니는 인간이었고, 친구들 집이 내 집보다 편하고. 잠이 잘 와서 남의 집에서 눈을 붙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콘이, 순리를 곁에 두고 잠이 들어야만 마음이 놓이고 내가 자리를 비워서 하루에 더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콘이, 순리를 펫캠을 통해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흥이 다 깨져버렸다. 더 놀고 싶은 의욕이 바닥나고 솔직히 말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설 궁리만 했다. 우리 주인님들의 꾹꾹이를 받고 골골송을 들어야만 내 하루가 비로소 매듭지어졌다. 그 맺어짐이 내게는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콘이, 순리를 만나기 전에는 여행도 참 좋아했고 운 좋게 꽤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여전히 먼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긴 하지만 여행을 가도 집으로 돌아가면 나를 반길 콘이와 순리가 떠올라 여행이 끝났을 때의 아쉬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순리, 콘이 덕분에 나의 일상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인데도 콘이와 순리와 함께라면 입가에 계속 미소가 번진다. 업무나 그밖의 현실적인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콘이, 순리를 꼬옥 껴안고 있으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천하무적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 얘네만 있으면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콘이와 순리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또 먹고 사는 일에 내 안위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전처럼 1년도 못 버티고 퇴사를 저지르지 않는다. (잘 맞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퇴사 욕구가 사라진 건지도…) 돈이 없어서 내가 굶고 사는 것은 괜찮지만, 돈이 없어서 콘이 순리가 굶는 건 끔찍하다. 어떤 선택이든 좀 더 고심하면서 나름대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미래를 거듭 생각하다보면 계획대로 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니 막막함으로 그치고 마는데 그런 나를 다시 현재로 되돌려 놓는 게 또 콘이, 순리다. 둘 다 뽈뽈뽈거리며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근심, 쓸데없는 걱정일랑 싹 잊게 해준다. 그런데 간혹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일 앞에서도 잔망스러운 두 녀석에게 온 신경이 빼앗겨 쩔쩔 맬 때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잠깐 사이에도 순리와 콘이가 장난을 치다가 토마토 주스가 들어있는 컵을 와르르 쏟았지만...^^ 그냥 콘이, 순리만 봐도 시간이 너무 잘 간다. 속상한 일로 울적하고 우울해지다가도 순리가 볼을 핥아주면, 콘이의 애교 한 번이면 사르르 녹는다. 말랑한 뱃살을 만지고 있다보면, 궁디를 팡팡 두드려주다보면 그냥 모든 게 막 다 잘 될 것만 같고 그렇다. 콘이, 순리와 함께하며 오히려 난 전보다 훨씬 긍정적인 사람이 됐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했던 연애를 할 때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지난 연애가 다시는 꾸기 싫은 악몽 같았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마음을 쏟은 만큼 상대도 나에게 마음을 쏟길 바라고, 변함없는 애정으로 안심시켜주길 바라는 욕심 많은 연인이기보다는 무한정 사랑을 주기만 하면 되는 콘이, 순리의 집사 역할이 내게는 딱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애지중지 사랑으로 보듬은 콘이, 순리가 내 곁을 떠나버리면 어쩌나 싶은 가정 속에 찾아오는 불안감은 연애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을 훨씬 뛰어넘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면서 내 주위를 둘러싼 산소가 사라지는 것 같은 공포심을 느낀다. 그리고 갑작스레 내가 순리, 콘이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 순간이 닥치면 어쩌나 싶어서 동생에게 순리와 콘이를 미리 부탁해두기도 하고, 집을 나설 때는 혹시 내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 밥그릇에 사료를 꽉 차게 부어놓기도 했었다. 내가 당장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거니까. 죽음은 마치 나의 발밑 아래, 도처에 널려있는 웅덩이 같다. 돌부리 같다. 잘 피해가다가도 조금이라도 재수 없는 날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거나, 신발이 싹 다 젖고야 마는 흔하디 흔한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부어둔 사료를 다시 덜어내다가도, 곤히 자고 있는 콘이 순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도 꼭 한 번씩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슬픈 날이 있다. 지금의 우리가 결코 영원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언젠가는 이별을 맞이하는 날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들면 애틋함을 넘어서 상실감마저 들곤 한다. 하지만 그만큼 삶을 더 갈망하고 열망하게 됐다. 삶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됐고 아무 일 없이 무탈한 하루를 흘려보낼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됐다. 콘이, 순리 덕분에 나는 더 행복을 잘 느끼고 사랑을 잘 표현하게 됐다. 삶의 유한함을 마냥 두려워하기보다는 끝이 있는 시간 속에서, 끝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조금씩 용기를 내게 됐다. 어쩌면 콘이, 순리가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었기 때문에, 보드랍고 윤기 도는 털과 같은 사랑으로 품어주면서 내가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좋은 점도 많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건 숭고한 만큼 버겁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두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다 보면 내 자신조차 잊을 때가 있다. 덩달아 잃어야 하거나 포기해야만 하는 기회나 자유도 있다. 그런데도 삶을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해서 나처럼 홀로 자신을 응시하며 성찰의 무덤 속에 스스로를 깊이 파묻는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눈동자를 찾아서 마주보았으면 좋겠다. 그 눈동자가 꼭 나와 같은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이 될 수 있고 사물이 될 수도 있다. 때때로 진심어린 손길 끝에 탄생했거나 나보다 더 오랜 세월 살아온 물건에게서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응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으니까. 나는 세상에 머무르는 모든 것들에게 영혼과 의미가 깃들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참고로 반려동물을 삶으로 초대하는 일은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금도 나는 길고양이 출신인 순리, 콘이를 입양한 지난날 내 결정의 무게를 하루하루 묵직하고 빠듯하게 체감한다.)



이런저런 일들로 외롭고 지친 20대를 보내다가 내 안으로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세상에 시선을 두었을 때, 맑고 깨끗한 두 눈동자에 오롯이 나를 담아준, 나를 비춰주었던 콘이, 순리야. "이리 와." 하면 어김없이 냥냥 대답을 들려주는, 내가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잠에서 깨어나 문앞을 서성이는, 왜 이제 왔냐며 칭얼거리고 때로는 잔소리를 퍼붓기도 하는 나의 소중한 가족 순리, 콘이야. 나에게 새 생명을 줘서 고마워. 그래서 이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우리 이번 생을 힘껏 살아내다가 다음 생에도 꼭 함께 다시 태어나자. 그때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어. 바람이나 구름이 되어서라도, 스치는 풀잎이 되거나 빗방울이 되어서라도 너희의 눈을 마주칠 수 있으면 좋겠어. 서로를 향한 깜박임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그 찰나를 살기 위해 꼭 다시 태어나고 싶어. 너희와 함께 살아가며 앞으로 나는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다음 인생까지 살고 싶게 만든, 너희는 참 못말리는 요물들이야. 사랑해, 이 요물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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