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이니율 Jul 24. 2023

꽃을 사지 못하는 이유

꽃에 대한 트라우마

봄에는 벚꽃이 피고 여름이면 수국이 피고 가을엔 길거리에 국화가 가득하다. 5월이 되면 카네이션을 사고 축하할 일이 있을 땐 꽃다발을 산다. 내게 꽃은 딱 이런 존재였다. 꽃과 같이 했지만 그 순간일 뿐 심드렁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꽃 사진을 찍게 되었다. 왜인지 모르게 꽃이 예뻐 보였다.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라던데 나도 나이가 드나 보다. 얼마 전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아파트 화단 구석에 있는 꽃을 찍었다. 노랑, 다홍, 분홍이 알록달록하게 핀 꽃이었다. 찾아보니 채송화라고 한다. 7~8월에 피고 비와 바람에도 강한 꽃이다. 이렇게 내 사진 폴더에는 꽃 사진이 하나 더 늘게 되었다.


꽃이 예쁘지만 나는 사실 꽃을 사지 못한다. 전에는 샀지만 작년부터 사지 못했다. 작년에 안 좋은 일이 두 번 있었는데 모두 꽃을 사고 난 다음 날이었다. 꽃을 사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엄마와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꽃 때문이 아닐 거라고 했지만 선뜻 꽃을 못사겠다. 어버이날에도 동생에게 부탁해 꽃을 사고 축하할 일이 있을 땐 꽃 대신 다른 선물을 했다.


꽃을 사지 못하지만 꽃이 있는 곳은 좋아해서 사진만 찍는다. 얼마 전 정원이 있는 카페에 갔다가 사진을 잔뜩 찍고 왔다. 정원에 있는 꽃도 테이블에 있는 꽃도 예뻤다.


정원에 놓인 테이블에 백일홍과 들꽃?이 꽂혀있었다. 예쁘다.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꽃을 산 다음 날 일어난 일은 안 좋은 일이 아니라 다행인 일이 아니었나 싶다. 안 좋은 일이 거기까지만 온 게 아닐까, 오히려 운이 들어와 안 좋은 일이 멈춘 게 아닐까. 그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힘든 일이 나아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꽃은 내게 좋은 의미였는데 내가 지레 겁을 먹고 멀리 했는지도 모르겠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꽃을 사볼까 싶다.


오늘 본 꽃이 채송화라고 하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떠올랐다. 극 중 채송화라는 인물을 보며 매력적이어서 닮고 싶었다.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하는 일에 열정적이고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채송화의 꽃말은 순진, 천진난만이다. 오늘 채송화를 발견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채송화의 기운으로, 채송화처럼 천진난만하고 밝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작가의 이전글 기차가 내민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