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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Feb 10. 2024

힘들어도 맛있다

설맞이 오징어 전 만들기

올해가 시작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설이 다가왔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식상해서 안 쓰고 싶지만 정말 시간은 너무나 빨리 간다. 명절이 되면 늘 큰집에 가서 음식 하는 걸 도와드리곤 했는데 차례음식을 간소하게 줄이면서 도움이 필요 없게 되어 한동안 명절음식을 만들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차례까지 지내지 않게 되면서 집으로 손님이 오기 시작했다. 결혼한 동생네도 외삼촌, 외숙모도 이제 우리 집에 온다. 자연스럽게 명절음식을 다시 만들게 된 것이다.




정식 명절모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절이라 음식이 신경 쓰였다. 우리 집 손님 단골메뉴인 잡채와 불고기는 하기로 했는데 조금 허전해서 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냥 전 한 두 개만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일이 너무 많아서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었다. 옆에서 도와드릴 때는 몰랐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재료를 다듬어서 모양을 만든 후, 밀가루, 계란을 발라 불조절하면서 구웠다.


만들기로 한 전은 동태전과 오징어전이다. 전은 고기전이 최고지만 고기를 자제하고 있어서 오징어로 전을 하자고 엄마를 졸랐다. 고기는 불고기가 있으니 전은 해물로 만들자고 말이다. 그렇게 나의 사심이 가득 담긴 오징어 전을 만들게 되었다.


양파, 잔파, 당근을 잘게 다지고 오징어도 갈아서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았다. 기계로 다지면 물이 생긴다고 해서 눈물이 쏙 나도록 칼로 썰었다. 오징어가 모자라서 새우살도 조금 넣었다. 밀가루 대신 전분가루를 넣고 계란을 몇 개 더 넣은 후, 소금과 후추 간을 했다. 엄마가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어서 계란물에 담가주시면 내가 팬에 하나씩 올려가며 구웠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서 태우기도 했지만 차츰 나아졌다. 먹을 때 다시 데울 거라 노릇하게 굽지 않고 대충 색이 나오면 뒤집었다. 어느새 식힘망 위에 오징어전이 가득 찼다.



아무것도 모르고 천천히 하면 되겠지 싶어 오후 늦게 시작했는데 해가 지고 저녁 먹는 시간이 지나서야 끝낼 수 있었다. 고작 전 두 개에 양도 많지 않았는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전을 다 굽고도 끝난 게 아니었다. 뒷정리를 하고 식은 전을 통에 담고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하지만 한 가지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바로 갓 나온 전을 마음껏 먹은 것이다. 기름기가 많아서 평소에 전을 잘 먹지 않는데 설을 핑계로 자제를 못하고 먹을 정도로 너무 고소하고 맛있었다. 전 모양이 제각각이었지만 차곡차곡 쌓인 전을 보니 뿌듯했다. 고생은 했지만 정성으로 만들었으니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면 좋겠다. 그나저나 다음 명절 때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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