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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Dec 18. 2020

일요일의 병

넷플릭스 영화 리뷰


영화를 본 후, 몇 일간이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다시 보았다. 스토리를 다 알고 보니까


영화속에 섬세하게 배치된 상징적인 장면과


함축적인 대사가 하나하나 이해가 되면서


주인공의 감정에 빨려들듯이 몰입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이 영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 같다.



앙상한 겨울 풍경, 두 그루의 나무를


오랫동안 보여준다. 처음엔 플레이가


안되는 줄 알았다. 두 번째 볼 땐,


오랫동안 이 나무를 바라보았다.






주인공은 어머니 아나벨과 딸 키아라이다.


사교계의 유명인이 되어 있는 어머니는


딸이 8살이었을 때, 부와 명예를 쫓아 집을 떠났다.


40대가 된 딸은 엄마가 살고있는 대저택의


연회를 준비하는 임시고용인으로 들어와


어머니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렇게 만난 모녀는 긴세월의 공백을 뛰어넘지


못한다.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왜냐면,


모든 것을 가진 부유한 엄마가 딸의 출현이


가져올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명품으로 치장한 고급스런 엄마는 모성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졌다.


그녀가 딸에게 궁금한 것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다.



딸은 딱 10일간만 함께 지내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전부라고 한다.


의외의 요구에 당황한 엄마와 엄마의


현 남편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미스런


일에 대비하려 친자 포기 각서를 쓰게한다.


딸은 주저없이 각서에 사인을 한다.





딸이 혼자 사는 외딴 시골집.


그곳은 자신이 딸과 남편을 두고 떠났던 집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황급히 화장을 하고 떠났다.


딸은 엄마가 어지럽게 늘어놓고 간 화장품들을


기억하고 있다.



8살 때 부터 창가에 앉아서 엄마가


나타나길 기다리다 40대가 되어버린 딸은


어떤 마음일까.



게다가 이제 자신에게는 육체의 고통과


죽음만이 남아있을 때,


수 십년만에 만난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원망, 분노, 그리움, 체념...



엄마의 비싼 옷에, 실수인 듯, 장난인 듯


물을 뿌려대어 모욕감을 느끼게 하고


쌓여온 분노를 터뜨리며 찻잔을 던지면


수십년 쌓여온 원망이 가라앉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허둥거렸던 기억은


눈 앞에서 놀던 아이가 안보일 때였다.


놀이 공원에서 회전 목마는 가끔


그러한 기억을 소환한다. 그래서


회전 목마는 참 쓸쓸하고 때론 섬뜩하다.



느리게 회전하는 목마를 탄 40대의 딸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때, 엄마 아나벨은 당황했다.


딸이 움직이는 회전목마에서 뛰어내린 것을


안 후에 "움직이는 목마에서 내리면 위험해"


라고 말한다. 그것은 안도감의 일종이고,


따뜻한 잔소리이고, 모성이었다.


그제서야 아나벨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던 딸은 그날 술을 마셨고


낯선 남자에게 몸을 맡긴다.


엄마는 술취한 낯선 남자를 떼어내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딸을 데려와 등을


두드려준다. 고통스러워 하는 딸은 자신은


죽을 거라고, 죽고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아직 엄마는 그 뜻을 잘 모른다.


딸은 오랫동안 잠을 잤다.


그리고 8살 이후, 처음으로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고통 때문에 잘 먹을 수 없다.





처음으로 딸을 안고 썰매를 탄 이 순간 이후


딸의 병을 알게 된 엄마는 다시 묻는다.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이것은 처음 만났을때의 질문과 같은 질문이지만


내용은 다르다. 진정 엄마로서의 질문이다.





딸은 엄마의 질문에 답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떠나라고 하면서.


엄마는 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마치 딸이 죽어가는 새에게 먹이를 주고,


품에 안고, 그러다가 돌을 내리쳤던 것처럼.



딸의 죽음을 도와주는 마지막 모습은


비장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오랫동안 이 영화의 여운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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