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최근 1년 사이 입지 않는 옷을 몽땅 비닐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집 근처 리사이클 스토어에 가져다줄 계획이다. 출근하던 아침에 문득, 옷을 새로 사도 매일 비슷한 옷을 조금씩 다르게 조합해서 입는 나를 보면서 이번 가을에는 굳이 새 옷을 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이르기 전까지는 또 습관적으로 휴대폰에 설치해둔 쇼핑몰 앱에서 내가 찜해둔 옷들이 할인을 한다는 알람에 홀린 듯 쇼핑몰에 접속했다. '올 가을에도 레더 재질 자켓을 하나 살까... 아니면 무스탕 같은 거..?' 골몰하다가 최근에 여동생이 알려준 옷 한 벌의 가격에 여러 벌의 옷을 구매할 수 있는 해외직구 쇼핑앱에서 이번 가을 트렌드가 어떤지 살펴보았다. 그러다 출근 시간이 다 되어 옷장 속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진 채 방치된 옷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또 자주 손이 가는 옷만 골라 입었다. 사실 유행에 그리 민감한 편도 아니고 스타일링에 엄청 진심도 아닌데다 잘 입고 다니지도 않을 거면서 새 옷을 사는 이유가 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결국에 내린 결론은 '새로워지고 싶다'였다. 나는 언제나 새로움을 갈망했다. 새로운 옷을 입으면 새로운 자아를 덧씌울 수 있다고 믿으며 쇼핑몰 사이트를 기웃거렸던 것 같다. 이틀 전에는 가을이 되었으니 이불을 바꿔야겠다고 새 이불을 주문했고 이불은 현재 '배송중'인 상태로 부지런히 나에게 달려왔다. 하지만 그 이불을 덮고 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그대로, 어제의 나일 테지. 누에고치처럼 나비가 되어,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신해 훨훨 날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꾸만 새로워지고 싶어하는 나는, 지금의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아니면 내 사주에 '인,신,사,해'라는 강한 역마의 기운을 가진 지지의 글자가 무려 3개나 다닥다닥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3년 가까이 직장도 바꾸지 않고 대학교 때부터 거의 쭉 살다시피 했던 지역에 머무르며 생지를 3개나 가진 인간답게 변화를 도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 의구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확실히 나는 뭔가에 쉽게 질려하는 사람이다. 러닝 코스나 산책길도 매일 다른 풍경을 보며 걷고 싶어해서 외출 전에는 항상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어떤 낯선 곳으로 향할지 고민한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나 분야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내 주위의 환경이나 나를 둘러싼 모든 자그마한 것들이라도 조금씩 바꾸고 싶어하는 건 내 사주에서 움켜쥐려는 열망일까? 사주 공부를 하면서 몇 년간의 임상을 거치다보니 사주는 데이터의 학문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래서인지 사주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주를 떼어놓고 요새의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살펴본다. 아니, 이 열망의 뿌리를 파헤치려면 오래 전의 나부터 다시 만나고 돌아와야 할 것 같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해온 것도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책을 읽은 후의 내가 다르기 때문에, 그 확연한 차이를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실감하게 되어서다. 눈물을 글썽일 만큼 감명 깊은 구절 앞에서 경건해지거나 사방에 별똥별이 떨어지듯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책을 덮고난 뒤 밀려드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 때문에 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전까지 나의 항상성이 내게는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지긋지긋한 단점으로 여겨질 때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 책을 통해 이기적이고 어설픈 내가 밉고 싫었던 시절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인생을 누군가와 바꾸라고 하면 바꾸기 싫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꽤나 스스로를 애틋하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최근에는 바르셀로나의 슈퍼스타인 라민야말과 내 인생을 놓고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무얼 고를 거냐고 했을 때 주저 없이 내 인생을 고를 거라고 대답해서 여동생에게 조롱을 당했었다^^.. 내 삶을 계속 살아내고 싶은 이유는 축구하는 삶에는 큰 뜻이 없을 뿐더러 어린 나이에 재능을 꽃 피워 벌써 자기 분야의 최정점을 찍은 그의 인생보다는 아직 이뤄나가야 할 게 많은 지금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고 나만의 레이스를 완주하려는 태도를 갖추게 된 것 또한 모두 책 덕분이겠지. 책으로 인해 내가 수십번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다시 태어난 나와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새로운 나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새로운 나는 새 옷에도 새 가방에도 새 이불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넓고 쾌적할, 먼 훗날 운 좋게 이사갈 수 있을지 모를 새 집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필요에 의해 그것들을 구매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새로운 나를 구매 버튼 클릭 한 번으로 얻고자 했던 어리석은 행동을 이젠 멈추어야 할 때다. 내가 얼마나 쓸모 없는 것들에 시간을 허비하고 기웃대며 그것들을 가지게 된 후 더 짙어진 공허감에 빠져 있었는지 실감한다. 아무리 우아한 것을 몸에 걸친다고 해도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은 착각에 불과했고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영혼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무의미해질 뿐이어서 금세 쓸모를 잃게 되었다는 걸, 봉투 안에 겹겹이 쌓인 옷더미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고 쓸모 있는 것은 무엇일까? 팡팡 터지는 모양의 장난 같은 말풍선 속에 '깨닫다!' 라는 문구 하나만 적힌 흰 티셔츠 하나만 입고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내가 동경하는 작가님의 맑은 얼굴과 그 낯빛보다 더 투명한 눈동자를 보면서 깨닫는다. 그저 평평한 화면 너머 속에서도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그의 영혼을 훔쳐보면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진짜 내가 가져야 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어쨌든 다시 책 앞에 있을 것. 구린내와 비린내를 풍기는 글이라도 코를 움켜 잡고 계속 써내려 갈 것. 그리고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 속에 최선의 진심을 담기 위해 체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로새긴다. 오늘 아침엔 책을 읽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침 운동을 패스했지만 내일은 퇴근하고 축구장에 경기를 보러 갔다가 여동생이랑 달리기 시합을 할 예정이다. 그 시합의 이름은 영혼의 달리기. (참고로 동생과는 합의되어 있지 않은 스케줄이다 ㅎㅎ...) 그렇게 한 번 달리고 나면 달리기 이전의 나와 조금씩 달라져 있다. 운동은 눈으로도 선명하게 달라진 나를 눈치챌 수 있는, 내가 나인 게 지루하거나 불안해질 때 그 감각을 마비시키는 가장 쉽고 현명한 방법이다.
무언가를 더 걸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벗어던진 채 온전히 나인 그대로 완전해질 수 있는 것들에 몰입해야 가짜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일단 밖으로 나와서 계절마다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과 맞닿았을 때 세월을 따라 어디로 휩쓸려가고 있는지 까마득해지곤 하는 몽롱함을 털어낼 수 있었다. 나른함에 감기려는 두 눈을 비비며 나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을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면서, 왜 자꾸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방황하고 미련하게 행동했을까.
무언가를 직접 실천하고 배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을 알고 있으나 이번 달부터 수영을 배워보기로 결심해놓고 막상 수영장에 가서 물에서 뜨지도 않는 몸으로 허우적댈 생각을 하니 막막한 나머지 아직도 강습을 미루고 있는 중이다.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온 후의 나는 이전의 나와 완전히 달라질 거란 예감은 확실하다. 확실하기 때문에 더 무섭다. 무서워서 줄행랑을 치고 싶을 만큼 나는 누가 가르쳐줘도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게 두렵다. 막상 도전했지만 실패할까봐, 계속 노력했는데 영영 안 될까봐, 그렇게 느끼게 될 절망과 창피함과 허무함이 내 것이 될 미래가 확실해보여서 막상 기약한 때가 되니 도망치고 싶다. 여태껏 항상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 앞에서 회피하고 도망치곤 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벌레가 붙은 듯 마음이 근지러워진다.
모두가 찬사를 보낼 만큼 근사한 것들만 완성시키고, 엉망진창인 순간은 한시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욕심을 긁어내야 한다. 다시 태어났는데 전보다 나아진 것 없이 계속 별로인 사람일까봐 전전긍긍하는 이 모습도 오랫동안 내가 깨고 나오고 싶은, 무덤 속에 영원히 묻어둔 채 작별하고 싶은 모습 중 하나다. 스스로에게 바라는 게 많은 내가 더 이상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마음을 굳히기까지, 계속 반복되어야 할 죽음과 탄생이 숱하게 날 기다리고 있겠지만 일단 이제는 수영장 앞으로 가자. 물살을 가르며 내 영혼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로 뛰어들어보자. 풍덩!
(다음 글은 수영 첫 수강 후기로 돌아오겠습니다 ..
시간 들여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