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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Nov 07. 2023

여름 미션 클리어

선풍기 씻어 넣기

며칠 비가 오더니 바람이 꽤 차가워졌다. 여름에 피해 다니던 햇빛을 이제 찾아서 쬐고 있다. 햇빛이 비치면 그나마 따뜻하기 때문이다. 추워진 날씨에 옷은 이미 긴옷이지만 방은 아직 여름이었다. 정리하지 못한 선풍기가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간 지 거의 두 달이 지났다. 하지만 선풍기는 여전히 방에 있었다. '낮엔 더우니 선풍기가 필요할지도 몰라.'라고 하면서 선풍기를 넣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에', '혹시나' 하면서 정리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늦여름부터 선풍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는데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리를 미뤘다. 이건 날씨 탓이 아니다. 내가 게으른 탓이다. 그냥 정리하기 싫은 것이다. 선풍기는 그냥 닦아 넣으면 안된다. 팬에 먼지가 많이 붙어 있기 때문에 분리해서 안쪽까지 씻고 말리고 닦아 커버까지 씌워 넣어야 한다. 이 과정이 생각만으로도 귀찮았다.


사용 안 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선풍기에는 제법 먼지가 쌓여있었다. 하얗던 선풍기는 점점 흑빛을 닮아가고 있었다. 11월도 시작되었으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선풍기를 모아서 분리하기 시작했다. 드라이버를 찾아와 앞판의 고정 나사를 풀고 커버를 돌려 뺐다. 팬도 해체하고 뒷 커버를 지탱하던 나사도 풀어서 분리했다. 분리한 나사는 선풍기별로 잘 모아두어야 한다. 특히 나사는 너무 작아서 자칫 잃어버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헷갈리지 않게 부품을 일렬로 쭉 세워 두었다. 씻은 선풍기에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지자 정리를 시작했다. 남은 물기를 닦고 분리했던 것과 반대로 부품을 끼우고 조립했다. 먼지 커버를 씌우고 가운데 끈을 리본으로 묶어 고정시켜 주었다. 선풍기 몇 개를 이렇게 치우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선풍기가 없어지자 방이 훤해졌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미루고 있을땐 선풍기를 볼 때마다 찝찝하더니 하고 나니 뿌듯하다.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동안 겁을 많이 낸 것 같다. 올해 여름 미션은 클리어했다. 다음은 겨울 미션, 트리 꾸미기, 트리 치우기가 기다리고 있다. 트리는 또 언제까지 장식되어 있을까. 어쨌든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은 개운하게 하루를 마무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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