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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Oct 26. 2023

도시락 나들이

도시락을 싸서 나가자

매번 끼니때마다 무얼 먹을지 고민이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많지만 매번 사 먹을 순 없고 만들어 먹는 것도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있는 대로 대충 먹게 된다. 겨우 차려 먹다 보니 배는 부른데 무언가 헛헛하기도 하고 더부룩하기도 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갑자기 메뉴를 스페셜하게 바꾸기는 부담스럽고 평소에 먹는 걸 싸서 나가서 먹어보기로 했다. 도시락을 싸서 나가서 먹는 것이다. 마침 요즘이 김밥 만드는 주간이라 별 고민 없이 김밥으로 도시락을 쌌다. 김밥을 싸면서 김밥은 정말 도시락에 최적화된 메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반찬 걱정 없이 돌돌 말면 끝이기 때문이다. 김밥을 통에 넣고 뜨거운 기운이 살짝 날아가길 기다린 후 뚜껑을 닫았다. 텀블러에 미지근한 물도 담아 같이 챙겼다.


원래 일찍 나와서 점심시간에 맞춰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배로 밀려났다.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지나서야 나설 수 있었다. 왜 마음먹고 나가려고 하는 날에 일이 생길까. 근처 공원으로 얼른 달려갔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거리가 한산했다. 늦어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조용한 공원에 가니 금세 편안해졌다. 적당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자랑스럽게 꺼냈다. 요즘 김밥에는 단무지 대신 묵은지를 씻어 넣는다. 다른 재료는 늘 넣는 대로 당근, 계란, 시금치, 우엉조림을 넣었다. 깨소금은 보통 밥에 간을 할 때 같이 넣는데 오늘은 특별히 김밥 단면마다 보기 좋게 뿌려주었다.


김밥이 집 조명이 아닌 햇빛을 받으니 더 예뻐 보였다. 평소 같으면 식탁을 보면서 멍하게 먹었을 텐데 나무와 하늘을 보면서 먹으니 행복했다. 새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옛날에 어른들이 나와서 먹으면 뭘 먹어도 맛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자주 먹는 똑같은 김밥도 이렇게 나와서 먹으니 더 맛있으니 말이다. 김밥이 하나씩 없어지는 걸 아쉬워하며 야무지게 다 먹었다.


매번 보는 김밥도 나무를 배경 삼으니 싱그럽고 더 예쁘다.


밥을 다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주변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근처 벤치에 사람들이 왔다. 얼른 뒷정리를 하고 후다닥 공원을 벗어났다. 짧은 시간이 없지만 몸에도 마음에도 영양이 듬뿍 채워진 것 같았다. 공원도 자연이라고 편해서 그런가 보다. 누군가는 편한 집 놔두고 먼저 뒤집어쓰면서 무슨 청승이냐 하겠지만 나와서 먹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배도 채우고 햇빛 충전도 하고 일석이조이니 꼭 하시라고 말이다. 특히 요즘처럼 선선한 가을에는 더욱 추천한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도시락을 싸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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