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대보름
엄마의 대보름 음식
오늘은 정월대보름이다. 설 이후에 맞는 첫 보름날로 예전에는 설날보다 더 크게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다양한 놀이와 풍습이 많지만 각 동네에서 하는 행사일 뿐, 공휴일도 아니라서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없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음식만큼은 대보름날인 걸 알게 해 준다. 이번에도 늘 그렇듯 엄마 찬스로 보름 음식을 먹으며 대보름날을 보냈다.
대보름날에는 오곡밥, 묵은 나물, 부럼, 귀밝이술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을 빈다. 정식대로 다 챙겨가며 음식을 준비하면 너무 많아서 요즘은 몇 가지로 줄여서 만든다. 우리 집도 그렇다. 엄마가 정한 대로, 있는 재료로 대보름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다 보니 매해 음식이 조금씩 다르다. 이번에는 취나물과 고구마줄기가 더해졌다. 그리고 보름밥과 잘 어울리는 시원한 동태탕도 만드셨다.
아침 일찍부터 모든 음식을 다 만드셨다고 한다. 부엌 한쪽에 쌓여있는 스텐볼과 체들을 보니 얼마나 분주하셨을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뚝딱 만든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밥에 넣을 팥은 미리 삶고, 마른 나물은 물에 담가 불려둬야 한다. 같이 먹을 동태도 사서 손질해 두고, 이리저리 음식을 할 계획을 세우시면서 전날부터 바쁘셨을 것이다. 음식을 다 만들고도 끝이 아니다. 나눠 먹어야 하니 통에 소분해야 하고 밥은 밥솥에 두면 색이 변하기 때문에 통에 따로 덜어 식혀야 한다.
엄마는 완성된 음식들을 식탁에 가지런히 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내게 보내셨다. 멘트는 따로 없지만 사진을 보니 '맛있겠지?'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원래 아침을 많이 먹지 않는데, 대보름 음식들이 맛있어 보여 든든하게 먹었다.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안 좋아하는 잡곡밥도 고소하고 맛있어서 잘 먹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극적이지 않고 심심한 맛이 좋아진다. 예전 같으면 손도 안 댔을 음식인데 엄마의 집밥이 너무 소중해 자꾸 먹게 된다.
예전 같으면 손도 안 댔을 대보름 음식, 지금은 너무 잘 먹는다.나물은 우리 집에서 크게 환영받는 음식은 아니다. 비빔밥으로 몇 번 만들어 먹고 나면 손을 잘 대지 않아서 늘 엄마가 속상해하신다. 이번에는 나물을 이리저리 활용해서 잘 먹어볼 예정이다. 엄마가 애써서 만든 마음을 잊지 말고 야무지게 잘 챙겨 먹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