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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Dec 21. 2020

스페인의 역사 13

카를로스 3세 



카를로스 3세 출처 위키피디아



카를로스 3세는 펠리페 5세의 두 번째 왕비인


이사벨 파르네제의 아들로 이복 형인


페르난도 6세에 이어 1759년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근대화에 노력한 왕입니다.


왕이 되기 이전에는 이탈리아 파르마와


피아첸체의 공작이었고,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점령한 뒤 두 지역의 왕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미리 통치에 대한 식견을 익히고


왕이 될 수 있는 자질을 연마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수공업자를 천시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이 규정을 폐지하고, 수공업자가 공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으며,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노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대포,


무기, 화약, 도자기 유리, 테피스트리 등 수입에


의존하던 제품들을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하여


곳곳에 공장이 설립되었습니다.



또 근대적인 우편제도를 시행하고,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과부와 고아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 했으며 대학을 개혁하여 신분이 낮은 사람도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스페인의 국기도 이 시기에


정해졌습니다.



스페인 국기 출처 위키피디아



예술의 발전에도 힘써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과 소피아 미술관을 건설하였습니다.



소피아 미술관 출처 istock photo


또 마드리드의 위생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길거리에 오물을 버리는 것을 금지하고


하수 처리 시설을 도입하였으며


가로등을 설치해 치안에 힘썼습니다.


또 신분을 숨기기 쉬운 챙이 넓은 모자와


검정 망토를 금지했습니다.



이러한 개혁 정책은 마드리드 시민들에게


분명 도움이 되는 것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갑작스런 변화에 반발하였습니다.


카를로스 3세는 이탈리아에서 왕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탈리아인들을 궁정에 많이


등용하였는데 이러한 점도 마드리드인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마드리드 출처 픽사베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카를로스 3세는 일단


마드리드를 떠나 반란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는데


8개월 후, 다시 돌아온 왕은 스페인과 식민지에 있는


예수회를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개혁의지에 반발하는 세력에게


모욕감을 느꼈으며 반란의 배후에는 예수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회의 세력은 스페인과 식민지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고 왕의 권력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영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미국의


독립을 지원하여 군대를 파견하였습니다.



그가 평생 두려워한 것은 아버지 처럼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였습니다.


왕비가 죽은 후, 여자를 멀리하고 새 왕비를


맞이 하지 않았으며 매일 엄격하고 똑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여 체중을


관리하였다고 합니다.



1788년 그가 숨을 거두자 아들인 카를로스


4세가 뒤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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