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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Jul 20. 2023

기차가 내민 질문

기차를 보며 답하다


나에겐 기차는 여행이다. 시외버스보다 기차로 가는 곳이 적다 보니 기차를 탈 일이 별로 없어서 특별하게 느껴진다. 가끔 볼일을 보러 갈 때 기차를 타는데 그럴 때도 여행을 가듯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기차를 여행이라 느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대의 마지막 해 12월이었다. 갑자기 해가 가기 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가장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기에 그날 바로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때 왜 절이 떠올랐을까. 운해가 멋지다는 '만사'라는 절을 찾았다. 만사 근처에 있는 삼랑진역으로 가는 기차를 예매하고 역으로 갔다. 전날 눈이 많이 와서 온 세상이 하얬다. 추운지도 모르고 기차를 타고 삼랑진으로 갔다.


눈에 덮여 온통 하얀 기차 창밖 논뷰


삼랑진에 도착하고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전날에 눈이 왔다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만사로 간다고 기사님께 말했다. 기사님은 산에 눈이 많이 쌓여 못 간다고 단칼에 거절하셨다. 만사만 보고 온 길인데 너무 허망했다. 삼랑진은 작은 도시라 다른 갈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기차를 예매하고 시간이 남아 바로 앞에 보이는 분식집에서 허기를 채웠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눈이 온 다음 날이라 길은 질퍽했고 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아무도 없 추운 텅 빈 거리를 왜 사서 고생하며 걷고 있을까 싶었다.


작은 골목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나의 20대는 우울했다.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 준비하느라 긴 시간을 보내 힘이 들었다. 다행히 기회가 닿아 디자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장거리 출퇴근과 긴 업무시간에 지쳐 즐겁지 않았다. 길을 찾아왔는데 길을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기차가 아직 오지 않아 빈 플랫폼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목적지를 잘 정해서 사람들을 태우러 온다. 정작 기차를 타는 나는 기차가 태워주는 대로 갈 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 시간을 지나온 지금도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기차의 방향을 보려고 애쓰고 있다. 어쨌든 기차를 탔고 기차는 가고 있으니 나를 믿어보기로 한다. 어디로든 잘 가고 있을 테니 내 인생도 여행하듯 신나게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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