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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Jul 29. 2023

할머니 생각

시장에서 떠오른 할머니


부모님은 한 달에 두 번, 일요일 새벽장에 가신다. 예전에 따라가본 적은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치인 후로 가지 않았다. 저번주 아빠가 몸이 안 좋으셔서 시장에 가지 못하시자 엄마는 나를 불렀다. 엄마와 오랜만에 시장에 갔다.




시장에 가면 제철 재료를 실컷 볼 수 있다. 직접 농사지으신 과일, 채소를 들고 나오시는데 특히 채소는 할머니분들이 밭에서 키운 것들일 때가 많다. 그래서 양이 작아 빨리 가지 않으면 금세 동이 난다. 이번에 시장에 가니 할머니분들이 집중해서 무언가를 까고 계셨다. 고구마 줄기다. 가을에 고구마가 영글기 전에 고구마 줄기를 먼저 수확하는데 그 시기가 지금이라고 한다. 엄마는 고구마 줄기 한 소쿠리를 사셨다.


엄마의 엄마, 나의 할머니도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내가 크고 나서는 몸이 불편해지셔서 장사를 그만두셨으니 할머니가 시장에 계신 모습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시장에서 할머니들을 보면 괜스레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생선을 파셨다. 그래서 생선에는 일가견이 있으셨다. 무시무시한 생선 다듬기도 척척 하시고 제사 때 생선은 직접 찌셨다. 찐 생선은 비린내가 많이 나서 좋아하지 않는데 할머니가 해주신 찐 생선은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명절에 외갓집에 가면 외숙모님이 할머니의 노하우대로 맛있게 생선을 쪄 내어주신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엄마는 콩이 있다고 반가워하셨다. 잘 다듬어진 콩이 아니라 빨간 껍질에 쌓여있는 콩 그대로였다. '양대콩'이라는 콩인데 엄마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밥에 자주 넣어주셨다고 한다. 양대콩을 찾아보니 강낭콩의 지역 사투리였다. 콩을 한 묶음 사와 엄마와 같이 앉아 껍질을 깠다. 한 껍질에 10개가 넘는 콩이 나왔다. 예전의 할머니가 해주신 것처럼 밥솥에 콩을 넣어 밥을 해주셨다. 사실 나는 콩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밥에 콩이 들어가면 따로 노는 느낌이라 잘 먹지 않았다. 하지만 양대콩은 크기가 작아 맛있었다. 나도 나중에 양대콩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날 것 같다. 엄마가 밥에 콩을 넣어해 주셨다고 엄마처럼 말할 것 같다.


양대콩(강낭콩)을 넣은 밥, 콩 때문에 밥에 물이 들었다.


오늘따라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나를 보면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다고 예뻐해 주셨다. 돌아보면 나를 이유 없이 그렇게 예뻐해 준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던 것 같다. 살아 계실 때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후회된다. 엄마도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겠지. 내일은 내가 요리를 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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