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새빨개진 날

by 빛기



여느 때처럼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지하철 문앞 구석 자리에 서서 책을 펴들었다. 1시간 정도의 먼 여정이 아니면 대체로 서있는 채로 이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대의 지하철도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출입문의 구석의 틈이라도 비어있다면 행운이었다. 맨 마지막 역에서 내리기 때문에 내릴 곳을 놓칠 걱정 없이 귀에는 이어폰까지 꽂고 펼쳐든 책에 한창 몰입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한 여자분께서 나에게 “좀 비켜주실래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사람들이 보통 내리는 역의 반대 방향, 즉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 방향이 아닌 내리는 방향에 서있었음을 감지했고, ‘아차’싶으면서도 ‘그래도 충분히 내릴 여유 공간이 있을 텐데?’하는 의아함이 스쳐갔다. 멀뚱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여자분께서 아래로 손을 뻗었고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한 남자분의 휠체어 손잡이를 쥐고 문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얼마나 그들의 동선에 큰 훼방을 놓고 있었는지 깨달으며 순식간에 귓볼부터 열이 돋았다. “죄송합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전한 후 그들에게 길을 터주면서 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잠시 그 공간에서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나의 무심함이 못견디게 괴로웠다.


휠체어와 늘 한몸처럼 함께하는 그들의 일상과 나의 일상은 얼마나 다르게 흘러갈까. 그 어떤 틈으로도 자신을 숨길 수 없는 그들을 계속해서 구석진 자리로 내모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들은 매 순간 빠듯하고 고단할 것이다. 내 몸 하나 뉘일 자리가 있길, 사람들과 닿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작은 틈새가 있길 바라는 삶과는 너무나 다를 것이다. 그런 다름에 자주 귀 기울이며 살아가야 한다고 거듭 다짐하면서도,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고 내가 궁금한 이야기 속으로만 빠져든다. 내 귀에 울려퍼지는 달콤한 노랫말들이 나와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닫아둔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꼭 알아야 할 진실과 살고 싶은 세상과 멀어지는 건 아닐지. 가끔은 좋아하는 책도 노래도 내려 놓고 어떤 스쳐감 속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마음 자리를 만들어 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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