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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Feb 09. 2024

쌀 한 되의 양

예상치 못한 쌀가루 공격

조카의 첫 생일 다가와서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예쁜 케이크도 좋지만 이왕이면 조카도 먹을 수 있는 케이크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사과 당근 케이크다. 내 생일 때도 직접 만들어먹는 이 케이크는 사과, 당근, 아몬드, 계란만 넣고 만드는 초 건강식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란찜처럼 익힌 반죽이지만 내게는 소중한 케이크다. 그 케이크를 조카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었다.




케이크를 만드려고 보니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조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정해져 있어 마음대로 장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케이크의 생명은 장식인데 어떻게 할까 싶다가 쌀가루가 떠올랐다. 케이크 위에 모양을 내서 뿌리면 조카도 먹을 수 있고 장식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쌀가루를 찾아봤다. 생각보다 쌀가루를 구하기 어려웠다.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는 방앗간에 쌀을 가져다주면 쌀을 갈아준다고 했다. 그러시고는 직접 쌀을 가지고 가서 갈아주시겠다고 하셨다. 단, 쌀 한 되는 돼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쌀 한되라니.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무게는 킬로그램만 익숙해서 '되'라는 단위가 감이 오지 않았다. 대충 그 정도면 되겠지 싶어 엄마에게 그만큼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가져온 쌀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큰 대야에 쌀가루를 가득 들고 오신 것이다.


그제야 '되'라는 단위가 생각났다. 왜 그때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을까. 후회하면서 찾아보니 한 되는 약 1.6kg의 양이라고 한다. 케이크 위에 장식할 약간의 쌀가루가 필요했는데 훨씬 많은 쌀가루 폭탄을 맞은 것이다. 저걸 다 어떡하지 싶어서 당황스러웠다. 얼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엄마의 수고로움을 위해서라도 뭐든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백설기를 발견했다. 재료도 간단하고 찜기만 있으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었다. 거기다 조카 생일이니 나름 의미도 있었다. 원래 하려고 했던 것 마냥 침착하게 쌀을 계량하면서, 그렇게 계획에도 없던 백설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런 쌀가루가 떡이 되는 게 신기하다. 남은 쌀가루로 백설기를 더 만들어봐야겠다.


떡이 과연 될까 반신반의하면서 만들었는데 떡이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만들게 된 떡이 순순히 잘 될 리가 없었다. 떡이라는 성질을 모르고 바닥에 면포만 깔았더니 면포에 다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떼서 모양을 다듬어두긴 했지만 과연 조카에게 가져가도 될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하지만 이번 실수로 '되'가 얼마 큼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백설기까지 만들수 있게 되었다. 생각지 못한 일이었지만 이렇게도 배우는구나 싶어 감사하기도 하다. 쌀가루가 많으니 다른 떡도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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