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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Feb 17. 2021

메디치 3

부르넬레스키와 도나텔로


부르넬레스키


1401년 피렌체의 양모 무역업자 길드는

산 조반니 성당의 북쪽문을 제작하기 위한

콩쿠르를 열었다. 총 7명의 예술가가

참여하여 최종으로 부르넬레스키와 기베르티가

대결하였는데 기베르티가 우승했다.

패배한 부르넬레스키의 실력도 뛰어났기에

사람들은 기베르티와 함께 작업에 임해주기를

부탁했지만 부르넬레스키는 거절하고

로마로 떠났다. 이때 함께 데리고 간 젊은

조각가가 도나텔로였다.


로마에 간 부르넬레스키는 고대 로마 건축물을

연구하고 자신의 전공인 수학을 접목하였다.

몇 년 후, 피렌체에 돌아온 브루넬레스키는

세례당을 투시법으로 그려보면서 최초로

선투시 원근법을 발명했고 이후, 도나텔로,

마사초 등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전파되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원래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피오레 (꽃의 성모 마리아)이다.

이 성당의 본당은1296년에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피사의 성당이나 시에나의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을

짓기 위해 중간에 사이즈를 늘리는 바람에 본당의

가로와 세로회랑이 만나는 부분을 덮는 지름

45미터의 돔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 건축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드라마 메디치 : 마스터스 오브 플로렌스 중 두오모 성당의 돔이 건축 되기 이전 모습



1418년 두오모 성당의 돔을 만들기 위한 시연회에

부르넬레스키가 참여하였다. 이때 부르넬레스키를

믿고 후원한 사람이 코시모 데 메디치 였다. 


드라마 속에서 부르넬레스키가 코시모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스스로의 

장력을 이용해 서로를 지탱할 수 있도록 두 개의 

돔을 만들어 안쪽 벽과 바깥쪽 벽을 연결하고 

두 벽 사이에 1.4미터의 빈 공간을 두어 돔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16년에 걸쳐 완성된 돔은

높이 91미터 (꼭대기 부분 까지 포함하면 116미터) ,

400만개의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두오모 성당은 1469년 베로키오가 꼭대기 부분에

구리로 된 구를 설치하면서 완성되어 현재까지

피렌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 출처 픽사베이




도나텔로의 청동 다비드상


도나텔로가 만든 청동 다비드 상은

로마 시대 이후, 최초의 남자 누드 작품이다.


다비드 상 출처 위키피디아


이 작품 또한 코시모의 주문으로 제작되었다.

코시모는 평생 도나텔로의 후견인이자

친구였다. 이 작품은 메디치가의 궁전

안마당에 전시되어 있었다.


드라마에서 메디치의 집 안에 있는 도나텔로의 다비드 상


당시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이 작품을

비판하고 오해하였다. 이유는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씩씩한 소년 다비드의

모습이 여성적인 아름다운 선을 뽐내는

미소년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 이 작품으로 인해 도나텔로는 종교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는 동성애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정적들은 코시모를 공격할 때

이러한 점을 이용하기도 했다.


도나텔로는 죽기 전, 코시모 곁에 묻히고

싶다고 하였다. 그의 소원대로 피렌체 로렌초

성당에 있는 코시모의 무덤 근처에 도나텔로의

무덤이 조성되었다.


이후 1494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추방

당했을 때, 피렌체 시민들은 이 청동상을

시뇨리아 궁전 안마당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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