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만하면 됐지

고장 난 김에 청소하기

by 샤이니율

오전에 잘 사용했던 컴퓨터가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다시 껐다가 켜도 그대로였다. 마침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작동이 안 되니 너무 답답했다. 이리저리 찾아보고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안 돼서 수리점을 찾았다.




예전에도 똑같은 증상으로 컴퓨터가 말썽을 부린 적이 있었다. 전원은 들어오는데 부팅이 되지 않았다. 수리점에 가서 물어보니 램이라는 장치에 먼지가 껴서 접촉불량이 생겼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램을 빼서 닦은 후 다시 조립하니 작동이 잘되었다. 그때 얼마나 허무하던지. 이 작은 이유를 몰라 마음 졸이고 시간, 비용을 쓴 걸 생각하니 속상했다. 그런데 또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직접 해결 가능하다면 해보고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본체 뚜껑을 열었다. 램 장치를 찾아 영상에서 본 대로 꺼내서 먼지를 털고 접촉 부분을 지우개로 살살 닦았다. 본체를 연김에 먼지도 닦았다. 그리고 다시 조립한 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원을 켰다.


간절한 내 마음과는 달리 컴퓨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더 지체할 수 없어 본체를 들고 수리점으로 달려갔다. 기사님은 증상을 듣고 이리저리 보시더니 나와 같은 방법으로 램 확인을 하셨다. 닦고 끼우고를 몇 번 하시더니 됐다고 본체 뚜껑을 닫으셨다. 내가 했을 땐 안 되고 기사님이 했을 땐 되다니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다. 램을 확인했다면서 뭘 확인했느냐고 속으로 욕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끙끙대며 부품을 확인하고 애쓴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버린 시간인 것 같아 속상했다. 처음 문제가 발생해서 수리했을 때보다 허탈감이 더 몰려왔다. 하지만 기사님이 나와 똑같이 확인했다는 것도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기사님이 아는 중요한 해결 포인트가 있었을 것이다. 작지만 한 끗 차이랄까. 내가 했으면 하루종일 끌고 있었을 텐데 수리점에 와서 한 번에 해결했으니 마냥 허무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비가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렸고 컴퓨터는 고장이 났다. 예전 같으면 참 운 없는 날이구나라고 여겼을 텐데 그냥 이런저런 날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본체 청소를 했으니 의미 없는 날도 아니다. 집으로 들고 와서는 새 마음으로 본체 겉 부분도 구석구석 닦았다. 뿌연 먼지를 털어내니 빛이 났다. 그래, 오늘 이만하면 됐다! 좋은 하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조건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