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이니율 Sep 13. 2023

뜻밖의 휴식

길을 잃고 만난 공원 산책

인생은 참 예상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계획한대로 잘 진행될거라고만 믿었지, 언제든 크고 작은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이 생기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 대비를 해봐도 무용지물인 날이 많다. 대비한 일이 딱 맞지 않을 수 있고, 대비하지 않은 또 다른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가게가 있어 일찍 집을 나섰다. 초행길이라 지도를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다. 예상 소요시간과 주변 건물까지 눈에 익혔다. 지하철을 타고 가게가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그리고 길을 찾으려고 폰을 본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유심칩 접속 불량으로 폰이 먹통이 된 것이다. 네비게이션은 물론 인터넷 검색조차 되지 않았다. 주변 건물을 기억해둔 탓에 어찌 가게는 찾았지만 이번에는 가게 문이 닫혀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했는데 오픈시간을 확인 안 한 것이다. 다음 갈 곳을 가려해도 가는 방향을 모르니 갈 수도 없고 막막해졌다. 폰이라도 고쳐야겠다 싶어 큰 건물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가게도 많고 사람도 많았는데 대리점, 서비스센터는 보이지 않았다.


작은 희망이라도 걸고 걷고 또 걸어가다 무언가 푸르른 풍경을 보았다. 도시 속에 공원을 발견한 것이다. 공원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려던 경로와 멀어서 못간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그 곳을 오게 된 것이다. 계획에 없었지만 다리도 아프고 잠시 쉬었다 가자는 생각이 들어 공원에 들어갔다. 길거리는 복잡했는데 공원 안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곧게 난 나무들 사이로 산책을 하고 그늘이 있는 벤치를 찾아 앉아 풍경을 구경했다. 혼자 있는 사람도, 여럿이 모여 있는 사람들도 다 여유로워 보였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차분해졌다. 고장난 폰도 생각나지 않았다. 물 한모금을 마시니 꿀맛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도 파랬다. 한참을 앉아 있으니 몸이 회복되었다. 폰이 고장나서 속상했는데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폰이 고장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곳이었다. 폰이 고장 난 것이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슬슬 나서야겠다 싶어 폰을 껐다 켜봤는데 다시 작동이 되었다. 마음을 비워서일지, 원래 되려던 시기였을지는 모르지만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폰은 아침부터 동동거린 나를 잘 알고 있었던걸까, 그래서 쉬라고 이렇게 말썽을 피운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원래 가기로 했던 가게로 향했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 덕분에 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갈 수 있었다. 공원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여러모로 신기하고 감사한 하루였다.


무겁지만 들고 온 텀블러가 빛을 발하는 순간! 더운 날 물 한모금은 꿀맛이다. 


예상치 못한 일은 보통 안좋은 일로 왔다. 오늘 일만 봐도 하루 일정을 다 망칠 수 있는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공원 산책이라는 뜻밖의 휴식을 만났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 일 너머에 있는 것을 보려고 애써봐야겠다. 해결책도 찾겠지만 뜻밖의 행운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야무지게 산책을 하고 났더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오늘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홈트 일상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