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을 보며 든 생각
완연한 가을이다. '낮엔 더우니 아직 여름이 안 갔다, 아침과 저녁에는 추우니 가을이 왔다'라며 어떤 계절도 아니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정말 가을이 왔다. 빨갛고 노랗게 단풍이 물들었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맞은 가을은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가을이 반가운 건 선선한 날씨 때문이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무덥고 습한 날씨는 매번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이젠 낮에도 마음껏 뽀송하게 다닐 수 있으니 좋다. 기온이 더 낮은 아침, 저녁에 느껴지는 공기는 기분을 상쾌하게 하기도 한다.
가을은 아쉽기도 하다. 활기찼던 여름을 보내기가 서운해서 가을이 오는 것을 모른 채 하고 싶었다. 여름엔 해가 길어 저녁까지 밝고, 무얼 해도 시작해도 될 것 같은 에너지가 있었다. 그에 반해 가을은 몇 해가 남지 않았기 때문인지 저물어가는 기분이 들어 슬프다. 무슨 일이든 다 마무리해야 할 것만 같다.
여름을 보낸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가을이 왔다 가려고 한다. 가을은 정말 한 순간인 것 같다. 그 짧은 순간에도 가을은 단풍을 곱게 물들여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꼭 기억하라는 것처럼 단풍을 참 예쁘게도 물들였다. 지는 잎에게 어쩌면 이렇게도 예쁜 색으로 물을 들일까 생각해 보았다. 음악은 보통 피날레가 가장 화려하다. 가을은 한 해의 피날레일까. 피날레에는 클라이맥스가 있는 경우 많다. 극에도 후반부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가을은 지는 계절이 아니라 피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단풍도 지는 게 아니라 붉고 노랗게 피는 중인 거다.
똑같은 하루지만 고개를 들라고 그렇게도 예쁘게 물드나 보다. 잘하고 있으니 힘들어도 해보면서 잘 살아내라고 말이다. 단풍이 그토록 화려한 건 응원을 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단풍은 손으로 잡고 흔드는 응원도구를 닮았다. 열심히 살아내려는 사람들에게 가을은 지지를 받고 제대로 피는 시기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