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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Jun 29. 2024

연필 수련

연필 깎고 정리하기

내가 즐겨 사용하는 필기도구는 검은 볼펜과 연필이다. 그중에서 연필은 쓰고 지울 수 있고 나무냄새와 사각거리는 느낌이 좋아 자주 쓴다. 어렸을 때는 세련된 샤프펜슬이 좋았는데 지금은 투박한 연필이 좋다. 연필은 깎아 써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런데 나는 연필 깎는 것마저도 좋아한다. 깎는 동안은 잡생각도 안 나고 잠시지만 마음을 돌 볼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연필은 주로 볼펜으로 쓴 글에 표시를 하거나 임시로 메모를 할 때 쓴다. 농도조절이 가능해서 스케치를 할 때도 좋고 바뀔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할 때도 유용하다. 연필은 흑연으로 된 심이 닳으면서 종이에 흔적을 남긴다. 심이 짧아지지 않아도 뭉툭하게 닳으면 깎아야 한다. 간편하게 연필깎이로 깎아 봤지만 빨리 닳아서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다 예전에 그림을 잠시 배울 때 4B연필을 깎아 썼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연필을 깎아봤더니 재미가 있고 내 맘대로 심 길이나 뾰족한 정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좋았다. 거기다 나무의 내추럴한 매력까지 있어서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그때 이후로 샤프펜슬 대신 연필을 사용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뭉뚝해진 연필이 눈에 들어왔다. 사용하고 있는 다른 연필도 꺼냈다. 모두 심이 다 닳아서 깎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몇 개 안되는 줄 알았는데 모으니 꽤 많았다. 언제 이렇게 모았나 싶다. 최근에 산 연필도 있고, 선물로 받은 것도 있다. 초등학생 때 썼던 캐릭터 연필도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아끼는 건 캐릭터 연필이다. 꽤 오래전에 산 것인데도 나무질이 제일 좋고 필기감도 부드럽고 단단하다. 잘 부서지지도 않는다. 이제 구할 수 없는 연필이 되었으니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끼려고, 한 번이라도 더 찬찬히 보려고 연필을 깎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연필을 깎으면 좋은 점이 있다. 먼저 연필의 미세한 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나오는 연필은 기술이 좋아져서 품질이 평균 이상이지만 유독 부드럽고 단단한 연필이 있는데 연필을 깎아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음 수련이 된다. 길이를 맞추고 전체 모양을 보면서 연필을 깎는 건 쉽지 않다. 자칫 힘을 잘 못주면 손가락을 다칠 수도 있어서 집중하고 깎아야 한다. 그래서 연필을 깎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오늘처럼 여러 개의 연필을 깎아야 할 때는 몇십 분을 연필 깎는데만 시간을 쏟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 잘 정돈된 연필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연필처럼 마음도 정리가 된 기분이 든다.


칼로 깎으면 시간이 두세 배는 더 걸리니 매번 깎는 건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매번 닳을 때마다 깎을 순 없다. 그래서 한꺼번에 여러 개의 연필을 깎아두고 쓴다. 바로바로 교체 가능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심을 길게 빼서 깎기 때문에 연필깎이로 깎은 연필보다 오래 쓰니 교체주기도 길다.


연필을 여러 번 깎다 보니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생겼다. 우선, 연필 깎기 전에 이면지 종이를 준비한다. 연필을 깎을 때 흑연이 같이 깎이는데 가루가 나와서 온통 주변이 검은 가루 범벅이 되기 일쑤다. 여기에 찢어지기 쉬운 휴지를 깔면 더 번져서 엉망이 되기 때문에 꼭 종이를 깐다. 깎는 순서는 심 주변부터 조금씩 깎다가 점점 원하는 길이만큼 늘려 깎아낸다. 심은 맨 마지막에 다듬는다. 심이 밑으로 가도록 세운 후,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도록 칼을 비스듬히 세워 다듬는다.


연필 깎는 건 힘들지만 깎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아직 실력이 미흡해서 연필모양이 들쑥날쑥하다. 어떤 건 나무를 크게 베어버려서 다듬다가 예상보다 길이가 짧아진 것도 있다. 뾰족하게 깎느라고 애쓰다가 심도 여러 번 깎아먹었다. 이럴 땐 그냥 연필깎이로 깎을걸 싶다가도 연필을 쓰면 촉감이 좋아 금방 마음이 바뀐다. 다 깎고 나니 뿌듯하다. 당분간 기분 좋게 연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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