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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Nov 09. 2023

내게도 트리가 있다

트리 장식하기

선풍기를 씻어 넣는 여름 미션이 끝나고 곧바로 겨울 미션이 주어졌다. 바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하기다. 사실 창고에서 며칠 전에 꺼내두었는데 미루다가 이제서야 실행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작년까지 집에 트리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사는 일에 바쁘셔서 관심이 없으셨고 나 또한 트리가 좋긴 해도 짐일 뿐이라며 사지 않았다. 사려고 잠깐 마음을 먹고 찾아보기도 했지만 꽤 비싼 가격에 고민만 하다가 결국 시기를 놓쳐 사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건강을 잃은 후,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지낸 날이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당기는 것이 있다면 그냥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작년에 주문한 크리스마스트리다. 장식품이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저렴한 트리 하나를 구매했다. 받자마자 조립을 하고 장식을 했다. 마지막으로 전구를 둘러주고 전원을 켰는데 그 순간의 감격을 아직 잊지 못한다. 한동안은 혼자서 불을 켜고 반짝이는 불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반짝이는 불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면 트리 장식을 서둘러야 했다. 꺼내둔 파우치를 열어 밑받침부터 먼저 조립하고 두 개로 나누어진 트리대를 순서대로 꽂아줬다. 그리고 접혀있던 가지들을 펴서 잎들을 자연스럽게 배열했다. 트리 나무 모양이 완성된 후, 장식을 하나씩 꽂았다. 맨 위에는 'merry christmas' 문구를 올리고 뾰족한 모자도 씌워줬다. 나무 사이에는 골드볼을 중간중간 걸어주었다. 전구까지 트리에 이어주고 드디어 전원을 켰다. 불이 반짝거리며 들어왔다. 그래, 이래서 트리 장식하는 거지! 1년 만에 보는 건데도 여전히 예뻤다. 신나서 두 손을 마주 잡고 봤다.


강렬한 트리 부속품들, 전구를 켜는 순간 다 예뻐 보이니 괜찮다.


내가 산 트리는 저렴한 거라 나뭇잎이 풍성하지 않다. 거기다 장식볼이 꽤 커서 약간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구를 켜면 다 괜찮다. 반짝거리는 불빛이 부족한 모든 것을 다 덮어준다. 공간도 훨씬 따뜻해진다. 이 풍경을 보려고 트리 장식을 했구나.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매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트리를 보고 있으니 조금 더 예쁘게 꾸며주고 싶어졌다. 예전에 가게에서 트리 장식을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트리조차 없으니 장식을 사지 못했기 때문에 괜히 심술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트리가 있으니 나도 살 수 있다. 내게도 트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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