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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Dec 20. 2020

스페인의 역사 12

펠리페 5세와 페르난도 6세


부르봉 왕가 출신으로 첫 번째 스페인 왕이 된 


펠리페 5세는  첫 번째 왕비인 마리아 루이사와의


사이에 아들 루이스페르난도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왕비의 목에 커다란 종기가 나더니 왕비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1714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원래 어두운 성격이었던 펠리페 5세는 이때부터


우울증이 아주 심해졌습니다.



주변인들이 새로운 왕비를 물색하여


7개월 후 이사벨 파르네제와 재혼 했습니다.


그녀는 권력욕이 강하고 매력이 있는 여성으로


어느 곳에서나 좌중을 이끄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펠리페 5세는 점점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1724년 큰아들 루이스에게 양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왕이 된지 7개월 만에


천연두로 사망하였습니다. 왕위 계승자는 루이스의


동생인 페르난도였지만 새엄마인 이사벨 파르네제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되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다시 왕이 되도록 조종하였습니다.


펠리페 5세는 다시 왕이 되었지만,


정신병 증세가 심하여 실제로는 이사벨 파르네제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새어머니 이사벨 파르네제는 페르난도가


왕이 되기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면에서 방해를 하였고 대신


자신의 자식인 카를로스는 나폴리의 왕으로


보내어 정치 경험을 쌓도록 하였습니다.



페르난도는 포르투갈의 주앙 5세의 딸 바르바라와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혼담이 오갈 때, 스페인은


공주의 초상화를 보내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했지만


포르투갈은 계속 미루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곰보자국이 있고 뚱뚱하여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6개 국어를


할 정도로 똑똑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 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새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자라야 했던 페르난도는 바르바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신병자인 왕을 내세워 실권을 장악한


새어머니는 부부가 아버지인 펠리페 5세를


마음대로 만나지도 못하게 했으며 신하들과도


연락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 펠리페 5세가 죽자


페르난도는 페르난도 6세로 즉위하게 되었지요.


그는 왕이 되자 마자 새어머니 파르네제를


추방하였습니다.




페르난도 6세 출처 더위키


페르난도 6세는 새어머니의 방해로 왕이 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유능한 신하들을 등용하고


펠리페 5세 시기에 권력에 아부하던 부패한 신하들을


모두 추방하였습니다.



페르난도 6세 시기에는 프랑스와 영국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하여 전쟁으로 인한 국력 소모를


최소화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국방력과 국경의 수비를 철저히 하고 조선소를 세워


군함을 건조하였습니다. 또 만성적인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고 히로 레알이라는 은행을


만들어 국내외의 돈이 이동하기 쉽도록 하였습니다.


산업 발달에도 신경을 써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가 재정이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카디스 항구 출처 픽사베이



학자와 예술가를 후원하는 일에도 신경을 썼는데


이 시기에 활동한 가장 유명한 인물이 거세된


카스트라토 성악가 파리넬리 였습니다.



파리넬리 출처 위키피디아



영화 파리넬리 포스터


그는 원래 펠리페 5세의 우울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등용되었는데 페르난도 6세 시기까지


왕의 총애를 받으며 성악가이자 정치가로


활약했습니다. 페르난도 6세는 후손을 낳지


못해서 이복동생인 카를로스가 카를로스 3세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카를로스 3세는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던 새어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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