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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Nov 08. 2023

추워도 간다

밥버거 도시락 나들이

며칠 비가 오더니 날씨가 꽤 추워졌다. 햇빛은 따뜻했지만 바람이 쌀쌀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따뜻해지겠지 생각하며 도시락을 쌌다. 오늘은 볼일이 있어 나갈 예정이라 근처에서 밥을 먹을 예정이다. 그래서 가까운 공원을 알아두었다.




도시락은 밥으로 만든 밥버거다. 예전에 밥버거가 유행했을 때 저렴하고 양이 많아서 자주 사 먹었었다. 버거였지만 숟가락으로 퍼서 먹었는데 아는 맛의 무서움을 그때 실감했다. 조미김으로 양념된 밥에 달달하게 볶은 김치와 고소한 계란프라이, 새콤한 단무지까지. 예상했지만 정말 꿀맛이었다. 그 기억을 되살려 밥버거를 만들어보았다. 양파와 신김치를 잘게 썰어서 팬에서 볶다가 원당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마무리한다. 김치의 신맛이 강하다면 원당을 조금 더 넣어준다. 밥에는 소금과 김으로 간을 한다. 김은 조미하지 않은 김을 넣고 대신 소금을 더 넣어줬다. 계란프라이까지 준비해서 동그랗고 깊은 그릇에 랩을 깔고 밥부터 넣고 차근차근 재료를 쌓아 올렸다. 마지막에 밥을 다시 덮어주고 랩 채로 그릇에서 꺼내서 단단하게 모양을 잡으면서 싸주면 완성된다. 버거 느낌을 내보려고 종이포일로 버거처럼 한번 더 포장했다.


따뜻해지리라 생각했던 날씨는 여전히 그대로 추웠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냥 돌아갈까 싶었지만 조금만 애쓰면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음을 알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입구에 '200m'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얼마 안 걸리겠거니 했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오르막길이라서인지 길게 느껴졌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공원 입구는 한산했다. 바람에 부딪치는 낙엽소리만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스산할 정도로 조용했다. 벤치를 찾아 앉으려고 보니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 송홧가루가 그대로 쌓여있었다. 가루를 대충 털어내고 앉았다. 밥버거를 꺼내 버거처럼 손으로 잡고 얼른 먹기 시작했다.


계속 있으니 우거진 숲이 무서워졌다. 그 순간 젊은 여성분이 나타났다. 하늘에 브이를 하며 사진을 찍고 떨어지는 낙엽을 잡으려고 깡충깡충 뛰기도 했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아, 이분도 힐링을 하러 왔구나 싶어 동지애가 느껴졌다. 나중에 내려가서 다시 만났는데 괜히 반가웠다.


맑고 생생한 잎들, 추운 날씨 속에서도 푸르렀다


도시락을 먹는 내내 바람은 계속 불었고 도시락을 싼 천이 날아갈까 꽉 잡고 노심초사했다. 거기다 밥은 빠르게 식어서 질겅질겅 씹어 먹을 지경이었다. 소화도 좀 안 되는 것 같았다. 이제 도시락 나들이를 마무리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던 중 내리쬐는 햇빛에 하이라이트가 켜진 듯 새파란 잎을 보았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추워도 하늘과 나무는 그대로인데 날씨 핑계를 대고 있구나 싶었다. 도시락을 핑계로 억지로 나와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면서 마음이 많이 평온해졌는데 여기서 그만두려니 아까웠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도시락은 보온통에 담아 조금 더 나가보자. 적당한 실내공간도 찾아보자. 나를 더 보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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