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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Sep 17. 2023

취미로 알게 된 몰입의 즐거움

MDF나무 채색하기

예전에 톨페인팅을 배운 적이 있다. 톨페인팅은 MDF나 원목 나무에 캐릭터나 꽃 등 그림을 그리는 활동이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공방에서 보냈을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톨페인팅을 하려면 우선 반제품으로 만들어진 나무 제품부터 골라야 한다. 다양한 모양 중에서 나는 접시, 쟁반, 냄비받침, 컵받침, 시계 같은 실용적인 것을 좋아해서 많이 만들고 선물도 했다. 무엇을 그릴건지 생각한 후 먼저 바탕색을 전체적으로 칠해줘야 한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말리고 칠하고를 여러 번 해야 깨끗하게 마무리된다. 바탕색이 마무리되면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려준다. 그림도 여러 번 덧칠을 해야 색이 올라오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다. 이렇게 반복하며 색을 칠하다 보면 잡생각이 안 날 정도로 집중이 된다. 시계를 보면 3~5시간은 금방 지나가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재미를 붙였던 톨페인팅은 일을 그만두면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일을 찾느라 여유가 없어 취미는 사치였다. 거기다 웬만한 모양은 다 만들어봐서 조금 질리기도 했다. 그때 만들었던 물건들도 몇 개만 남겨두고 주위에 나눠주고 처분했다. 하지만 물감, 붓 같은 도구들은 혹시 몰라 남겨두었다. 아꼈던 취미의 마지막 보류 같은 것이었을까. 또 몇 년이 지났고 며칠 전 잊고 있던 도구들이 떠올랐다. 물감을 보니 아직 마르지 않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겨둔 물건 중에 색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었는데 새로 칠해보자 싶었다.


방에 신문지를 깔고 코팅제를 벗기기 위해 사포질을 했다. 사포질 또한 멍 때리기 좋은 활동이다. 하다 보면 무념무상이 된다. 그리고 사포질은 열심히 한만큼 나무가 보답을 해준다. 깔끔하고 부드럽게 정리된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손과 옷이 나무가루로 엉망이 되지만 뿌듯해서 바보같이 웃음이 난다. 나무가루를 털어내고 원하는 색으로 다시 바탕색을 칠해주었다. 원래 색은 진한 파란색이었는데 톤 다운된 베이지색으로 칠했다. 칠하려는 색보다 원래 있던 색이 어두워 색이 잘 안 올라와 다섯 번 정도 반복해서 칠했다. 그림은 넣지 않고 심플한 체리 문양을 돌려가며 넣었다. 물감을 완전히 말린 후, 바니쉬로 두 번 정도 칠해 코팅을 해준다. 과정은 어렵지 않지만 여러 번 칠해줘야 해서 따분하고 무료하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생각 정리가 된다.


접시와 세트로 만들었다. 애정이 담긴만큼 나와 평생 함께 할 것 같다.


사실 저번주에 일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다. 마음만큼 되지 않아서 멍하게 그냥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취미용품을 넣어둔 서랍을 보게 되었고 물감까지 집어 들게 된 것이다. 새로 칠한 색상이 마음에 든다. 거울 앞에 소품정리하는 받침대로 올려두었다. 오래된 취미 덕분에 복잡한 마음을 많이 비웠다. 마음에 위안이 되는 취미가 있어 감사하다. 물감과 붓을 안 버리길 잘했다 싶다. 칠을 안 한 물건이 또 있는데 나중에 또 칠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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