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사발 만들기
8월이 가고 여름 더위가 한 풀 꺾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덥다. 열대야도 최장기간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가을이 오려다 도로 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제나 밥 해 먹기는 귀찮고 힘들지만 날이 더우면 몇 배로 더 힘들다. 그래서 대충 때울 때가 많다. 오늘은 마트에 갔다가 도토리묵이 눈에 들어와서 사 왔다. 보자마자 도토리묵사발이 생각 나서다.
묵사발이 떠오른 건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서인데 특히 요즘 같은 여름에 딱이다. 불 앞에서 오래 조리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묵만 살짝 데치고 각종 채소를 썰어 냉면육수에 섞기만 하면 된다. 또 한 가지 장점은 부드러운 식감이다. 덥고 입맛이 없을 때는 입안에서 오래 씹어야 하는 재료보다 후루룩 먹을 수 있는 재료가 잘 들어간다. 묵은 어떤 재료보다 부드러우니 여름에 안성맞춤이다.
묵사발을 만들기 위해 제일 번거로운 묵 데치기부터 시작했다. 넓은 냄비에 물을 끓이고 묵을 체에 올려 조심해서 냄비에 넣는다. 그리고 묵 색깔이 우러나올 때까지 끓이다가 찬물에 얼른 헹궈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채소도 썬다. 나는 간단한 오이, 당근, 양파만 썰었지만 상추, 파프리카, 깻잎도 잘 어울리니 추가해 줘도 좋다.
익은 김치는 꼭 넣는 걸 추천한다. 묵사발에 넣는 재료는 간을 따로 하지 않는데 푹 익어 새콤달콤한 김치를 가미하면 다른 재료와 잘 어우러지면서 간이 되니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요즘 김장김치가 아주 잘 익어서 한 줌 꺼냈다. 가위로 쫑쫑 썰어 물기를 살짝 짠 다음, 참기름과 원당을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이렇게 하면 김치의 새콤달콤함이 배가 된다. 물기가 빠진 묵도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볼에 채 썬 재료와 묵, 양념한 김치를 넣고 냉면육수를 붓는다. 여기에 깨소금과 김가루를 넣으면 완성이다. 묵을 깔고 그 위에 채소들을 가지런히 올려 플레이팅을 해도 예쁘지만 처음부터 볼에 재료들을 다 넣으면 먹음직스러워 보여 선호한다. 먹을 땐 국자로 뜨기만 하면 되니 편하기도 하다.
많아야 2인분이 될 줄 알았던 묵사발은 볼 한가득 양이 나왔다. 채소를 이것저것 추가하다 보니 양조절이 안된 모양이다. 묵보다 채소가 더 많은듯하다. 묵이 해봐야 얼마나 배가 부를까 하고 얕봤는데 묵사발 외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남은 건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다음날 꺼내 먹기로 했다. 예상치 못하게 밀프랩이 되었다. 며칠 먹을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